주간동아 737

..

차가우면 다 냉면? 메밀을 따져라

냉면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0-05-17 11: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차가우면 다 냉면? 메밀을 따져라

    함흥냉면과 소바. 이 둘 중에 평양냉면과 더 가까운 음식은?

    냉면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참 조심스럽다. 미식가입네 하는 사람 대부분이 냉면에 민감해서 설핏 말했다가 난리가 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또 어느 식당 냉면이 맛없다고 콕 찍어 말하면 그 냉면을 즐기는 사람은 나와 척을 지으려 하기도 한다. 자신의 ‘솔 푸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면에 대해 말할 때면 “그것도 맛있지요” 하며 한발 빼는 버릇이 있다. 여기서는 상식적인 선에서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안티’가 생기지 않을 한도에서.

    흔히 냉면이라 하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대표로 꼽는다. 그리고 이 둘을 곧잘 비교한다. “난 평양냉면은 별로인데 함흥냉면은 맛있더라” 하는 식이다. 대중매체에서 냉면 기사를 다룰 때도 평양냉면이 나오면 함흥냉면은 절로 따라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는 냉면이라는 카테고리에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함께 넣어두고 있으며, 이런 분류법에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일상의 여러 분야에서 이 같은 분류의 혼동은 허다하게 일어나며, 그것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대상물의 정체성에 큰 타격을 입힌다. 무엇을 두고 냉면이라 하는지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음식의 맛조차 가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냉면을 ‘차게 해서 먹는 면 음식’이라 한다면 평양냉면, 함흥냉면을 비롯해 막국수, 쫄면, 비빔면, 소바, 중국냉면, 열무국수, 냉라멘, 부산밀면, 진주냉면 등을 모두 냉면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면을 냉면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 머릿속의 냉면 카테고리에는 평양냉면, 함흥냉면 정도밖에 들어 있지 않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한 데 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뒤에 ‘냉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냉면과 진주냉면이 유행하면서 평양냉면과 함께 다룬 기사를 자주 보는데, 이 역시 ‘냉면’이란 단어가 붙어 있기 때문일 뿐이다.

    음식을 분류하고 그 음식 맛의 포인트를 찾아 비교할 때는 재료나 조리방법 등이 비슷한 음식끼리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눈으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보면, 두 음식은 전혀 다른 계열에 들어 있다. 이름만 평양‘냉면’, 함흥‘냉면’이지 면의 재료와 양념법, 맛의 포인트가 다른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메밀면과 육수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식이고, 함흥냉면은 감자면과 고춧가루 양념의 조화에 비중을 둔다.

    그러면 일차적으로 주재료에 따라 차가운 국수류를 분류해보자.



    메밀을 주재료로 하는 국수류 :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는 국수류 : 비빔국수, 중국냉면, 열무국수, 냉라멘.

    감자(또는 고구마) 전분을 주재료로 하는 국수류 : 함흥냉면, 쫄면.

    이렇게 주재료에 따라 국수류를 재분류하니, 각 국수를 먹을 때 무엇이 맛의 중심이 돼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특히 평양냉면과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이 한 묶음이 되면서 이 음식을 먹을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할 맛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해진다.

    냉면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의 분류법에 대해 길게 쓴 이유는 메밀국수를 쓴다는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등의 면 가운데 메밀 함량이 매우 적은 것을 수시로 목격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당면 수준의 면을 내는 집에서 벽에는 ‘메밀의 효과’니 하는 설명의 글을 붙여놓고 있다. 또 어떤 식당에서는 “메밀 100%짜리 면은 불가능하다”는 거짓말로 자신들의 ‘가짜 면’을 숨기려 한다.

    메밀로 만든 국수류라면 면의 메밀 함량이 일정 수준이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밀가루와 전분이 주성분인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은 쫄면과 함께 분류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