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7

2010.05.17

“난 클래식에 뿌리 둔 발라드 가수 디너쇼·뮤지컬 할 겁니다”

떠오르는 클래식계 신성, 카이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05-17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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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클래식에 뿌리 둔 발라드 가수 디너쇼·뮤지컬 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맑은 수채화가 떠오른다. 유화나 디지털 아트 등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에 마음까지 착해지는 기분이다. 크로스오버 가수 카이(30·본명 정기열). 그의 바리톤 음색은 테너처럼 화려하고 강렬하진 않지만, 오랫동안 되뇌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182cm의 키, 카리스마와 순수가 공존하는 야누스적 얼굴, 모델 뺨치는 패션 감각,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라는 ‘조건’까지 갖춘 카이는 아직 1집 정규 음반도 발표하지 않은 신인가수지만, 클래식계와 대중음악계 모두 그를 2010년을 빛낼 샛별로 점치고 있다.

    카이는 2008년 ‘결’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싱글 음반 ‘미완’을 발표해 활동했다. 현 소속사인 유니버설 뮤직으로 이적한 뒤 2009년 12월 ‘카이’라는 새 이름으로 디지털 싱글 ‘벌’을 발표했다. ‘스타 제조기’라 불리는 김형석 프로듀서가 만든 이 노래는 5주간 클래식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후 노영심 작곡의 ‘이별은 먼저 와 있다’를 잇따라 히트시키며 무려 13주 동안 1위 자리를 지켰다. 이는 신인가수로는 매우 이례적인 일. 또한 그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2009년 전국 투어 콘서트에 파트너로 무대에 오른 것은 물론, 세계적 뉴에이지 밴드 ‘시크리트 가든(Secret Garden)’의 앨범 작업과 내한공연에도 단독 게스트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은 KBS 라디오 ‘생생클래식’의 DJ로 활약하고 있다. 5월 11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카페 ‘이마’에서 만난 그는 “정신없이 바빠지긴 했지만, 아직 인기가 피부로 느껴지진 않는다”며 허허 웃었다.

    조수미가 주목한 남자

    “정통 성악도일 때보다 저에게 집중하는 분이 좀 더 많아지긴 했어요. 하지만 ‘클래식계 아이돌’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러워요.(웃음) 스타가 됐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제가 하는 음악, 즉 클래식을 뿌리에 둔 발라드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은 갖게 됐어요. 성악 베이스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자, 제 음악의 본질이거든요.”

    그는 자신이 ‘팝페라’ 가수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팝페라가 클래식만큼이나 대중에게 거리감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클래식에 뿌리를 둔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기존 국내외 팝페라 가수들이 유명 팝이나 가요를 리메이크해 정통 성악 창법으로 불렀던 것과 달리, 새로운 창법과 창작곡으로 승부를 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별은 먼저 와 있다’를 들으면 성악도 출신이라는 게 그다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을 뺐다.



    “이 노래는 웅장한 감성이 어울리지 않아요.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리는 감성적 발라드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벌’이나 ‘미완’ 앨범에 있는 ‘월하연’은 성악 창법이 어울려요. 제가 가진 다양한 음색을 노래에 따라, 또 그 노래를 부르는 감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것뿐이에요. 성악가 출신이면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봐요.”

    서울예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성악과에서 학사, 석사를 거쳐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카이는 동아 콩쿠르 등 국내외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일찌감치 성악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가 성악도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성악가를 꿈꿨으나 경제적 형편 탓에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어머니는 집에서 늘 성악 음반을 들었다. 초등학생인 그를 KBS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게 한 것도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조수미의 공연을 보러가기도 했다.

    “수학학원을 가야 하는 날이었는데, 어머니가 ‘학원에 빠져도 되니 꼭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조수미 선생님의 공연장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그때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공연 후 조수미 선생님께 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어요. 당시 어머니는 ‘저 사람을 기억해라,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하셨죠. 지난해 조수미 선생님과 함께 공연했을 때 저만큼이나 어머니가 기뻐하며 많이 우셨어요.”

    “난 클래식에 뿌리 둔 발라드 가수 디너쇼·뮤지컬 할 겁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성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학생회장까지 맡았던 그가 ‘외고’가 아닌 ‘예고’를 택하자, 담임교사나 가족은 아연실색했지만 어머니만은 ‘좋은 선택’이라며 격려했다.

    이렇게 성악을 좋아하고 성악 분야에서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던 그가 ‘크로스오버’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 박인수 교수가 그의 지도교수였다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박 교수는 정지용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를 가수 이동원 씨와 함께 불러 반향을 일으켰다.

    “성악을 좋아했지만, 정형화된 틀에는 답답함을 느꼈어요. 제가 가진 것을 자유롭게 다 보여주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었거든요. 그러던 중 박인수 교수님과 함께 조영남 선생님 디너쇼에 갔죠. 교수님이 게스트로 출연하셨거든요. 당시 디너쇼에 온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박인수 교수님처럼 클래식이라는 바탕 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었고, 조영남 선생님처럼 디너쇼도 할 수 있는 성악가도 되고 싶었어요.”

    30kg 감량, 성대결절도 이겨내

    그는 100kg이나 되던 몸무게부터 줄였다. 한때 넉넉한 체중이 노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지만, ‘좋은 겉모습’이 실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을 바꿨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운동을 해 30kg이나 감량했다. 몸무게를 줄였어도 운동으로 다져진 몸에서 나오는 소리는 오히려 더 좋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생긴 성대결절이 지금도 그를 괴롭히지만, 꾸준한 연습 끝에 이를 넘어서 소리 내는 법을 체득했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크로스오버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제가 일탈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 음악을 21세기형 클래식의 한 형태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과거의 모습을 답습하는 게 클래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카이’라는 제 이름도 헬라어로 ‘그리고’라는 뜻이에요. 즉 무언가 계속 추가할 수 있는, 그래서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죠.”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을 맞은 카이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이상형은 함께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란다. 뮤지컬 배우로 입지를 다진 옥주현 씨와 듀엣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노래를 정말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올 상반기 중에는 ‘카이’라는 이름을 건 1집 정규 음반을 발표할 계획이다. 리메이크가 아닌 창작곡 위주로 10~13곡을 수록하는데, 이번 음반에 깜짝 놀랄 만한 아티스트가 참여하니 기대해달라고 했다. 1집 정규 음반 발표 후에는 콘서트를 열고, 기회가 되면 뮤지컬은 물론 정통 성악을 보여줄 수 있는 오페라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지금도 출연 섭외가 꽤 들어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보면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지는 법. 마찬가지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무언가 ‘망가짐’을 찾고 싶어진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카이에게서 타락한(?) 이미지를 찾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도 그는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착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 이런…. 하지만 그의 ‘착한 음악’이라는 말에선 뜨거운 진정성이 느껴졌다.

    “듣는 이에게서 충동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맑아지고 착해지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힘과 용기, 희망과 사랑이 되는 음악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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