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6

2010.05.10

‘옛길 찾기’ 만시지탄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05-10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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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열풍과 함께 각 지방자치단체가 ‘걷기 좋은 길’ 만들기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1995년 부산 다대포에서 서울 양재까지 400km 가까운 거리를 직접 걸었던 때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옛길 중 가장 큰 길이자 관도(官道)였던 영남대로(嶺南大路, 일본통신사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주일에 2~3일씩 짬을 내 지난번 여정의 끝에서 다시 걷기를 계속해 1년여가 지나 결국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완성했습니다.

    고지도 연구가와 역사지리학자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옛길 찾기’는 당시로는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대동여지도’ 목판본 사본과 1910년 작성 조선총독부 지도, 국립지리원 감수 현대 지도를 들고 무작정 출발한 길. 마을에 도착하면 최연장자를 찾아뵙고 어린 시절 그들이 걷던 길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냈습니다. 녹취한 내용과 지도를 대조하며 옛길의 흔적과 사라진 길의 위치를 고증했습니다. 각 지자체에 들러 군지와 시지에 표시된 길과 녹취 내용을 비교했고, 향토사학자들로부터 확인을 받았습니다.

    우리 선조의 눈물과 사연이 담긴 길을 발굴한다는, 옛길도 하나의 문화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길이 지나가는 곳에 자리한 각 지자체와 문화관광부의 무시와 냉대는 거의 방해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옛길 찾아서 뭐 하나요?”라며 시지와 군지조차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버티는 곳도 있었고, 아예 “우리는 옛길 같은 것 모른다”며 문전박대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대동여지도의 해설서인 ‘대동지지’의 번역을 요청하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거절하더니,
    ‘옛길 찾기’ 만시지탄
    그동안의 성과를 책으로 묶어내겠다고 하자 “왜 그런 일을 언론사가 하느냐”며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새로 발굴한 옛길 자리에 ‘선조들의 길’이었음을 표시하는 작은 안내석을 세워달라는 요구는 번번이 묵살됐습니다.

    길 찾기가 끝나고 5년쯤 지나 기자의 글을 보고 영남대로를 따라 걷는 모임이 생기더니 이제는 그들이 걸은 이야기가 책으로 엮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자체들은 걷기가 마치 새로운 유행상품인 양 선전하며 우후죽순으로 ‘인공 길’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길은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걷기 본능’을 잊고 살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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