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0

2010.04.06

불쌍하다, 그의 권력욕과 노예정신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 박경철 blog.naver.com/donodonsu

    입력2010-03-31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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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쌍하다, 그의 권력욕과 노예정신이!
    “인간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려고 하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복수를 꿈꿀 생각도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철저히 밟아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감명 깊은 책이나 현재 읽고 있는 책을 물으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필자는 그분들이 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진짜 읽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읽었거나, ‘군주론’이라고 답해야 리더십 강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는 착각 또는 오해를 한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군주론’은 인간을 다루는 방식 가운데 가장 천박한 방식을 말하고, 이 책의 구절구절과 책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그야말로 구역질나는 모리배의 계략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군주론’은 출간 당시인 1559년 이미 로마교황청의 금서목록에 올랐다. 이 책의 비윤리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저자 마키아벨리는 오히려 이런 천박한 공격성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는 피렌체공화국의 유능한 관리였지만, 실질적 주인인 메디치가(家)의 장손에게 당시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프랑스와 내통했다는 부역 혐의를 받고 고문을 당했다. 그때 그가 당한 고문이 고야의 그림으로 유명한 ‘스트라파도’다. 손목을 뒤로 묶어 천장에 사람을 매달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잔인한 고문. 어깨와 팔꿈치, 손목이 골절되거나 탈골하는 게 여반장이었지만 마키아벨리는 놀랍게도 고문을 끝까지 이겨내고 자백하지 않아 교수형을 모면했다. 피렌체에서 추방된 그는 지인들을 통해 절치부심 재기의 기회를 노리지만 결국 권력의 중심으로 다시 진입하는 데 실패하고 촌 늙은이로 여생을 마친다. 낙향한 그는 옛 위인이나 영웅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말을 조탁해 새로운 이치를 발견하는데, 그 노력의 결과물이 ‘군주론’인 셈.

    “훌륭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때, 그리고 약속을 한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는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 된다. 이 조언은 모든 인간이 정직하다면 온당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신의가 없고, 당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그들과 맺은 약속에 구속돼서는 안 된다. 군주는 모든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그런 것처럼 꾸미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심지어 나는 군주가 그런 성품을 갖추고 늘 가꾸는 것은 해로운 반면,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오히려 그 이면을 읽어야 한다. 독자들은 ‘군주론’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이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포착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이 책의 논지는 역겹지만, 안타깝게도 그 약점을 간파한 마키아벨리의 안목마저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 충격적인 사실은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자신을 고문하고 내팽개친 메디치가에 헌정했다는 점이다. ‘군주론’을 통해 메디치가의 충복으로 복귀하려 했던 것. 그가 이 책을 메디치가에 헌정하면서 쓴 서문에는 권력을 향한 그의 욕구와 노예정신이 집약돼 있다.

    “풍경 화가는 산이나 들을 그리기 위해 산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고, 평원을 그리기 위한 전망을 확보하고자 높은 곳에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민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군주가 될 필요가 있고, 군주의 성격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선 인민의 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위대하신 전하께서 그 높은 곳에서 어쩌다 여기 낮은 곳에 눈을 돌리시면, 제가 엄청나고 잔악한 불운으로 얼마나 부당한 학대를 받고 있는지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전하의 충복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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