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0

2010.04.06

뭐, ‘찍찍이’ 자동차가 나온다고?

첨단 접착제 ‘자연’에서 모방 … 도마뱀과 우엉이 최고의 선생님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입력2010-03-30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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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찍찍이’ 자동차가 나온다고?
    2008년 4월 러시아의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한국인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온 이소연 씨는 평범한 일상 용품 덕을 톡톡히 봤다. ‘벨크로(velcro).’ 우리말로 ‘찍찍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이씨는 ISS에서 한 인터뷰에서 “모든 물체가 떠다니는 무중력 상태에서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벨크로가 있어 괜찮다”며 주변 물체를 찍찍이로 붙이는 시범을 해보이기도 했다. 무중력 상태인 ISS에서는 거의 모든 물체에 벨크로를 붙인다. 벽에도, 컴퓨터에도, 심지어 식판에도. 무중력 상태에서 제멋대로 날아다니지 않도록 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낯설지 않은 문방구가 우주탐사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벨크로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작은 면적으로 더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리는 접착력을 갖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생체모방 기술을 비롯해 각종 첨단 소재 기술이 적용된다.

    우주에서 가장 유용한 벨크로

    올 2월 미국의 GM은 열로 붙였다 떼는 강력한 신개념 접착제를 선보였다. 일반 벨크로의 10배 가까운 접착력을 지닌 이 신개념 접착제는 게코도마뱀의 접착 원리를 이용했다. 과학자들은 일찍부터 벽 타기의 명수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에 주목했다. 게코도마뱀은 수직의 벽이나 유리창을 미끄러지지 않고 살금살금 올라가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게코도마뱀이 미끄러지지 않는 데는 발바닥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에는 수백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지름의 섬모가 수억 개 있다. 이 작은 털들이 물체 표면에 닿으면 표면을 이루는 분자와 털들 사이에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며, 이 힘으로 몸무게를 지탱하게 된다. 즉, 분자와 분자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반데르발스 힘이 발생하는데, 이 힘이 표면 분자와 작은 털 사이에 생기면서 강한 접착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GM이 개발한 신개념 접착제 역시 게코도마뱀의 접착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이 접착제는 형상 기억 고분자를 이용해 개발됐다. 형상 기억 고분자는 평상시 단단한 플라스틱 성질을 갖고 있다가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면 가지 모양의 고무 성질로 바뀌는데, 이 고분자의 경우 68℃에서 고무 성질로 바뀐다. 이는 고분자 화합물에 들어 있는 수소가 강한 수소결합을 형성하기 위한 최상의 구조.



    단단한 플라스틱 상태에서는 분자 간 접촉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온도를 높여 고무 상태로 바뀌면 분자 간 접촉이 일어나 수소결합이 생기면서 양쪽 고분자가 서로 접착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다시 온도가 떨어져 단단해져도 표면은 그대로 붙은 상태를 유지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가장 우수한 접착제의 접착력은 100N/c㎡인 데 비해 신개념 접착제는 700N/c㎡에 이른다. 게다가 접착제에 사용된 고분자는 가열되면 수분 이내에 강한 접착 상태를 이루었다가, 다시 열을 가하면 쉽게 떨어진다. GM 연구소의 타오 지 박사는 “이 접착제는 접착과 분리를 각각 2차례 반복해도 최초 접착력의 3분의 2 이상 유지할 수 있다. 이 접착제는 강력 접착제 수준으로, 접착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신발과 장갑 사용 땐 벽타기도 가능

    자연계의 생물을 모방해 접착물질을 만들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벨크로 역시 생체 모방 접착물질 가운데 하나다. 1948년 스위스의 엔지니어 조지 드 메스트랄은 산책하고 돌아온 뒤 자기 옷에 수많은 우엉 씨앗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 메스트랄은 씨앗의 갈고리가 옷에 걸린 모습을 모방해 두 물체를 붙일 수 있는 벨크로를 만들었다. 씨앗을 널리 퍼뜨리려는 우엉의 생존 전략이 접착 도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벨크로는 떼었다 붙였다 하기 쉬운 덕에 문방구는 물론 방송, 우주개발, 물류 분야에서 필수 제품이 됐다.

    뭐, ‘찍찍이’ 자동차가 나온다고?

    1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는 접착제 벨크로. 일명 ‘찍찍이’. 2 벨크로는 우엉 씨앗을 모방해 갈고리 형태로 접착력을 높였다. 3 수직의 벽이나 유리창을 미끄러지지 않고 올라가는 게코도마뱀. 4 게코도마뱀 발바닥에는 수백nm 지름의 섬모가 수억 개 나 있다.

    바다에 사는 홍합 역시 오래전부터 우수한 접착력을 인정받았다. 홍합은 바위에 한 번 달라붙으면 칼로 긁어내야 겨우 떨어질 정도로 접착력이 강하다. 홍합의 발에서는 접착력이 강한 끈적끈적한 단백질 성분이 분비된다. 과학자들은 홍합의 분비물질 성분으로 만든 밀봉제를 사용해 손상된 태아막을 복구하거나 수술 환자를 봉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홍합의 단백질 성분은 물이 묻으면 접착력이 더 강해지는 특징이 있어 물에서 사용되는 접착제를 만드는 데 쓰인다.

    잎벌레의 접착력도 주목받는다. 이 잎 저 잎을 옮겨다니며 사는 잎벌레는 자연계에서 탁월한 벽 타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2000년 미국 코넬대 토머스 아이즈너 연구팀은 잎벌레의 한 종류인 ‘플로리아산 무당벌레’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했다. 이 벌레는 자기 몸무게의 60배나 되는 무게를 짊어진 채 2분 동안 벽에 붙어 있을 뿐 아니라, 순간적으로는 100배 정도의 무게를 감당하기도 한다. 딱정벌레목의 잎벌렛과에 속하는 이들 곤충은 2만5000여 종으로, 전 세계에서 흔히 관찰된다.

    잎벌레가 잎을 옮겨다닐 때는 표면장력의 원리를 이용한다. 잎벌레의 다리 끝에는 물이 나오는 작은 구멍들이 있다. 여기서 나온 물은 잎 표면과 접촉하면서 접착력을 띤다. 젖은 유리판 2개를 겹치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원리와도 같다. 코넬대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지름 30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분의 1m)의 작은 구멍 1000개를 낸 뒤, 전압에 따라 구멍에 물을 흘렸다가 멈추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 작은 구멍에 소량의 물을 공급하면 표면장력이 생겨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다. 현재까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클립 30g 정도를 들어올릴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손가락 1개 넓이에 지름 1μm인 구멍을 수백만 개 배열하면 7kg의 물체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체 모방형 접착제나 접착 장치는 가구, 장난감, 건축물 등 어디에도 사용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탈 수 있을 정도로 접착력이 강력한 신발과 장갑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또한 신용카드만한 크기로 우리 몸을 들어올릴 수 있는 강한 접촉력의 상품도 개발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공학전문지 ‘테크놀로지 리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생체 모방형 접착장치를 이용한 맞춤형 차량 제작도 가능하리라고 전망했다. 생체 모방 접착장치를 이용하면 자동차 범퍼나 트림을 차량 본체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방식으로 차량 개조가 가능하다는 것. 영국 셰필드대 물리학과 마크 게오히겐 박사는 이들 접착제로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조립하면 제품의 재활용률도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용접 방식으로 조립한 제품보다 훨씬 쉽게 분해하고 다시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오히겐 박사는 “장애인 시설이나 사무실, 호텔 연회장, 공연장처럼 조립과 해체를 자주 반복해야 하는 분야에서 먼저 응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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