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0

2010.04.06

사시 출신자들 “I ♥ 경찰”

경정 3명 특채에 112명 몰려 37.3대 1 경쟁 … 안정된 조직에 현장성과 리더십 매력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3-30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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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시 출신자들 “I ♥ 경찰”

    사법시험 출신 경찰들은 경찰 업무의 ‘현장성’에 매력을 느낀다. 사진은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들이 현장 조사를 벌이는 모습.

    사법시험(이하 사시) 출신 경찰관 A(39) 경정은 경력이 복잡하다. 사시를 중간 성적으로 합격한 그는 판·검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로 개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변호사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수임사건이 없어 사무장과 직원의 월급조차 제때 주지 못했다. 결국 사무실을 접은 그는 대기업 법무팀에 입사했다. 직책은 과장. 사시 출신 선배들이 부장, 이사로 들어간 것과 비교하면 홀대를 받은 셈. 하지만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에 불만이 있을 수 없었다.

    기업 소속 변호사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변호사 체면에 임원의 비서 노릇을 해야 하는 관행도 싫었고, 말이 되지 않는 소송을 억지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그가 고민 끝에 선택한 진로는 경찰관 경정 특채. 자신의 법률 전문지식을 국민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사건현장에서 근무하는 역동성과 직원들을 통솔하는 리더십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경찰 각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

    사시 출신 경찰 수는 현재 42명에 불과하지만 각 분야에서의 활약상은 뛰어나다. 강희락 경찰청장, 김중확 경찰청 수사국장, 김학배 경찰청 보안국장이 대표적인 사시 출신 경찰관. 2009년 12월 경찰공무원(경정) 특별채용은 3명을 모집하는데 사법연수원 수료자 또는 예정자 112명이 지원했다.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이야기다. 10년 전인 1999년 6명 모집에 겨우 13명이 지원했던 것에 비해 경쟁률이 약 17배 증가했다.

    경정 특채 응시자격은 사법연수원 수료자, 수료 예정자이며 27세 이상 40세 이하로 병역을 필했거나 면제받았어야 한다. 필기시험은 객관식 각 25문항으로 국사, 행정학을 본다. 필기시험 합격자는 총점의 60% 이상 득점자 중 상위 15명 범위에서 결정한다. 최종합격자는 필기시험 75%, 면접시험 25%를 합산한 성적을 놓고 고득점자 순으로 결정한다. 사법연수원 성적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합격자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중반. 경찰청 인사교육과는 “나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합격한 이들은 “현장 지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이를 고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날이 사시 출신 경정 특채시험의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뒤늦게 공부에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 이미 합격한 선배를 찾아가 면접 노하우를 묻는 사람도 부지기수. 서울 한 경찰서의 사시 출신 경정 B과장은 “사법연수원 2년차 때 두 달 동안 독서실에 다니며 집중력 있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시 출신 C경정은 “고시 출신에게 다시 시험을 요구하는 곳은 경찰밖에 없다.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다”고 털어놓았다.

    사시 출신 경찰들은 사시 합격자의 지원이 크게 증가한 이유로 ‘경찰의 위상 강화’를 꼽았다. 사법기관으로서 경찰이 갖는 위상이 과거보다 높아졌고 경찰의 능력, 청렴성 등을 고려할 때 일하고 싶은 조직이라는 것. 사시 출신 경찰의 연수원 평균 성적은 중간으로, 판·검사 임용자나 인기 공공기관 입사자보다는 낮은 편. 사시 출신 D경정은 “사시 합격자 수가 크게 늘어나서 법조시장도 포화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된 경찰조직은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사시 출신 경찰들은 경찰조직의 가장 큰 매력으로 현장성을 꼽았다. 현장 가까이 있기에 가만히 앉아서 기록만 검토하는 판·검사와 다르다는 것. 사시 출신 E경정은 “업무가 능동적이어서 현장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휘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사법연수원을 나와 다른 기관에 가면 실무자 5급이지만 경찰에 오면 지휘자 5급이다. 검사 밑 직원은 서너 명에 지나지 않지만 경찰 조직에서 일선 과장은 그보다 많은 직원을 통솔한다. D경정은 “리더십이 뛰어난 인간형이 많이 지원한다. 일선 형사들과 팀워크를 다지고 신뢰를 형성하며 일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사시 출신 바라보는 복잡한 내부 시선

    현장으로 나온 그들은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검찰에는 사시 동기도, 후배도 있을 수 있다 보니 불편할 수도 있다. A경정은 “처음에는 검찰의 지휘를 받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검찰에 송치된 내 서류가 반송되지 않게 더 꼼꼼히 서류를 보는 등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반면 E경정은 달랐다. 그는 “지휘를 받아도 조직, 체계가 다르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대부분 검찰과 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답했다. 검사가 알아서 신경 써주는 부분도 있고 사시 출신 공감대가 형성돼 협조도 잘된다는 것.

    사시 출신자들 “I ♥ 경찰”

    2010년 1월 경기 일산시 사법연수원에서 39기 수료생 978명이 법조인으로 출발을 다짐하는 서약을 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사시 출신 경찰을 바라보는 경찰 내부의 시각은 복잡하다. 순경 출신의 한 경찰관은 “사시를 통과한 우수 자원이 경찰에 들어오면 경찰조직의 힘이 된다”며 반겼다. 간부후보생 출신의 경찰도 “사시 출신들이 예의 바르고 의욕도 넘친다. 처음 업무에 적응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도 구해야 하는데 유대관계가 원만한 편이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찰대 출신의 경찰은 “사시 출신이라고 유별난 존재가 아니다. 함께 경찰에 몸담고 있는 동료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과장으로 부임하는 순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산적한데 경험이 일천하니 금세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 경찰대 출신 A경감은 “과장(경정)은 일선 서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다. 그런데 처음 온 사람이 지휘를 잘할 수 있겠나. 초임 검사가 지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비판했다. 간부후보생 출신 B경감도 “경정 특채로 부임한 과장은 경험이 없어 여기저기 휘둘리기도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승진 문제가 걸리면 내부 견제도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경정 진급 뒤 지방으로 내려간 경찰은 2년이 지나면 서울로 복귀한다. 그러나 인사 적체가 심해져 경정 진급자가 4년 만에 서울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경찰조직 경험이 없는 사시 특채가 경정으로 들어와 일선 경찰서 과장으로 자리를 잡으면, 타 출신의 복귀가 그만큼 늦어진다는 점이다. 한 사시 출신 경찰은 “간부후보생, 경찰대 출신들이 ‘경정 특채는 가만히 있어도 총경까지 되지 않느냐’ ‘나가서 변호사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자신들을 경계하는 시선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 경험 부족 등을 이유로 사시 출신의 대우를 경감 특채로 낮추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시 출신인 강희락 경찰청장도 “계급을 경정이 아닌 경감으로 낮추는 문제를 고려해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대신 로스쿨 졸업과 실무 연수로 바뀌는 상황에서 과거 사시 합격생에게 주던 특혜를 로스쿨 출신에게까지 그대로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경찰대 출신 한 경찰은 “경찰대 출신 현직 경위가 사법시험에 합격해도 곧장 경정을 달아주지 않고,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온 뒤 2~3년을 기다려야 경정을 단다”며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해박한 법률지식과 맨파워가 강점

    실제 2007년 무렵, 사시 출신 경정이 경찰청 본청에 모여 특채 계급을 경감으로 낮추는 문제에 대해 간담회를 열었으나 대다수가 반대해 논의가 없었던 것이 되고 말았다. A경정은 “다른 기관에 가면 5급 대우를 받는데 여기서 6급(경감) 대우를 한다면 어떤 지원자가 오겠는가. 타 출신의 견제 의도가 짐작된다”고 밝혔다. D경정은 “기득권인데 누가 내놓으려 하겠는가? 경감으로 낮추는 것은 반대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경찰청 한 고위 간부는 “오래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유야무야됐다”며 “현실성이 낮다”고 봤다.

    도리어 사시 출신 경찰관들은 경정으로 부임하면 조직에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자부했다. 타 출신이 경정으로 진급하는 동안 경험을 쌓은 만큼 조직의 논리에 순화되기 쉬운 반면, 사시 출신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경찰을 바라본다는 논리다. 사시 출신 D경정은 “수사·형사 지휘자는 조직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경험이 없다는 지적에 사시 출신 경찰관들은 ‘해박한 법률지식’이란 방패를 내세우며 정면 돌파하려 한다. 사시 출신 F경정은 “우리는 법률전문가다. 수사·형사 부분에서 강점을 지닌다”고 했다. 강희락 청장이 충북 청주서부경찰서 수사과장 시절 해박한 법 지식을 활용, 검찰 송치서류를 작성하는 조사계 직원들을 위해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 대외기관과 협력이 잦은 경찰 업무에서 사시 출신 경찰이 갖는 ‘맨파워’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시 출신자들이 각계에서 활약하는 상황에서 사시 출신만의 네트워크가 작용한다는 얘기다.

    사시 출신 경찰관들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자부심과 그에 걸맞은 활약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다. 다만 이들은 사시 출신 경찰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사시 출신 E경정은 “사법시험을 통과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수사·형사 분야다. 이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도록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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