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0

2010.04.06

“오해 푸십시오” vs “뭐가 오해인가”

與, 불교·천주교와 대립 국정 운영에 큰 부담 … 당·정·청 일제히 나서 ‘설득과 소통’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3-29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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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 푸십시오” vs “뭐가 오해인가”

    1 2009년 6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오찬 간담회에 초대한 7대 종단대표와 청와대 상춘제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2 2008년 7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최근 또다시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3 불교계는 지난해 6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기독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다른 종교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0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종교 편향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여권은 주로 불교계와 이런저런 마찰을 일으켰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에 들어선 시점에 다시 정부 여당과 종교계 사이에 알력이 생겼다. 이번에는 공교롭게 불교뿐 아니라 천주교와도 전선이 형성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외압설로 불교계가 발칵 뒤집힌 것과 때를 맞춰 시작된 천주교 주교회의 4대강 사업 반대성명의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가 천주교의 4대강 사업 반대운동에 초기 대응을 서툴게 하는 바람에 천주교 측의 반발을 자초했고,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불교계와의 갈등은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여당의 차기 지도체제에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3월 21일 안 원내대표가 “정권에 비판적인 봉은사 주지를 그냥 둬서 되겠느냐”며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하면서 파문이 시작됐다. 봉은사의 조계종 직영 결정에 정치적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다.

    ‘봉은사 발언’ 사실 땐 엄청난 후폭풍

    안 원내대표는 이를 부인한다. 하지만 자승 총무원장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안 원내대표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김영국 씨가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명진 스님의 (봉은사 외압) 말씀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안 원내대표가 궁지에 몰렸다.



    안 원내대표의 ‘봉은사 발언’을 듣고 명진 스님에게 전달한 장본인이기도 한 김씨는 현재 직함이 ‘조계종 총무원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이지만 원래 정치권 출신이다. 한나라당 부대변인, 고흥길 의원과 서석재·손학규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특히 고인이 된 서석재 전 의원이 1995년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며 발설한 ‘전직 대통령(노태우 전 대통령) 수천억 원대 비자금 은닉설’에 대한 정보를 서 전 의원에게 보고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그렇다고 김씨가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안 원내대표의 발언을 명진 스님에게 전달, 문제가 커진 뒤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를 확산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봉은사 외압설이 사실로 확인되면 가뜩이나 ‘좌파 교육’ 발언으로 궁지에 몰린 안 원내대표의 거취는 물론, 한나라당의 향후 지도부 구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안 원내대표의 임기는 5월 21일까지다. 그러나 18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을 신속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김성조 정책위의장과 5월 4일 물러날 예정이다. 이후 안 원내대표는 하반기 국회의장에 도전하거나 7월 정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직에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돼왔다. 특히 친이(親李)계인 그가 아직은 당 지도부 입성이 어려운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는 친이계의 전반적인 향후 여권 운용 구상과도 맞물려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천주교 측이 4대강 사업 반대에 총력을 기울인 부분도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천주교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1500인 사제 선언을 한 데 이어 교황청 차원의 입장 표명까지 추진하고 있다. 300만 명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3월 12일에는 주교회의 명의로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지방선거와 연계해 사실상 특정 후보집단의 낙선운동에 돌입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 대통령은 3월 23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4대강 살리기를 정치적 목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설명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두 소중한 국민”이라고 말했다. 4대강 홍보 강화를 주문한 셈이다.

    6월 지방선거에 파장 미칠까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 중 ‘정치적 목적’이란 부분에서 천주교 측은 발끈했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를 이끄는 조해붕 신부는 평화방송에 출연해 “(여권이) 본질을 잘못 보는 것 같다”며 “종교가 왜 이렇게 나서고, 부르짖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그냥 선거 때 하는 이야기로만 듣는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 신부는 또 정운찬 총리가 ‘앞으로 주교님들을 만나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맥을 잘못 짚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천주교의 4대강 반대에 따른 청와대의 대응방식을 놓고 여권 내부에서조차 마찰음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예결위원장까지 지낸 이한구 의원은 이 대통령의 ‘홍보 강화’ 지시와 관련해 “‘4대강 사업은 정당한데 국민이나 일부 전문가가 뭘 몰라서 그러는 것 아니냐, 좀 알려줘라’는 식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 그것은 설득이 아니라 일종의 강요”라고 주장했다(3월 24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이 의원은 또 “천주교 주교회의라는 건 굉장히 영향력 있고 권위 있는 모임이기 때문에 이분들의 의견은 매우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천주교 주교회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감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처럼 여권이 불교, 천주교와 별개의 대치전선을 형성하고, 그 여파가 이 대통령의 종교 편향 시비를 재점화함은 물론 전반적인 국정운영에 타격을 줄 조짐을 보이자 당·정·청이 일제히 종교계와의 소통에 나섰다.

    우선 청와대는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이 종교계 인사를 폭넓게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불자 모임인 ‘청불회’ 회장이기도 한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청와대 인근 안국선원에서 매달 갖는 정기법회 등을 통해 이 대통령과 불교계의 가교 구실을 할 계획이다. 천주교의 경우 김백준 총무기획관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청와대 교우회’를 만들어 인식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구실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박형준 정무수석, 박선규 대변인 등은 잇따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청와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행정부 차원에서는 정 총리가 천주교, 주호영 특임장관이 불교로 역할을 분담한 모습이다. 주 장관은 불교계 인맥이 폭넓어 2007년 대선 때도 이 대통령에 대한 불교계의 반감을 크게 누그러뜨린 바 있다. 한나라당 역시 안 원내대표와 명진 스님의 ‘진실공방’과는 별개로 종교계와의 접촉면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여권의 이런 노력과 사태 확산을 원치 않는 조계종 내부 분위기, 그리고 천주교 일각의 ‘4대강 사업 개입 불가’ 목소리 등이 어우러지면 이명박 정부의 종교 갈등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도 있다. 다만 이번 사태가 세종시 논란의 와중에 벌어졌고 6월 지방선거도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실제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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