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8

2010.03.23

이젠 ‘자궁 밖’에서… 늘어나는 영아살해

낙태수술 단속할수록 극단적 선택 늘어날 가능성 커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0-03-1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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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자궁 밖’에서… 늘어나는 영아살해
    3월5일 오후 1시 동대문경찰서. 손에 수갑이 채워진 한 여성이 잔뜩 웅크리고 앉아, 기자의 질문에 웅얼대며 답했다. 눈물 콧물 흘리며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가녀리게 떨렸다.

    “낙태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6, 7개월째에 임신했다는 걸 알고 수술하려 했는데 수술비가 너무 비싸더라고요.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낙태가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그냥… 낳기로 했어요. 예정일이 3월 말이라 그때 되면 사회단체에 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술을 잔뜩 마신 날에 예상보다 (아기가) 빨리 나와 혼자 낳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거예요.”

    사기, 절도 혐의로 수배 중이던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2월24일 동대문구의 한 모텔에서 아이를 낳아 살해한 김씨(37)는 경찰조사에서 “채팅으로 알게 된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원치 않은 아이였기에, 출산하자마자 보기 싫어서 살해했다”며 상반된 진술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1997년에도 성폭행으로 생긴 아이를 같은 방법으로 살해한 죄로 1년간 복역한 뒤, 사회단체 등을 상대로 사기를 치며 근근이 살아왔다.

    “원치 않은 아이 꼴 보기 싫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눈길이 가는 건 노파심 때문이다. 낙태수술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오히려 영아살해가 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피임법은 물론 낙태수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스파르타에서는 강인한 국가를 만든다며 허약한 영아를 살해했고, 고대 로마에서는 미숙아나 기형아를 죽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잘 때 질식사시켰으며, 프랑스에서는 영아살해가 도덕적 타락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아동의 탄생’, 새물결출판사 펴냄).



    게다가 전문가들은 그렇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이창무 교수는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회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낙태만 금지하면 영아살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자궁 안’이 허용되지 않으면 ‘자궁 밖’에서라도 인공적으로 태아를 제거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영아살해는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31건의 영아살해 사건이 발생했는데, 2005년에는 23건이 발생했고 2008년 9건으로 줄어드나 싶더니 2009년에는 11건으로 다시 늘었다(표 참조).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박순진 교수는 ‘혼외 임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영아살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미혼모, 불륜이나 성폭행으로 아이를 낳은 여성들 같은 혼외 출산자들은 자신을 터부시하는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죄의 근원인 아이를 없애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 혼외 임신에 관대한 유럽은 이런 이유 때문에 영아살해를 저지르는 비율이 매우 낮다. 한국은 영아살해에 관한 연구 논문이 없어 발생 원인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혼외 임신에 대한 부정적 시선

    이젠 ‘자궁 밖’에서… 늘어나는 영아살해

    영아살해는 극단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산후우울증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2009년 5월 A씨(26)가 부산 서부경찰서를 제 발로 찾아왔다. 2008년 8월20일 자신의 집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옷장에 넣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다용도실에 9개월간 방치해오다 죄책감에 자수를 결심했다. 술집 종업원이던 그는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낳으면 누구보다 잘 키우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낳고 보니, 처녀가 아이 낳은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웠다. 알코올 중독으로 요양소에서 치료 중인 아버지 뒷바라지를 위해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차마 아이를 안길 순 없었다. 결국 A씨는 두려움에 못 이겨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것조차 포기하고,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2009년 3월24일, 전북 전주시 평화동을 걷다 산고를 느껴 공중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B씨(40)도 혼외 임신이 발각될까봐 영아살해를 택했다. 식당에서 일하며 알게 된 유부남 C씨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자 이혼녀 B씨는 출산 후 벌어질 상황이 무서워 아이를 엉겁결에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린 것.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딸과 장애인으로 힘들게 농사지으며 이혼한 딸의 뒷바라지까지 하는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었다. 안 그래도 이혼하고 고향에 돌아와 동네사람들이 수군대는 판에 아이까지 낳아오면 견딜 수 없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23일, 극단 매표소 직원인 D씨(19)는 8개월 된 아들을 이불로 덮어 숨지게 한 뒤 비닐봉지에 넣어 근처 쓰레기더미에 버렸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남편과 이혼소송을 준비 중이던 그녀는 매표소 일마저 육아 때문에 계속할 수 없자 나날이 곤궁해졌다. 배고프다며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맹물을 먹이기도 여러 차례. 숨넘어갈 듯 우는 아이를 보다 못한 D씨가 베개로 아기의 얼굴을 눌러 숨을 멈추게 했다. 아이를 놀이방에라도 맡겨야 생활이 가능했던 여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발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정서불안도 영아살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7년 12월5일,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다 태어난 지 한 달 된 자신의 둘째 아들을 마을(함안군 칠원면 무기리) 저수지에 던진 주부 김모(35) 씨는 산후우울증을 제어하지 못해 일을 저질렀다.

    물론 영아살해는 극단적인 선택이다. 사회적 시선이 두렵다고,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이 낳은 아이를 해치진 않는다. 연세대 정신과 신의진 교수가 “어린 시절의 애착 부족으로 공감 능력이 떨어졌거나 정신이 불안정한 경우 영아살해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신 교수는 “낙태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 또한 불안이 가중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우려한다. ‘혼외 임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개선되지 않는 한 영아살해라는 불길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나의 부속물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물론, “가족과의 관계보다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하는 환경”(한남대 이창무 교수)이라는 군불도 무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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