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8

2010.03.23

成大 유학대학원 떴다

유교경전·예학전공에 명사들 몰려, 유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 반영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3-17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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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成大 유학대학원 떴다

    김성기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의 ‘선진유학 특강’.

    “몸을 챙기는 것은 곧 밥을 챙기는 것입니다. 선조들은 밥만 챙기는 사람을 ‘밥보’, 즉 ‘바보’라고 했어요.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정말 바보가 많아요. 대부분 몸에 집착하거든요.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논어’를 공부해야죠.”

    3월9일 오후 8시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의 한 강의실. 이 대학 동양학부 이기동 교수가 ‘학(學)’을 주제로 ‘사람은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가’를 ‘논어’에서 찾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중용’ ‘맹자’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욕심’ 등의 글자가 강의실 화이트보드를 빼곡히 채웠다.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채워지지도 않을뿐더러 욕심을 채우는 삶의 결과도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은 밟아서 없애야 합니다. ‘논어’나 ‘맹자’를 가까이 두고 되돌아보는 것도 욕심을 없애는 방법입니다.”

    이 교수가 욕심을 없애는 법에 대해 말하자 참여정부 시절 감사원장을 지낸 전윤철 경원대 석좌교수의 손이 올라간다.



    “욕심을 버리라고 하셨는데, 도요타와 경쟁해서 국력을 높이겠다는 기업가의 마음이나 유학을 연구해서 학문적 업적을 세우려는 학자의 마음도 욕심입니까?”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의 전 교수에게 이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변덕스러운 마음은 욕심, 변하지 않는 마음은 본심입니다. 같은 행위라도 마음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본심과 욕심이 갈립니다. 너도 나도 행복하기 위해 일하는 기업인의 마음은 본심, 다른 기업을 무너뜨리고 나만 잘살자는 마음은 욕심인 거죠.”

    두 사제 간의 문답은 두세 차례 이어졌고, 학생들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기거나 비슷한 질문을 하며 수업에 참여했다.

    “탈락자는 비학위 강의 들으며 재수 중”

    앞서 6시부터 진행된 1교시 ‘선진유학 특강’ 수업 분위기도 마찬가지. 1교시 강의를 한 김성기 유학대학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엑기스’만 뽑은 터라 학생들의 눈높이가 매우 높다. 예전에는 가끔 교수가 지각도 하고 휴강도 했지만 요즘은 교수들이 강의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진지하다”며 웃었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이 ‘떴다’. 2006년 전기 모집인원을 채우지 못했던 유학대학원이 2007년 신입생 경쟁률 1.16대 1을 돌파하더니 올해는 1.64대 1(25명 정원에 41명 지원)을 기록할 만큼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1988년 3월 문을 연 유학대학원은 유교경전·예학전공(유경과)과 서예학전공이 설치됐으며, 서류와 면접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올해는 유경과 정원을 7명(총 정원은 16명) 늘렸는데도 10여 명의 유명 최고경영자(CEO)가 탈락할 정도였다. 그만큼 경쟁력을 갖춘 학생들이 대거 지원했다. 탈락자 중 상당수는 비학위 과정에 출석하며 ‘재수 의사’를 밝히고 있다.”

    成大 유학대학원 떴다

    1 올해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입학한 박노빈·이우희 전 삼성 CEO와 한선교 의원(왼쪽부터). 2 신입생인 전윤철 교수, 김영석 전 우석대 총장과 4학기째인 박재갑 교수(왼쪽부터).

    유학대학원 행정실 김재수 계장의 설명처럼 이날 강의 시간에는 김영석 전 우석대 총장, 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 송용로 전 삼성코닝 사장, 이완근 신성홀딩스 회장(성균관대 총동문회장),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 이중구 전 삼성테크윈 사장, 전윤철 교수, 한선교 국회의원,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유명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왼쪽 맨 앞자리에는 이우희·이중구·박노빈 등 ‘전직 삼성 CEO’와 이완근 회장, 한선교 의원이, 오른쪽 뒷자리에는 김영석 총장, 전윤철 교수, 박재갑 교수가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신입생이지만 박 교수는 4학기째,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은 5학기째인 선배. 서 총장이 지난해 9월 ‘국제유학연합회(國際儒學聯合會)’ 이사장으로 추대돼 한국 유학의 위상을 더 높였다는 평가다. 연합회는 한국, 중국, 일본 등 21개국 유학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학단체. 서 총장은 2014년까지 학술단체의 연구 및 교류협력을 진두지휘한다.

    정신적 황폐함으로 경쟁에서 유학으로 ‘U턴’

    이들 학생은 화, 목요일 오후에 ‘선진유학 특강’ ‘논어연습’ ‘유학원론’ ‘학용연습’ 4과목을 듣는다. 그래도 학생은 학생. 학생이 된 백발의 CEO들도 수업교재와 교수의 강의 스타일을 묻거나 서로 인사하며 동문의 우의를 다졌다.

    정원 채우기도 벅찼던 유학대학원의 변신 이유는 뭘까. 이기동 교수와 김성기 대학원장은 ‘현대사회의 정신적인 황폐가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김 원장은 “태극기를 든 유관순과 김연아에게는 ‘우리의 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지만 몸통이 없으면 날기는커녕 생존하지도 못한다. 서구문명의 한계와 병폐를 경험한 한국인들이 이제 몸통을 찾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마음이 얼어붙으면 따뜻한 바람을 그리워하는 이치다. 앞만 보고 경쟁했지만 마음은 공허하다. 이 마음을 유학이 채우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날 수업시간에 40분 지각한 한선교 의원은 “정치생활에 바빴지만 뭔가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사상, 철학으로 그 부분을 채워놓고 싶었다. 우리 민족 저변에 흐르는 유학에 대한 순수한 관심에서 진학했다”고 말했다. 박노빈 전 사장은 “유학 공부로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했고, 이완근 회장은 “이제부터라도 이 교수가 말한 ‘철학적 방황’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윤철 교수의 진학 동기는 좀더 구체적이다.

    “오랜 기간 경제 관료를 지내면서 유교와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한 학자는 유교문화권 국가의 자본주의는 절대 번창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실체를 연구하고 싶었다. 막연히 알던 유교의 본질도 궁금했다.”

    ‘선배’인 박재갑 교수는 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한층 깊어졌다고 말했다. 종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한국 종교를 연구하는 ‘한국종교발전포럼’을 만들었고, 박사과정에서는 그 이유를 규명해볼 의지라고.

    이 밖에 36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된 서정돈 총장이 입학하면서 자연스레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 서 총장 스스로 지인들에게 유학대학원 입학을 권한 것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학교법인 성균관대 우종근 사무국장은 “중국의 공자(유학) 열풍이 정치적 사회주의, 경제적 자본주의라는 중국 내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가치철학으로서 관(官)이 주도한 것이라면, 한국에서의 열풍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과 성찰한 결과”라며 “그 중심에 600년 성균관대가 자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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