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8

2010.03.23

F-5 동시 추락 노후화 탓 아니다!

기후 악화, 비행 착각 현상(vertigo), 관제 실수 등 가능성 배제 못해

  •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입력2010-03-17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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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5  동시 추락 노후화 탓 아니다!
    하늘도 울고 사람도 울었다. 찬비가 뿌리던 3월6일 공군 강릉기지에는, 3월2일 사고로 순직한 F-5 조종사 3명의 영결식이 열렸다. 돌아오지 못할 하늘나라로 간 사람을 향한 땅에 남은 사람들의 그리움은 뼛속까지 사무치는 듯했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이 군인, 그중에서도 전투기 조종사라지만 닥쳐온 이별은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한다.

    사고가 난 직후 거의 모든 언론은 사고 난 F-5의 노후화에 관심을 집중했다. 사고기의 기령(機齡)은 각각 35년과 26년. 어민혁 대위(소령으로 추서)가 몰았던 F-5는 35년 된 것이니, 이 전투기 나이는 28세인 어 대위와 27세인 최보람 중위(대위로 추서)보다도 많다. 일부 언론은 “2000년 이후 F-5는 이번까지 일곱 번 떨어졌다”며 F-5를 사고 단골기종으로 표현했다. 과연 이번 사고는 F-5의 노후화가 원인일까.

    이번 사고는 훈련할 공역(空域)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일어났다. 작전 공역으로 이동하는 전투기들은 가까이 붙어가는 편대 비행을 한다. 그래야 상대 레이더에 잡혀도 한 점으로 나타나 아군 전투기 수를 감출 수 있다. 편대 비행을 할 때 가장 앞에 가는 전투기를 ‘장기(長機)’, 뒤따르는 전투기를 ‘요기(僚機)’라고 한다. 요기는 대개 장기의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기체 끝 사이의 거리는 1m 남짓으로 하고, 아래로 1m 정도 떨어져 날아간다. 요기가 여러 대라면, 요기끼리도 대충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기러기 대형 비행을 한다.

    F-5, 12만 시간 무사고 비행

    최근접 비행이지만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꼭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는 게 공군 측의 주장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늘 이런 비행을 하기에, 익숙해지면 요기를 몰 때도 주위 풍경을 봐가며 할 정도. 편대 비행 때 계기판을 보거나 전방을 관측하는 것은 장기의 조종사다. 요기 조종사는 장기의 움직임을 보고 비행한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F-5도 이런 비행을 하다 사고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고에서 주목할 점은 두 대가 동시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노후화가 추락 원인이라면, 이렇게 동시에 떨어질 수가 없다.



    사고 원인을 찾으려면 다른 추측을 해야 한다. 가능한 추측은 편대 비행 중 어떤 이유에선가 조종사가 비상탈출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추돌이 일어나 전투기 모두가 추락한 경우, 혹은 앞에 가던 장기의 조종사가 많은 구름 때문에 ‘버티고(vertigo)’라는 비행착각에 빠져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 것이 고도를 낮춰 땅으로 내려갔고, 요기는 그 뒤를 따르다 함께 산에 충돌한 경우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원인이 이런 것이었다면 최신형인 F-15K를 몰았더라도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이 중 원인 분석이 복잡해지는 것은 버티고에 걸려 두 대 모두 동시에 산에 충돌한 경우다. 비행착각은 악화된 기상 때문에 비롯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런 날씨에 훈련을 시킨 것이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관제팀은 이륙한 전투기의 항적(航跡)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상이 보이면 조종사들에게 알려, 비행착각 등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 따라서 관제팀이 제 구실을 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정비 불량으로 전투기가 제대로 조종되지 않아 추돌이나 충돌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 이 부분도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원인 추정은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파편과 사고기에 탑재돼 있던 조종사 음성기록장치(CVR)를 찾아내 분석하면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 따라서 노후화를 성급히 사고 원인으로 꼽지 말아야 한다. 사고를 당한 전투기들은 A대대 소속인데, F-5만 운영하는 이 대대는 2000년 11월 이후 이번 사고가 날 때까지 모두 3만 시간을 비행했음에도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 같은 기지에 있는 B대대도 오래된 F-5를 몰고 있는데 이곳 또한 32년간 무사고 비행 12만 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니, F-5를 사고 단골기종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반적으로 정비부대는 매뉴얼에 정해진 대로 전투기 부품을 교체한다. 35년 된 전투기라도 안에 있는 개개 부품은 그렇게 오래된 것일 수 없다. LCD TV가 보편화된 세상이라지만 진공관 TV도 부품을 제때에 교환해주면 제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워낙 오래되면 정비만으로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퇴역을 시킨다. 일반적으로 전투기에 적용하는 정년은 30년이지만, 30년을 넘겨도 전투기는 쌩쌩하게 날 수 있다. 지난 2월 한국은, 2007년에 수명이 다해 퇴역시킨 A-37 공격기 8대를 페루에 무상 양도했다. 향후의 페루 방산시장 진출 등을 노리고 한 일인데 페루는 이 공격기로 마약 소탕전 등을 할 예정이다.

    현대 공중전엔 적합하지 않은 기종

    오히려 F-5 교체의 필요성은 전장(戰場) 조건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F-5는 미국이 돈 없는 우방국을 위해 만든 보급형 저가 전투기다. 때문에 무장 능력이 작고 작전거리도 짧다. 현대 공중전에는 적합하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미공군에서 F-5를 고등훈련기로 쓰고 있다. 가난하던 시절, 한국은 이를 도입해서라도 영공을 지켜야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공군은 한국이 개발한 T-50을 개량한 FA-50으로 F-5 일부를 대체하고, 나머지는 새로 개발할 KF-16급 성능을 가진 KFX 전투기로 대체하려 한다.

    전투기 개발에는 10여 년의 시간이 들어간다. 잘 날고 있다고 하지만 F-5는 시대에 맞지 않으니 새 전투기로 교체해야 하는데, KFX 사업은 낮잠을 자고 있다. 지난해 국회는 이 사업 예산을 승인해주지 않았다.

    F-5는 워낙 대수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 결코 사고율이 높은 전투기는 아니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고물 전투기를 써서 그렇게 됐다고 비난하는 것은 이 전투기를 타고 작전해야 하는 우리 조종사의 사기를 꺾는 짓이다. 원인은 냉정하게 찾고, 해야 할 일은 옹골지게 추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한심한 공격형 헬기 개발사업(AHX)

    “사람 많이 싣는 공격헬기가 어디 있냐”


    F-5  동시 추락 노후화 탓 아니다!

    국내 기술로 만든 한국형 기동헬기(KUH) ‘수리온’.

    F-5 사고 다음 날인 3월3일 육군의 500MD 헬기가 엔진작동 불량으로 추락해 두 명의 조종사가 순직했다. 엔진 작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 사고는 노후화나 정비 불량이 원인일 수 있다. 500MD 헬기는 1970년대 북한의 전차세력 공격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당시 인기 있던 대전차 공격헬기는 AH-1 코브라였는데, 한국은 ‘지갑이 얇아’ 코브라와 함께 저가의 공격헬기인 500MD를 도입했다. 이제 30년을 넘긴 코브라와 500MD를 신형 공격헬기로 교체해야 한다. 국방부는 대형 공격헬기 분야의 스타인 미국의 AH-64 아파치 중고(中古)를 일부 도입하고, 나머지 공격헬기는 국내에서 개발하겠다며 AHX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AHX 사업이 이상한 형태로 가고 있다. 공격헬기는 전차와 싸워야 하기에 같은 기능을 갖췄다면 적의 반격을 덜 받도록 작아야 한다. 그래서 공격헬기는 조종사 외에는 사람 탈 공간이 없는데, 한국의 AHX는 조종사 외에 10명을 더 태우는 형태다.

    병력 수송을 하는 헬기를 기동헬기라 하는데, 한국은 ‘수리온’이라고 하는 기동헬기를 개발, 3월10일 첫 시험 비행을 성공시켰다. 기동헬기 생산이 코앞에 닥쳤는데 사람을 싣는 공격헬기를 만들겠다고 하니 “죽도 밥도 아닌 것을 만들려 한다”는 비난이 인다. 이렇게 된 데는 일부 예산을 부담하는 지식경제부가 “수리온은 너무 크다. 국방부가 개발하는 공격헬기를 토대로 사람이 타는 민수용 헬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AHX는 전투 능력은 약하면서 덩치만 커 쉽게 적의 표적이 되는 공격헬기가 돼버렸다. 노후화로 인한 헬기사고를 비난하기에 앞서 이런 식으로 정책을 짜는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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