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8

2010.03.23

제 살 깎아먹는 ‘어색한 동거’

민주당·국민참여당 선거연합 논의 ‘제로섬 게임’ 가능성 커

  •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rcmlee@hanmail.net

    입력2010-03-16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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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살 깎아먹는 ‘어색한 동거’

    2월2일 국민참여당 이재정 대표(오른쪽)가 대표로 선출된 직후 국회를 방문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경제학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법 좋은 자리에 ‘세이(Say)의 법칙’이란 물건이 놓여 있다.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Jean-Baptiste Say, 1767~1832)가 주장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는 논리다. 일단 공급이 이뤄지면 그만큼 자연적으로 수요가 생겨나므로, 유효 수요 부족에 따른 공급과잉이 발생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늘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주장이다. 고전파 경제학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다.

    당사자들은 펄쩍 뛸지 모르지만, 일반인의 눈에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차이다. 그들이 뱉는 말본새를 보건대, 계급적 또는 계층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진보 정당을 건설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당연히 국민참여당이 왜 탄생했는지 갸웃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주목해야 할 점은 국민참여당이 세이의 법칙대로 정치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유권자 나눠먹기 경쟁 불가피

    사실 우리의 정당체제는 이념, 가치, 사회적 뿌리가 폭이나 깊이 면에서 대단히 협애하고 취약하다. 현재의 정당체제가 유권자의 다양한 요구와 이해를 제대로 대표(representation)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투표율 46%, 투표 불참률 54%가 이를 극명히 말해주는 증거다. 찍을 정당이 없어 투표장에 가지 않은 사람이 절반을 넘으니, 새로운 정당이 출현할 구조적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하겠다. 결국 공급 이전에 수요가 엄존하는 셈이다.

    우리 정당사를 돌이켜보면 최근의 자유선진당, 국민신당, 국민당, 자민련 등 거대 양당을 제외한 제법 큰 제3당이 명멸해왔다. 이 또한 우리의 정당체제가 갖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경험적 지표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군소정당으로 출발해 자력으로 양대 정당의 하나 또는 집권당으로 발전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17대 총선에서의 열린우리당이 거의 예외적인 사례였다.



    이렇게 신생 정당의 등장이 필요하고, 또 그것을 추동하는 수요 기반은 충분하다. 허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신생 정당의 성공 여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당체제의 보수 편향성 때문에 진보 성향의 정당이 등장해 이 체제를 깨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진보 정당이 출현했는데도, 기존의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는 온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수 정당체제의 혁파에 대한 논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은 신생 정당이 등장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생 정당이 세이의 법칙처럼 시장에서 철수한 투표 불참자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즉 수요를 창출하는 공급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그간의 경험에 미뤄본다면, 지역적 기반이 분명하지 않은 정당은 수요 창출이 쉽지 않다. 새로운 수요의 창출은커녕 기존 정당의 지지기반마저 잠식하는 ‘분열 효과’를 낳았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이런 점에서 지역적 기반이 거의 없고, 민주당과 노선도 별로 다르지 않은 국민참여당의 성장 한계는 뚜렷하다.

    민주화 이후의 정치사를 보면 자민련이든, 국민신당이든, 자유선진당이든 신생 정당의 등장으로 투표율이 증가한 예는 찾기 힘들다. 2000년 총선에 비해 2004년 총선 투표율이 상승한 것이 유일한 예외다. 이때 57.2%에서 60.6%로 올랐다. 2004년 총선 전 열린우리당이 창당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 비해 2006년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48.9%에서 53.7%로 올랐으나, 신생 정당의 등장이 없었기에 2004년의 총선과는 맥락이 다르다. 따라서 신생 정당의 출현은 일반적으로 시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장에서의 점유율(market share) 경쟁으로 이어진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관계는 상생보다 제로섬의 가능성이 더 크다. 지난 16대 대선, 17대 총선에서 한 정당과 한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들을 놓고 나눠먹기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참여당이 어차피 민주당이 흡수하지 못할 표를 견인하는 구도가 아닌, 이른바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기’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의 관계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야권에서 선거연합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선거연합의 성패와 상관없이 국민참여당 후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참여당 후보가 없다면 민주당은 선거연합에 실패하더라도 한나라당, 민주당, 진보정당이 경합하는 후보 배열(arrangement)이기 때문에 최악은 아니다.

    기호 2번 공백 상태로 선거 치르나

    하지만 국민참여당의 후보가 있는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선거연합에 실패하면 한나라당,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정당의 후보 배열이 불가피하다. 이는 민주당에 매우 안 좋다. 한 여성에게 두 남성이 구애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선거연합의 방정식을 푸는 데도 국민참여당 후보의 존재는 골칫거리다. 단일화의 상대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참여당의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보다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앞설 경우 일순간 수세에 몰리게 된다. 만일 후보를 양보하면 기호 2번의 광역단체장 후보가 없는 ‘공백 상태’로 민주당의 경기지역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들의 아우성이 만만치 않을 것은 자명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마를 선언한 경기지사 선거가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시선을 한나라당으로 돌려보면, 당내에서 친이와 친박 계열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과연 같은 정당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대립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거에서 하나의 당으로 임한다. 반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별로 다르지 않은데도 두 개의 당으로 선거에 나선다. 이는 일종의 덧셈과 뺄셈의 차이다.

    다시 세이의 법칙을 상기해보자. 세이의 법칙에 대한 비판은 이렇다. ‘독점자본주의의 이론적 바탕이 돼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과잉을 낳았고, 그로 인해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초래했다.’ 빗대자면 국민참여당의 존재가 새로운 수요 창출이 아닌, 기존 수요에 대한 공급과잉이 돼 결국 양측 모두의 패배로 연결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아픔과 진통을 겪고 진정한 정치 발전을 이끌어내거나, 정당체제의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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