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2010.03.09

냉면의 40년 전설 여전하구나

서울 낙원동 유진식당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0-03-04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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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면의 40년 전설 여전하구나

    보들보들한 수육과 고소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하고, 부대끼는 목을 냉면으로 달래다 보면 마음의 빗장이 열린다.

    종로3가의 탑골공원과 종묘 일대는 거리 풍경이 남다르다. 오래된 건물 때문이 아니다. 한가로이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한바탕 토론을 펼치는 모습 덕분이다. 서울의 노인들은 여기에 다 모인 듯하다.

    탑골공원 뒤로는 낡고 오래된 식당이 곳곳에 박혀 있다. 노인들을 상대로 음식을 파는 곳이다 보니 상상외로 싸다. 국밥 한 그릇에 2000원 하는 집도 있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시설도 있고, 한 끼에 500원 받는 가톨릭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식당도 있다. 그렇다고 음식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맛도 있고 정성도 있다. 그래서 한 입맛 하는 젊은이들도 이곳을 들락거린다. 서울의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한 식당에 앉아 음식을 즐기는 광경은 이런 곳이 아니면 보기 드물지 않을까. 낙원동 식당에 가면 서울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도 새삼 느낀다.

    유진식당은 탑골공원 바로 뒤에 있다. 평양냉면을 전문으로 하며 빈대떡과 소·돼지 수육을 파는데 역사가 40년 이상 됐다. 그러니 손님 대부분이 단골이다. 자리가 좁아도 손님들은 큰 불만이 없다. 4인석에 둘둘 합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라, 주인이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손님이 알아서 합석한다. 그러니 난생처음 보는 합석 손님과 술잔을 나누기도 한다. 노포(老鋪)의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하는 것이다.

    주방은 식당 건물 밖으로 천막을 쳐서 마련했다. 국수 내리는 기계가 있고, 빈대떡을 부치는 철판이 놓여 있다. 주방을 거쳐 식당에 들어가게 되니 자리에 앉기 전에 벌써 빈대떡 부치는 소리와 메밀국수 삶는 냄새로 식욕이 돋는다. 가격도 좋다. 평양냉면 전문점은 한 그릇에 1만원까지 하지만 여기는 그 절반 값이면 된다. 맛도 좋다. 진한 육수에 메밀 면이 구수하다. 메밀 함량이 다소 떨어지는 듯하지만 이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쫄깃한 면발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것으로 여겨진다. 육수는 소·돼지 수육 주문이 많은 덕에 덩달아 진해진 것으로 보인다.

    유진식당에서는 고기나 빈대떡을 먼저 먹고 냉면을 주문하는 것이 ‘코스’다. 보들보들한 수육과 고소한 빈대떡에 소주나 막걸리를 한잔하고 부대끼는 속을 냉면으로 달래는 것이다. 여름이면 줄을 서야 하고 겨울이면 다소 한가하다. 또 여름이면 젊은이가 많고 겨울이면 노인이 많다. 노인들은 냉면이 겨울 음식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겪었으니 그런 것이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이 조그만 노포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단골들의 공통된 정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가 아플 때 인사동을 한 바퀴 산책하고 나서 이곳에 들러 냉면 한 사발 들이켜면 답답한 속이 시원하게 내려간다. 오랜 연륜의 사람들이 도심 뒷길에 옹기종기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를 알아차릴 순 없어도, 그 무정형의 소리는 음악보다 아름답다. 노인들은 그렇게 냉면 내리는 소리, 빈대떡 부치는 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반주로 ‘장밋빛 인생’을 합창한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과 3호선 종로3가역에서 내려 낙원상가 쪽으로 나오면 금방이다. 탑골공원 바로 뒤편에 있다. 전화 02-764-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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