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정치

미리 가본 5·9 대선 이후

누가 돼도 춘래불사춘! 할 일은 산더미인데, 일할 여건은 태부족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7-04-11 18: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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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국정에 돌입해야 한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잘해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듯하다. 더욱이 여소야대다. 임기 초반 동거정부도 불가 피하다. 1년 뒤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치러야 하고, 그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야 한다.

    누가 그런 상황을 가장 잘 돌파해나갈 수 있을지 매의 눈으로 감별해야 할 때다. 5월 9일 ‘장미대선’ 이후 펼쳐질 미래 1년간 모습을 가상으로 살펴본 이유가 그 때문이다. 대선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유권자의 바람직한 선택이 필수적이다. <편집자 주>




    첫날

    실감 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이. 기쁘지만 걱정이 앞선다. 잠을 이루려 해보지만 흥분감에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오전 9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교부받는다. 이어 청와대 정문으로 들어선다.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이 도열해 박수를 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당분간 이들과 동거가 불가피하다. 한광옥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로 들어간다. 시작이다. 무엇부터 할 것인가. 역시 안보다.

    오전 10시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를 주재한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전방 상황과 더불어 최근 북한 동향을 보고받는다. 권력 이양기인 만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는 당부의 말로 마무리한다.



    오전 11시 비상 국무회의도 주재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 장관들로 이뤄진 내각이다. 이들과 동거도 당분간 피하기 어렵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로부터 경제 현황을 보고받은 뒤 당부 사항을 전한다. 점심은 국무회의 중간에 도시락으로 간단히 때운다. 청와대에서 먹는 첫 식사다. 며칠째 잠을 설친 터라 솔직히 밥맛이 나지 않는다.

    반쯤 먹다 젓가락을 놓는다. 보고 반, 식사 반인 자리에서 참석자 모두 밥맛이 별로인 듯하다. 왜 아니겠는가. 저들로서는 조만간 그만둘 처지가 더 걱정일 테다.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을 주고받지만,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칼자루를 쥔 쪽은 나다. 그렇다고 마음의 여유가 더 있는 건 아니다. 솔직히 걱정이다. 당장 총리 후보자를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찬까지 겸한 비상 국무회의를 끝내고 다시 집무실로 돌아온다. 아직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업무를 개시한 비서실장 내정자와 소파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다. 청와대 커피라고 특별한 맛이 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 커피 맛은 여전하네! 갑자기 당대표 시절 청와대 만찬 때 마셨던 그 커피 맛이 떠오른다.

    오후 2시 청와대 춘추관으로 가서 직접 총리 후보자를 발표한다. 통합과 협치에 방점을 둔 인사다. 야당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의문이다. 솔직히 두렵다. 내 나름 검증을 거치긴 했지만, 의외의 악재가 불거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첫 인사부터 낙마하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총리 후보자와 더불어 비서실장 내정자도 발표한다. 함께 배석했던 비서실장 내정자가 곧바로 수석비서관 인선도 발표한다. 오전에 한광옥 비서실장 이하 수석비서관 모두 사표를 제출했고 이미 일괄 수리한 상태다. 신임 비서실장 이하 수석비서관 임명 절차도 오후 중에 끝날 것이다.

    집무실로 돌아와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이사를 준비 중이다. 간단하게 옷과 생활용품 몇 가지만 챙겨올 모양이다. 아내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청와대에서 첫 저녁식사는 아내와 함께 할 계획이다.

    오후 내내 전화통을 붙들고 지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주요국 지도자와 통화한다. 정세균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과도 통화를 한다. 비서실장 내정자와 총리 후보자 역시 내 집무실에서 하루 종일 상주한다. 장관 내정자를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예비 내각을 발표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캠프 내부에 분란이 야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달이라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준비기간도 없이 국정운영에 돌입해야 하는 특수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명단을 만들었고 내부 검증절차도 거쳤다. 오늘 3배수로 추려진 명단 가운데 최종 후보자를 낙점해야 한다. 뛰어난 후보자들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는 일은 정말 힘들고도 고통스럽다. 그래도 결정을 내린다. 장관 내정자는 내일 오전 10시 발표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취임식 일정도 해외 참석자를 고려해 1개월 뒤로 확정한다.

    벌써 오후 7시다. 비서실장과 총리 후보자를 보내고 관저로 향한다. 아내가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맞는다. 즐거운 듯 즐겁지만은 않은 묘한 표정이다. 이해한다. 나도 그렇다.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김치찌개에 달걀말이를 곁들여 식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선 기간 중에는 집밥을 먹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 더욱 그립다. 그런 내 심정을 읽었는지 식탁에는 김치찌개와 달걀말이가 놓여 있다. 맛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살짝 마음이 놓인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관저 소파에 앉아 TV를 켠다. 짧았지만 길었던 나의 하루를 TV로 보는 것이 왠지 낯설다. 이 넓은 관저에서 첫 밤을 보내야 한다. 잠을 청해본다. 내일도 긴 하루가 될 것이다.



    첫 일주일


    고작 일주일이다. 입안에서 단내가 난다. 대선 기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고되게 시달린 탓이다. 무엇보다 총리 후보자에 대한 야권의 공세가 거세다. 여소야대를 실감한다. 집권하긴 했는데 동지보다 적이 더 많다. 참기 어려운 것은 감정적 공세다. 논리나 이성적 판단과는 무관하다.

    과거에는 밀월기간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초반부터 작심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 물러설 수는 없다. 시작부터 물러서면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말 것이다. 임기 내내 식물 대통령으로 지낼 순 없다.

    그런데 문제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파문을 일으킨 박근혜 전 대통령 탓에 언론 협조 요청마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의 주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검증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사소한 비리 하나도 놓치지 않을 태세다. 장관 내정자 가운데 이미 절반이 도마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였다면 눈감아줄 수준의 비리에 불과하다.

    야권의 반발이 하도 거세 국회에 인사청문회 요청서를 보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지경이다. 대통령비서실 인선에 대한 시비도 만만치 않다. 막말 전력에 휩싸인 수석비서관에 과거 비리가 새롭게 드러난 수석비서관까지 3분의 1가량이 논란이다. 첫 인사부터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하는 자괴감이 벌써 든다. 대통령을 비판하던 시절이 그립기조차 하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비서실장과 일주일째 인사카드를 뒤지는 중이다.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인재는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어렵사리 골라서 민정수석실에 보내 검증을 시켜보면 반드시 하나 이상은 결함이 걸려 올라온다. 내부 검증을 거친 인물도 정보기관을 활용해 재검증해보면 뜻밖의 악재가 발견되곤 한다. 밖으로는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인사들을 방어하면서 안으로는 대체재를 찾는 소모적 나날이 지루하게 흐르는 중이다. 벌써 일주일이 ‘벌써 일 년’이 될까 봐 걱정이다.



    첫 한 달


    어제 취임식을 마쳤다.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인물은 총리와 장관 후보자 7명뿐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매주 국무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한숨이 난다. 어색한 동거다. 대선 과정에서 이미 동거정부가 꽤 길게 이어지리란 관측이 나왔다. 그래도 실감 나지 않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적과 동지가 섞여 있어 말 한 마디조차 조심스럽다. 실시간으로 야권의 감시와 언론의 검열을 받는 느낌이다.

    임기 초반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했다. 내가 최고 권력자인데, 오히려 감시와 검열을 받는 처지라니 믿기지 않는다. 결국 처음 생각과 달리 국무회의는 의례적 행사로 넘긴다. 이후 우리 편 장관에게 따로 지시를 내린다. 그것도 청와대로 부르지 못하고 전화로만 소통한다. 자기 편 장관만 청와대로 부른다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6월 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거의 확정되는 시기다. 주요 공약사업이라도 빨리 반영해야 한다. 우리 편 장관들은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장관들은 미적거릴 뿐이다. 지시를 내리면 시늉은 하는데, 진행은 더디다. 몇몇 확신범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놓고 반발한다. 더 나아가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국정이 ‘개판’이라는 비판까지 서슴지 않는다. 조만간 나갈 장관이라 불러다 혼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근혜의 주술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절름발이 정권이라는 냉소적 지적까지 나온다. 굴욕적이더라도 국회 인사청문회 정국을 빨리 끝내는 길이 최선이다. 그래서 매일 야권 지도부와 접촉한다. 인사청문회가 지지부진하면서 저들의 요구는 더 늘어났다. 소소한 지역구 사업까지 챙겨달라는 주문이다. 아예 연정을 구성하자는 요구도 나온다. 장관직 몇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소통은 ‘영업’이었다. 뒷거래 따위는 걷어치우라는 것이 국민적 여망이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나도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사람이지만 당장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서부터 제동이 걸리니 어쩔 도리가 없다. 너무 노골적인 요구는 거절해가며 조율을 이어간다. 가능하면 다음 달 초까지 끝내는 것이 목표다. 두 달 만에 겨우 동거정부를 끝내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이다.



    첫 일년


    내일은 5월 9일이다. 벌써 일 년이다. 요즘 나는 개헌 요구에 시달리는 중이다.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도 함께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때 나는 2018년 지방선거 때로 미루자고 제안했다. 그사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개헌안에 합의했고, 지난달 공고 절차까지 마쳤다. 본회의 의결을 거쳐 30일 이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일만 남았다.

    대통령과 여당만 수용하면 곧바로 국민투표로 갈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내 결단만 남은 것이다.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이제 선택의 순간이 임박했다. 비서실장은 반대한다. 여당 지도부는 반반이다. 나도 반반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찬성이 60%가량으로 약간 높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지방선거 결과다. 취임 1년 만에 치르는 지방선거지만 야권과 언론은 벌써부터 중간 평가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두 달도 없이 출범해 동거정부를 거친 것은 물론, 공약사업 예산을 반영하는 것조차 때가 맞지 않아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그런데 벌써 중간 평가라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보조를 맞춰 대응해야만 한다. 목표는 텃밭과 수도권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정에 탄력을 붙여갈 수 있을 전망이다. 2020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도 청신호가 들어온다. 여기에 개헌이 낀 형국이다. 거부할 경우 불어닥칠 역풍이 최대 변수다.

    개헌을 수용하는 것이 지방선거 압승에 도움이 된다면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한다. 이 경우 내 임기는 줄어든다. 물론 재선에 도전할 기회는 생긴다. 3년으로 끝나느냐, 최장 11년까지 가느냐의 문제다. 내일 아침까지 결론을 내리리라 다짐한다. 청와대 입성 첫날처럼 오늘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라일락향 반, 아카시아향 반. 봄 향기 가득하지만 봄 같지 않은 밤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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