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기고

제2의 박근혜 막으려면 반드시 개헌해야

대통령만 잘 뽑으면 된다고? 분권형 정부와 협치 문화로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필요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jamta@korea.ac.kr

    입력2017-04-11 18: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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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역대 최장수 헌법이다. 1987년 이전 헌법들의 평균수명은 5년을 넘지 못했다. 현행 헌법이 30년 동안 개정 없이 유지된 것은 헌법의 안정성 내지 국민적 지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개정 필요성이 그만큼 커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도 내각제 개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가 시작된 것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원포인트 개헌을 제기하면서부터. 당시에도 20년 된 헌법을 바꾸자는 공감대는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 말 개헌 반대 목소리가 커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18, 19대 국회에서 헌법 개정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으나 결국 개헌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개헌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소극적 태도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개헌에 찬성하다가도 대통령이 된 후에는 개헌 블랙홀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개헌할 경우 대통령 권한이 약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속내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절대반지’를 낀 이후에는 이를 빼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우리 국민은 ‘최순실 사태’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보도되기 전까지 검찰이나 감사원 등 사정당국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은 왜 ‘제왕적’ 대통령인지, 왜 권력구조가 개편돼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제도와 사람이 모두 문제

    여기서 현행 헌법상의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의 운영,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제도와 사람이 모두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권력을 오· 남용하기 쉬운, 그러면서도 통제는 제대로 되지 않는 제도를 방치한 채 대통령만 잘 뽑으면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마치 소 잃고 나서도 외양간은 고치지 않은 채 앞으로는 집 나가지 않는 소를 고르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2의 박근혜’를 막으려면 한편으로는 대선에서 철저한 후보 검증을 통해 대통령을 제대로 뽑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헌을 통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권력의 오·남용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

    왜 검찰개혁이 화두가 되고, 감사원의 소속 변경 주장이 나오는가. 검찰과 감사원이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동안 탄핵과 대선에 가려 개헌 관련 쟁점들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이 제왕적 지위를 누리도록 하는 수많은 헌법 조항에 대해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이를 완화하는 방안은 다양하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처럼 대통령이 여당의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당적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해 여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는 방안도 개헌 내용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권력분립상 대등한 위치에 있는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정당한가. 정부의 수반이 아닌 국가원수 자격으로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의 개인적 선호와 무관하게 별도의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자를 국회가 엄격한 인사 청문회 절차를 거쳐 검증하고,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임명만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테다.

    현행 헌법상으로도 대통령이 제왕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으나, 우리가 눈으로 본 결과는 그것과 다르다. 물론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을 제왕처럼 떠받드는 사람이나 이를 당연시하는 대통령도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분권형 정부 형태(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일부 축소하더라도 새 대통령이나 정부 관료들이 과거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적잖기 때문에 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분권형 정부에 대한 오해

    분권형 정부 형태에 대해선 오해가 많다. 대표적으론 분권이 오히려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권한 분배 내지는 역할 분담과 관련해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그로 인한 갈등이 매우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다. 그 나름의 설득력은 있지만 이런 문제는 기준의 명확성 여부를 떠나 분권을 추구할 경우 필연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으로 국회와 정부의 권한을 분배할 때도 갈등의 여지는 항시 존재한다.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국회의 관여가 어디까지 정당화되는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권이 인정되는지 같은 문제가 계속되는 것이다. 또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에서도 권한의 범위에 대한 갈등이 있다. 양원제 국가에서는 상원과 하원 사이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권력을 집중해야만 하는가. 분권은 협치를 전제로 한다. 제도상 권한을 나누기만 하고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국가 작용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분권형 정부 형태로의 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협치라는 새로운 정치문화 형성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협치 없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물론 이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과 선택은 주권자이자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개헌은 국가 질서의 근간을 바꾸는 국민적 결단이다. 이렇게 중대한 사항인 만큼 신중한 검토와 폭넓은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신중함이 자칫 30년간 축적된 개헌의 필요성을 외면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더욱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외면함으로써 또 다른 불행한 대통령, 더 불행한 국민과 대한민국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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