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마감有感

선작오십가자필패(先作五十家者必敗)

  • 서정보 편집장 suhchoi@donga.com

    입력2017-04-11 17: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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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에 ‘50집’을 짓는 사람이 반드시 진다는 뜻의 바둑 용어다. 바둑에서 초반 50집을 만들면 승부에서 절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그런데 왜 필패일까. 초반부터 너무 유리해 ‘방심(放心)’하다 진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기력끼리 둘 때 초반 50집을 짓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내가 잘 둔 결과라기보다 상대가 큰 실수를 해 생각지도 못했던 횡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둑 한두 번 둬본 것도 아니고, 초반에 이렇게 유리할 때 방심하지 않고 마음의 고삐를 죄면 필패로 빠지는 경우는 생기지 않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왜 필패일까. 어떻게 두든 이길 테니까 방심을 한다기보다 ‘몸조심’을 하기 때문이다. 50집을 이기고 있으니 이것만 잘 유지하면 된다는 생각에 움츠려드는 것이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하고, 과감하게 행마해야 할 때 소극적으로 지키려 한다. 그래도 유리하니까. 하지만 이게 누적되다 보면 두터움은 중복이 되고 세력은 곤마로 전락하며 집은 50집에서 좀처럼 불어나지 않는다. 상대는 그 틈을 타 기세 좋게 추격해오고 형세는 점점 좁혀진다. 마음은 초조해지고 단박에 다시 차이를 벌리려는 생각에 역으로 무리를 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그 좋던 재산을 탈탈 털어먹고 반집 역전패로 끝난다.  

    아마추어 3, 4단 실력이라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바로 ‘선작오십가자필패’의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탄핵정국, 즉 상대의 큰 실수로 ‘50집(대세론)’을 횡재했는데 ‘적폐청산과 정권교체’라는 탄핵 프레임으로 몸조심을 하다 어느새 생각지도 못했던 경쟁자가 치고 올라오고 있다.

    필패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하나다. 50집을 버리는 것. 원래 내가 잘해서 얻은 게 아니었으니 50집을 지키겠다는 전략을 내려놓는 것이다. 지금까지 관성을 벗어던진다면 아직 문재인의 바둑은 두텁다. 이제 곧 초읽기에 몰릴 텐데, 도대체 50집을 어떻게 내려놔야 하는 것일까. 그 길을 찾아내는 게 고수이자 대통령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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