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5

2010.03.02

자동인형 아이들을 구하는 법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2-24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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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인형 아이들을 구하는 법

    윤구병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80쪽/ 1만2000원

    사무실을 마포구 서교동으로 옮긴 뒤 사무실이 가까워져 자주 뵙는 분이 있다. 출판계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일관된 생각과 행동을 견지하시는 윤구병 선생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계시는 윤 선생을 오며 가며 자주 목격하지만 같은 사람을 만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윤 선생이 이번에 ‘흙을 밟으며 살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30여 년 동안 공동체, 생태, 교육에 관해 써온 에세이를 각기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나는 그중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를 먼저 읽었다.

    머리말부터 격정적이다. “지금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제 앞가림하는 힘을 기르는 일은 뒷전에 두고 남의 몫을 가로채는 법, 남에게 기대 사는 법, 몸 놀리고 손발 놀려 살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잔머리 굴려서 불쏘시개감도 못 되는 돈만 산더미처럼 쌓아올리는 게 유일한 꿈이라고 여겨 주식사장, 증권시장 같은 도박판을 기웃거리면서 마지막에는 패가망신하는 노름꾼이 되는 법”만 가르치고 있다며 한탄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위에서는 대통령, 수상이라는 연놈들부터 아래로는 어중이떠중이 놈년들까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아이들을 집단으로 학대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단 학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유대인 학살보다 참혹한 게 지금 온 세계의 교육 현실이다. 이 미치광이 놀음에 가장 앞서고 있는 땅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사실 머리말을 읽고 덜컥 겁부터 났다. 그래서 책을 덮어놓고 며칠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책을 잡고 보니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인 세상’ ‘꼭 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좋아’ ‘콩나물 교실에 난쟁이 책걸상’ ‘가장 훌륭한 교사는 자연이다’ 등의 장 제목처럼 본문은 마음씨 넉넉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하듯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과 대안을 입말체로 들려주고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책은 30년에 걸쳐 쓴 것이다. 상품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교육이 개선되기는커녕 날로 악화하는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교육의 모습이 어찌 이리도 변하지 않고 조금씩 악화되는지 책을 읽는 내내 한숨만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사람대접 못 받는다고 믿고, 밤늦게까지 딱딱한 의자에 16시간도 넘게 앉아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붙들고 있다. 윤 선생은 교과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말한다. 개인차나 지역 특성, 인지발달의 단계를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교과서에는 하나로 정해진 답이 있게 마련이고, 정답이 있으면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에 따라 성적의 우열이 갈린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동인형으로 길들여진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은 살아 있는 ‘미라’로, ‘강시’로, ‘좀비’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 아이들을 살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교과서는 살아 있는 현실이 돼야 한다. 예컨대 음악 교과서는 어때야 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나무 도막을 두들겨보고, 풀잎을 불어보고, 고무줄을 퉁겨보는 동안에 나무 도막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의 법칙에 귀가 열리고, 풀잎에서 들리는 소리의 어우름, 고무줄 길이에 따라 다르게 나는 소리의 변화에 귀가 뜨이고, 그 다음에는 두드리는 소리와 부는 소리와 튕기거나 문지르는 소리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귀담아듣게 되지. 하나하나의 소리에서 독특한 소리로, 독특한 소리에서 일반의 소리로 소리 폭이 넓어지는 것을 깨치는 것이 제대로 음악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삶터가 돼야 한다. 그리고 삶터는 작게는 그 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마을 공동체, 크게는 국가 공동체와 긴밀하게 이어져야 한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로 녹아 있는 기초생산 공동체에서 마음껏 뛰어놀 때 자율적이고 독립심 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교육은 어려서부터 살아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사물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웃과 더불어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이뤄 행복하게 살 길을 찾게 해주는 교육으로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일주일에 9시간 강의하는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가 하루에 16시간 팔에 알통이 생길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하는 게 더 좋다고 외치고, 진보주의자들마저 자식을 외국 학교나 사교육시장으로 내모는 세상에서 병든 몸과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가느니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입시에서 떨어지는 편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좋다는 것을 실천해온 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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