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5

2010.03.02

워커힐 ‘카지노 대전’ 누가 웃을까?

파라다이스, 독점 깨지자 영업장 이전 모색…SK 반발 법정소송으로 2심 판결 임박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2-23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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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커힐 ‘카지노 대전’ 누가 웃을까?
    “3만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의 달러를 잡아라.”

    19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라는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적인 업적 과시가 필요했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으나 문제는 자본이었다. 정부는 휴가 때마다 홍콩, 일본 등으로 떠나는 3만명의 주한미군과 유엔군의 달러에 눈독을 들였다. 5·16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워커힐 건설계획이 수립됐으며 국내 최초로 외국인카지노 사업권도 주어졌다.

    선경그룹(현 SK그룹)은 1972년 워커힐을 불하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겉은 여느 호텔처럼 고요하고 잠잠하지만, 물밑에선 SK그룹 계열사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이하 워커힐호텔)과 이 호텔 지하 1층에서 카지노장을 운영하는 파라다이스가 2년째 치열한 법적분쟁 중이다.

    애초 워커힐호텔 내 카지노 사업권은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에 있었다. 기대와 달리 카지노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1973년 SK(당시 선경개발)에 카지노 사업권을 매각했다. 카지노 운영 경험이 전무했던 SK는 당시 콘티넨탈관광이던 파라다이스에 카지노 사업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았던 30년 관계



    1978년 정부가 ‘카지노 사업을 허가받은 자가 타인으로 하여금 영업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법령을 공포하자, SK는 ‘요청이 있으면 카지노 허가권을 다시 반환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한 뒤 카지노 허가권을 파라다이스에 양도했다. 이후 파라다이스는 카지노장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며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워커힐호텔은 파라다이스로부터 연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받으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30년 가까이 지속했다.

    균열이 생긴 것은 2006년. 관계법령의 개정으로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유사 카지노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파라다이스의 독점시대는 끝이 났다. 경쟁사에 비해 워커힐의 위치가 서울 외곽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2005년 2717억여 원의 매출액에 532억여 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2006년 매출액 2366억여 원, 영업이익 149억여 원으로 급감했다. 파라다이스 관계자는 “카지노 시장 자체가 성장하면서 2008년도 매출액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업이익은 2005년의 3분의 1”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이 악화되자 파라다이스는 카지노 영업장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이전하는 것을 모색했다. 이전 논의는 2007년 12월 파라다이스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영업장 소재지 변경 허가 신청서를 내면서 가시화됐다. 1995년 카지노 사업이 관광산업으로 분류돼 관광진흥법의 규제를 받게 되면서 사실상 영업이동이 자유로워진 것도 힘이 됐다. SK는 즉각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카지노 허가권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법원이 SK의 가처분을 받아들이자 파라다이스는 2008년 3월 제소명령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에 SK는 2008년 4월 1978년에 맺은 합의서를 근거로 ‘카지노 사업 이전 불가’, 더 나아가 ‘카지노업 허가권 반환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1월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파라다이스는 워커힐호텔 밖으로 이전해서는 안 된다. 카지노업 허가권 명의변경절차 이행 청구를 포함한 워커힐의 나머지 청구는 모두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즉 파라다이스는 영업장소 이전은 안 되지만 실질적인 카지노업 자체를 SK에 돌려줄 의무는 없다고 판단한 것. 장군멍군이 됐다.

    양측은 곧바로 항소를 해, 2010년 2월 현재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담당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면서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 새로운 재판부가 꾸려지고 새롭게 변론 기일이 잡히면서 2심 판결 선고는 미뤄졌다.

    양측 엇갈린 속내 … 타협 가능한가

    워커힐 ‘카지노 대전’ 누가 웃을까?

    파라다이스가 카지노 영업장 이전을 모색하면서 SK그룹과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됐다.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 지하 1층 파라다이스 카지노 홀.

    파라다이스는 1심 판결을 두고 “법원에서는 1978년 합의서를 근거로 영업장 이전 불가를 판시했지만, 1978년 합의는 이미 법률상 효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합의서가 무효가 됐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1993년 ‘슬롯머신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민정부 들어 강도 높은 사정 정국이 펼쳐지자 카지노도 피해갈 수 없었다. 1993년 6월 파라다이스 카지노에 대한 세무조사가 있었고, 곧이어 검찰수사가 들이닥쳤다. 파라다이스는 999억여 원의 벌금을 추징당했고, 고(姑) 전락원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 10여 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파라다이스는 “1993년 카지노 사정 때 파라다이스와 SK 양사는 1978년 맺은 합의 내용을 포함해 이전까지 카지노와 관련해 양사가 유지하던 모든 관계를 청산하는 데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파라다이스 관계자는 “SK는 사정 불똥이 자신 쪽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사력을 다하는 상황이었다. 벌금을 추징당한 이유도 매출 누락 때문인데 그동안 누락된 매출의 상당액을 카지노 허가권에 대한 대가로 SK에 갖다줬다. (합의서가 효력을 잃었기에) 1993년 이후 양측의 카지노 수익금 배분도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SK 측은 “만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허가권을 완전히 이전한다는 논의는 없었다. 단지 검찰 수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만났을 뿐, 효력을 무효화한다는 어떤 논의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SK 관계자는 “파라다이스 측은 2002년 기업공개 때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선대 회장들 간의 오랜 친분 탓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룹 내부적으로는 계속 배당금을 받아야 한다고 보고를 올렸으나 양사 간의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넘어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2심 판결을 앞두고 양측의 속내는 엇갈린다. 파라다이스는 롯데호텔로 이전하려던 2007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며 ‘무조건적 이전’에서는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카지노 입점이 유력했던 롯데호텔 지하 1층에는 이미 다른 매장들이 들어선 상황. 롯데호텔 역시 “2007년 이후 카지노 영업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파라다이스 최성욱 상무이사는 “우선적으로 워커힐과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파라다이스의 월 임대료는 6억9900만원, 평당 월임대료는 33만원인데 세븐럭 강남점 월 임대료가 6억원, 평당 월임대료가 20만원인 만큼 합리적 수준에서 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롯데호텔이 아니라 서울 중심에 있는 다른 호텔들과도 충분히 이전을 논의해볼 수 있다”며 이전 가능성은 열어뒀다.

    반면 SK는 “우리가 허가권을 다시 받아오거나 파라다이스가 워커힐을 떠나는 식의 극단적 상황은 원치 않는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다. SK 관계자는 “원만하게 조정이 돼 파라다이스가 여전히 워커힐에서 영업을 하는 것이 최상이다. 파라다이스가 이전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어 소송까지 갔지만, 대화 창구는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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