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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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가슴으로 듣는다는 것

조규찬 음반 ‘달에서 온 편지’

  • 현현 대중음악평론가 hyeon.epi@gmail.com

    입력2010-01-21 1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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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가슴으로 듣는다는 것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남성 절창(絶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임재범이나 박효신 같은 허스키 보이스, 김경호·최재훈 같은 고음역 보컬리스트, 김범수·김연우 등의 발라드 가수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조용필이나 이승철처럼 다양한 색깔을 지닌 초절창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절창의 강호(强豪)에서 조규찬은 특별히 빛난다.

    부담 없이 맑은 음색, 부드럽게 속삭이는 팔세토(falsetto·가성), 정확한 발음과 민첩한 꾸밈음의 기교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고음 보컬’을 우대하는 한국 대중음악 팬들의 편견을 만족시킬 만한 음역대마저 가진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바로 조규찬이다.

    조규찬은 공연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작은 공연장에서 많지 않은 악기와 함께할 때 더욱 빛나는 사람이다. 그의 신비로운 목소리를 직접 듣노라면 훨씬 강한 예술적 체험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아티스트의 신성성 맛보게 하는 목소리

    지난해 8월 대학로에서 열린 소극장 공연 ‘달에서 온 편지’는 조규찬의 매력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에세이집 ‘달에서 온 편지’를 낭독하고, 히트곡들을 부른 이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둬 앙코르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조규찬은 그래서 그 공연을 그대로 음반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달에서 온 편지’다.



    드럼, 베이스, 피아노, 기타만의 어쿠스틱 감성을 살려 만든 이 음반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조규찬의 마력에 가까운 목소리다. 이 음반은 ‘노래를 듣는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 대중을 새로이 일깨운다.

    첫 트랙은 프로모션 트랙인 ‘I Love You’다. 조규찬 특유의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이는데 한국적인 정통 슬로 넘버(느린 노래)의 스타일을 지녔다. 한국 대중음악의 한계를 넘는 조규찬의 찬란한 목소리와 절묘한 텐션을 지닌 코러스의 하모니가 더욱 깊은 향취를 풍긴다. 때로는 휘몰아치는 웅장함으로, 때로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달에서 온 편지’가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은 그동안 조규찬이 정규 음반으로 들려줬던 ‘잊힌 명곡’들을 다시 담아냈다는 점이다. 특히 첫 솔로 음반에 담긴 ‘추억 #1’은 한국 대중음악 전성기의 화려했던 편곡이 아닌 단아한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의 선율로 재포장됐다. 리버브(reverb·에코) 없이 건조하게 등장하는 조규찬의 목소리는 듣는 이를 오디오 앞으로 바싹 다가앉게 만든다. 가창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히트곡 ‘믿어지지 않는 얘기’ 역시 지방질을 제거해 담백하다. 그의 데뷔곡인 ‘무지개’도 어쿠스틱 버전으로 새로 들을 수 있다. 마돈나의 슬로 넘버 ‘Crazy For You’나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도 조규찬의 목소리로 재탄생했는데, 이는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그의 동년배들에 대한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조규찬의 노래는 대중음악가의 지위가 땅에 떨어진 이 땅에서 아티스트의 신성성을 맛볼 수 있게 한다. 대중음악의 주력 상품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교체되면서 인스턴트식품 같은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도 조규찬은 복제가 불가능한 ‘공연’으로 승부를 건다. 노래 못하는 이들도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들리게 하고 꽉 찬 사운드로 가수의 목소리를 검증할 수 없게 만드는 프로듀싱이 난무하는 시대에, 몇 개의 어쿠스틱 악기로 자신의 소리를 관객들 귀에 온전히 전달하는 조규찬의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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