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1

2010.01.26

난 생활용품 만든다 고로 창조하는 삶을 산다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10-01-21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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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생활용품 만든다 고로 창조하는 삶을 산다

    1 나를 닮은 오동나무 주걱. 오래 쓰다 보니 ‘세월의 빛깔’이 스며든다.

    영화 ‘카미유 클로델’을 봤다. 조각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카미유 클로델은 위대한 조각가 로댕의 그늘에 가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탓에 급기야 정신착란을 일으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를 본 소감은 한마디로 너무 슬펐다. 꼭 그렇게 망가질 필요가 있을까.

    나야 천재적인 예술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때 조각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데, 그 과정은 분열된 자아를 치유하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 천재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손으로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몰입을 가져오고, 자기만의 예술적 성취감을 주지 않는가.

    내가 한동안 몰입했던 조각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물건인 나무주걱이었다. 그러니까 1996년 봄, 처음 산골에 내려왔을 때였다. 대안학교를 만든답시고 낮에 힘든 일을 끝내고 저녁마다 회의를 했다. 그만큼 앞날이 불안했고, 함께했던 사람들 생각이 달라 서로가 불편해했다. 나는 회의가 끝나고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무주걱에서 배우는 인생의 아름다움

    이런 불안감과 불편을 잠재우기 위해 몰입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이 기회에 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면 되도록 손수 만들어보자. 돈을 한 푼이라도 덜 쓰자’는 마음도 있었다. 또한 ‘이런 경험이 대안교육을 하는 데도 보탬이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주변에 대나무가 흔하니 먼저 간단한 젓가락부터 만들어봤다. 마른 대나무를 작은 톱으로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칼로 쪼개고 젓가락 모양으로 다듬기만 하면 됐다. 이는 연필 깎는 수준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시간은 잘 갔고, 오랜만에 작은 성취감을 맛봤다. 그 다음 목표는 밥을 푸는 주걱. 태풍으로 쓰러진 오동나무를 도끼로 쪼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무주걱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곡면을 내기 어려워 시간이 많이 걸렸고, 칼 사용법이 미숙해 이따금 손을 다치기도 했다. 그렇게 피를 보고 나서야 눈을 들어 시계를 보면 어느새 밤 12시가 넘었다. 사실 주걱이야 돈 주고 산다면 값싸고 질 좋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기계와 기술, 디자인의 발달로 아름답고 싼 주걱이 대량으로 쏟아진다. 그럼에도 주걱 만들기를 계속한 이유는 남이 만든 물건을 쓰기만 하던 소비적 삶에서 벗어나, 창조하는 삶에 대한 어떤 열망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꽤 오래도록 매달린 끝에 차츰 주걱다운 주걱을 만들었다. 나이테가 아름답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왔다. 이왕 만드는 김에 좀더 아름답게 해보자고 디자인을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았다. 그렇게 하다가 ‘나를 잘 드러냈다’고 느껴지는 주걱에는 글자를 새겨넣었다. ‘늘’이라고. 밥주걱에서 볶음용 주걱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오동나무로 베개나 쟁반도 제작했지만 보기와 달리 쓰임새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나무로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나무의 특성도 조금씩 알게 됐다. 오동나무는 가벼운 데다 무엇보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독특했다. 아하, 이걸로 냄비 받침대를 만들어도 좋겠구나! 지름이 16~20cm 되는 나무를 톱으로 두께 1.5cm로 자르기만 하면 받침대가 됐다. 가운데 구멍은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이니 이보다 나은 냄비 받침대가 있을까 싶었다. 받침대에 뜨거운 솥을 올려놓아도 화학접착제를 쓰지 않았기에 유독성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난 생활용품 만든다 고로 창조하는 삶을 산다

    2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만든 둥구미. 3 오동나무로 만든 냄비 받침대. 황금분할에 가깝게 가운데 구멍이 자리한다. 4 대추나무로 만든 쪽창 손잡이. 5 딸한테 생일 선물로 받은 잣나무 목걸이. 자식 에너지를 받고 사는 상징이 된다. 6 대나무로 젓가락을 만들고 있다.

    또한 오동나무 냄비 받침대는 그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보통 상품화된 것은 구멍이 있더라도 한가운데 있다. 이런 것은 금방 실증이 난다. 그런데 오동나무는 구멍이 한가운데가 아닌, 중심에서 약간 치우쳐 있다. 나이테 그대로 햇살을 많이 받은 쪽이 두껍고, 적게 받은 쪽이 얇다. 이 비율을 자로 재어보니 황금분할에 가깝다. 생명이 갖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만들기 쉬워 누구네 집들이를 간다거나 결혼식 갈 때 선물로 가져가곤 했다. 선물용은 좀더 정성을 기울여 사포로 문지르고 축하 메시지를 새겨넣었다.

    자아분열 치유하는 예술적 본성

    냄비 받침대는 쓰임새가 아주 좋다. 이게 얼마나 튼튼한지 당시 만든 냄비 받침대를 지금도 잘 쓰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움의 정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실감한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만 아름다운 게 아니며, 소박하지만 일상에서 쓰임새가 많은 것이야말로 정말 아름답다고….

    손수 만든 물건은 자신을 닮고, 더 빛나게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몰입을 했고, 완성한 다음에는 성취감을 느꼈다. 일상에서 거의 날마다 쓰니 값진 보물이나 다름없다. 손으로 만질 때면 과거가 떠오르고, 거기에 쏟아넣은 에너지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생활에 필요한 소품을 손수 만들고, 선물하다 보니 다른 물건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이 생긴다. 특히 누군가에게 선물 받을 때면 그 정성이 더욱더 느껴진다. 우리 집을 방문했던 손님이 선물로 만들어준 수제 다이어리. 속지에 일일이 특별한 사진과 글을 넣고 겉표지에는 수를 놓아 만들었다. 이 물건은 1년 쓰고 차마 버릴 수가 없다. 평생을 기억할 만한 것을 소중히 기록하는 평생 다이어리가 된다. 딸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잣나무 목걸이 역시 ‘자식 에너지’를 내 몸에 지니고 사는 상징이 된다. 볏짚으로 만든 둥구미 또한 일상에서 자주 쓰니 시간이 지나도 정감이 간다.

    나는 현대인이 갖는 불안감은 대부분 자아분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잘나고 싶고, 아름답고자 하는 건 누구나 갖는 본성이다. 자기다움을 실현하기보다 곧잘 남 기준에 맞추고 남이 자신을 자신만큼 알아주지 못하면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한다. 나중에는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감탄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실망한다. 한마디로 바보 같은 짓이다. 생활 공예는 바로 이런 자아분열을 치유하는 작은 발판이 된다. 뛰어난 예술작품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 못지않게 자기 안에 잠자는 예술적 본성을 ‘제 손’으로 하나둘 살려나갈 때 우리 사회는 진정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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