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위험한 놈 ‘신종플루’

“신종플루 백신을 맞아야 해요? 말아야 해요?”

의사를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라면 지난해 연말부터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을 터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백신의 유용성과 안전성에 대한 범국민적 회의(懷疑)가 일면서 각 병·의원과 보건소는 이런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지난해 11월 예방접종이 시작될 당시만 해도 신종플루 백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내 가족부터 먼저 맞을 방법이 없느냐”였다. 첫 접종이었고 신종플루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학계, 언론계 모두 일치단결해 “정체 모를 신종플루로부터 탈출할 방법은 예방접종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인지 2009년 말까지 계속된 의료계 종사자와 초·중·고교생들의 백신접종률은 82%가 훌쩍 넘었다.

하지만 올 1월 중순부터 신종플루 고위험군(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 환자)과 65세 노약자, 군인 등 성인 접종이 시작되면서 국민 사이에 ‘백신접종 무용론’이 등장하더니 ‘백신 안전성’에 대한 각종 의혹이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신종플루의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pandemic)이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가 있자 일부 언론과 학자, 정치인들이 ‘신종플루 과장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과장론의 핵심은 “지나놓고 보니 사망자 수는 매년 찾아오는 계절성 독감(이하 계절플루)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치사율도 훨씬 낮은데 정부가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

과장론은 순식간에 ‘음모설’로 번졌다.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병독성도 크지 않은데 WHO와 각국 정부가 백신, 항바이러스제제를 생산하는 제약사의 이익을 위해 그 피해를 과장했고 공포감을 조장했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너무 빠른 시간에 백신을 만들다보니 품질이 의심스럽고 정부의 감시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러한 과장론과 음모설이 확산되면서 국민 사이에 “죽을병도 아니라는데 안전하지도 않은 백신을 왜 맞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이처럼 일반 성인들의 신종플루 백신접종 집단 거부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임에도,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야 할 정부는 오히려 뒷짐만 진 채 행여 불똥이 자기에게 튈까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백신을 맞아야 하는가”라는 일반인의 질문에 각 보건소는 “꼭 맞아야 한다”는 답변 대신 “최종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대답만 되풀이한다.

계절플루와 신종플루 치사율의 오류

그렇다면 신종플루 과장론과 음모설의 실체는 무엇일까. 과연 신종플루의 병독성은 실제보다 한껏 부풀려졌고, 관련 음모설은 모두 진실일까. 하나씩 돋보기를 들이대고 조목조목 따져보자.

먼저 신종플루 과장론. 이 주장의 주된 근거는 신종플루 사망자가 계절플루 사망자보다 적고 치사율도 훨씬 낮다는 것이다. 즉, 바이러스의 병독성이 일반 독감보다 매우 낮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질병통계의 허점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먼저 질병관리본부를 포함해 국내의 그 어떤 전염병 관련 기관도 계절플루 사망자 통계를 낸 적이 없다. 계절플루에 걸린 사람이 사망했다고 실험실에서 그 사인이 딱히 독감인지를 분석, 확인하는 병·의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신종플루 사망자 통계는 실험실에서 확인한 것으로, 매주 그 통계가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과장론을 주창하는 이들(이하 과장론자)이 한국의 계절플루 사망자와 미국의 계절플루 사망자 통계를 비교하는 이유도 국내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구(약 3억400만명)가 우리 인구(4900만명)의 약 6배이므로 미국의 연간 계절플루 평균 사망자 수(3만6000명, 2만~5만명 범위)를 6으로 나누면 한국의 계절플루 사망자 수를 추정할 수 있다는 논리. 이렇게 계산하면 한국의 연간 계절플루 평균 사망자 수는 6000여 명 수준인 반면, 신종플루 사망자는 지난해 5월부터 1월9일 현재까지 209명으로 턱없이 적은 수다. 언뜻 보면 아주 그럴듯한 논리다.

( 오른쪽 아래)신종플루 백신에 대한 괴소문이 휴대전화로 퍼지고 있다. ▲신종플루에 특히 약한 임신부이지만 백신 접종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미국의 연간 계절플루 사망자의 대부분(90% 이상)이 만성심장질환, 만성폐질환 등 기저질환의 악화가 원인이었고, 이마저도 계절플루 유행기와 비유행기 사망자의 수학적 단순비교를 통해 나온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 상황은 달라진다. 즉, 계절플루 사망자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계절플루는 기저질환을 악화시키는 기능만 했을 뿐,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직접 사망원인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던 기저질환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실험실에서 확인된 실제 신종플루 사망자 수와 단순 추정치를 비교하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다.

따라서 사망자 수를 환자 수로 나눈 치사율도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과장론자는 미국의 신종플루 치사율이 0.03%인 데 반해, 계절플루 치사율은 0.1~0.2%로 신종플루가 훨씬 낮다고 주장한다. 계절플루 치사율은 앞에서 언급했듯, 분자인 사망자 수가 엉터리 추정치이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가 없고, 신종플루 치사율의 경우에는 분모인 환자 수가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지난해 10월 신종플루 대유행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후 환자의 전수조사를 하지 않고 중증환자와 사망자 위주의 집계만 해왔기 때문에 신종플루 환자가 지금껏 얼마나 발생했는지 추산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치사율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나올 수 없는 상황이며, 정확한 추계가 가능하려면 앞으로 2~3년은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12월22일 WHO는 “신종플루와 계절플루의 치사율 비교에 대한 발표는 몇 가지 이유로 신뢰할 수 없고 또 오도될 수도 있으므로, 직접 비교에 주의를 요한다. 계절플루와 신종플루 사망자 수 비교만을 근거로 신종플루 팬데믹의 파괴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즉, 치사율이나 사망자 수가 바이러스의 병독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병독성은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서 얼마나 중증질환(사망 포함)을 일으키는지의 정도로 측정되는데,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병독성은 동물실험에서 이미 계절플루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쥐 또는 족제비의 폐에 계절플루 바이러스와 신종플루 바이러스를 동시에 접종한 후 결과를 지켜봤더니,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압도적으로 빠르게 증식해 중증의 폐렴을 일으킨 것. 실제 임상에서도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뇌염, 심근염, 신장부전, 횡문근 융해증(근육염), 다발성 장기부전 등 계절플루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중증질환을 초래하기도 했다.

특히 계절플루가 대부분 노인층에 사망자가 집중되는 데 비해 신종플루는 감염자, 중증환자, 입원환자, 사망자 등 모든 범주에서 더 젊은 연령층에서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2010년 1월9일까지 국내 신종플루 사망자의 성별, 연령별 분포를 보면, 209명의 사망자 중 92명(44%)이 59세 이하였고 20, 30대 사망자도 20여 명에 달한다(표1 참조). 이는 계절플루보다 신종플루의 피해가 더 심각하다는 또 다른 증거다.

‘이기적인 바이러스 플루’의 저자인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책에서 “사망률(치사율)은 바이러스 병독성의 영향도 받게 되지만, 아울러 국가마다 방역체계, 의료 수준, 의료혜택에의 접근도에 따라 10, 20배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에서 신종플루의 사망률이 0.1~0.3%이지만 후진국에서는 3~4%에 달하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병독성과 사망률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과장론과 백신 무용론이 나오게 된 또 하나의 배경은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의 증식 및 전파가 쉬운 계절인 겨울임에도 국내 신종플루 환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신종플루가 완전히 종식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들은 신종플루가 소멸돼 계절플루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백신접종은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일단 지난해 10월과 11월 대유행의 정점을 맞은 신종플루 환자 수는 분명히 1월 들어 크게 감소했다. 신종플루 환자의 발생 추정지표인 주간 인플루엔자 의사환자(추정환자) 분율(ILI·그림1)을 보면, 지난해 11월 첫째 주 정점인 44.96에서 2010년 첫째 주(12월27일~1월2일)에는 9.97로 크게 감소했다.

1 올 1월부터 고위험군과 노약자, 군인에 대한 신종플루 백신(3 오른쪽 아래) 접종이 시작됐다. 2 백신의 원료가 되는 무균 유정란. 이의 안전성 여부를 두고 최근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백신 안전엔 문제도 스캔들도 없었다”

문제는 9.97이라는 수치가 여전히 계절플루 유행 주의보 기준인 2.6보다 약 4배나 높다는 사실이다. 2006~09년 3년간 계절플루의 유행곡선과 비교해도 아직 발생 환자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림 2). 또한 의사환자가 급격히 준 이유도 신종플루 자체의 위력이 쇠락한 덕분이 아니라, 그동안 신종플루 확산과 집단감염의 전파자 노릇을 했던 초·중·고교가 방학을 한 데다, 집에서 방학을 보내는 학생 대부분이 백신접종을 마쳐 신종플루에 대한 면역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병독성과 전파력이 줄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는 각 대학병원에 중증환자가 계속 몰려들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 실제 지난해 12월27일부터 1월2일까지 일주일간 7명에 그쳤던 사망자 수는 올해 1월 둘째 주(1월3~9일)에 17명으로 늘었다.

대학병원 감염내과 관계자는 “현재와 같이 7세 이하 소아와 임신부의 백신 접종률이 낮으면, 2월 말 개학과 동시에 다시 신종플루 유행이 증가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계절플루의 경우 거의 매년 3, 4월에 유행했고 5월 들어서야 유행이 끝났던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도 신종플루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시작될 만성질환자와 노인의 백신접종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종플루에 의한 중증환자 및 사망자는 꾸준히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에 대한 의구심을 낳은 또 하나의 축은 제약사와 정부 또는 WHO 간의 커넥션 음모설이다. 신종플루 백신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들어냄으로써 제약사에게 큰 이익을 남겼다는 것. 음모론자들은 그 증거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이 올 들어 확보한 백신이 남아돌자 제약사와의 구매계약을 파기하거나 다른 나라에 백신을 팔고 있는 실태를 예로 든다. 심지어 유럽의회의 한 의원은 이런 현상을 두고 “WHO의 잘못된 신종플루 캠페인은 금세기 최대의 제약업계 스캔들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내 일부 언론사에서도 이 기사를 받아 “국내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는 음모나 커넥션이라기보다 유럽 각국 정부의 수요 예측 실패에서 기인했다. 유럽 각국은 지난해 4월 신종플루가 시작되자 전 국민이 2회 접종할 분량을 구매하기로 각 제약사와 계약했지만, 실제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 1회 접종(10세 이상 성인)만으로도 면역이 충분히 형성되는 것으로 밝혀져 확보한 백신 물량의 절반 이상이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반해 지난해 9월 뒤늦게 백신 준비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1회 접종으로 충분한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제약사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남아도는 물량이 전혀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유럽, 호주의 백신회사에서 수입하다보니 지난해 10월과 11월 신종플루 백신 공급에 차질이 있었지만, 유럽의 백신 공급 과잉현상으로 오히려 이제야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다음은 백신의 안전성 문제.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국내의 신종플루 백신 생산 및 공급을 담당하는 녹십자의 백신 안전성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부, 학계, 의료계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두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다.

1월14일 현재까지 신종플루 백신을 맞은 사람은 900만명으로 뇌출혈, 뇌염, 패혈증 등 중증의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는 전혀 없었다. 대부분의 부작용은 미열, 구토, 피부발진 등 경미한 사례뿐이다. 언론보도로 알려진 사망 사례들은 조사결과, 백신접종과 관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1월부터 접종이 시작되는 성인용 백신에는 MF59라는 면역증강제가 포함돼 있어 면역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백신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면역증강제 포함 백신은 WHO 등 국제기관에서 적극 권장하는 사항으로, 안전성 면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그래도 신종플루 백신접종에 대해 의구심이 남아 있다면 이 문구만 명심하자.

“100만명 중 1명이 사망해도 나와 내 가족이 죽으면 그 사망률은 10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