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1

2010.01.26

정동영 복당, 혁신이냐 내홍이냐

민주당 안팎서 벌써부터 싸움 조짐 … 공천과 전당대회 ‘계파전쟁’ 불 보듯

  •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rcmlee@hanmail.net

    입력2010-01-19 17: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동영 복당, 혁신이냐 내홍이냐
    무소속 정동영 의원은 2007년 대통령선거(이하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다. 그런 그가 1월12일 민주당에 입당 신청서를 냈다. 저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대선후보였던 사람이 다시 입당한다고? 그게 뭐야.’ 하지만 이 의문만큼 민주당과 정 의원의 현재를 잘 말해주는 것도 없다.

    당의 대선후보였던 사람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이하 재보선)에 공천하지 않았던 정당이 민주당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것은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죄인은 아니다. 패배자일 뿐이다. 게다가 어떤 선거든 낙선한 당사자만큼 아픈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민주당은 그를 외면했다. 아니, 외면을 넘어 싸늘하게 공격하고 폄훼했다. 이런 일을 두고 ‘용렬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리라.

    2007년 가을, 정 의원은 민주당의 대선후보라는 타이틀을 어렵게 따냈다. 당내 경쟁자의 온갖 음해와 공격을 이겨낸 결과였다. 그런 그가 2009년 4월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민주당이 공천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당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얻은 자리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직’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또한 자기부정이다. 선거운동 중에 그는 민주당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이를 두고 ‘졸렬하다’는 수사를 붙이는 것이리라.

    386 출신 의원들 “더 자숙하라”

    어쨌든 이런 과거지사는 각설하더라도, ‘정동영의 민주당 복당’이 이뤄지는 프로세스 또한 깔끔하지 않다. 2009년 연말 예산전쟁에서 민주당은 완패했다. 대안야당이란 환상에 빠져서든, 당내 불협화음 때문이든 여당에게 시종 끌려다니다가 끝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당했다. 여권이 이미지 정치와 세련된 무대 관리(stagecraft)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무능,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이런 와중에 슬그머니 이뤄지고 있는 것이 정 의원의 복당이다. 이에 일부 친노계와 386 출신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또한 우습다. 정 의원에게 “더 자숙하라”고 한다는데, 민주당의 위기가 정 의원 탓인가. 정 의원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이 적지 않지만, 그가 전적으로 져야 할 것은 아니다. 대선 이후 정 의원은 정치 일선에서 빠졌다. 그 뒤의 민주당, 과연 잘했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민생을 잘 챙겼나. 얼마만큼의 호의를 가져야 이 질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정 의원은 “재보선 기간에 당에 부담을 준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당에 사과했다. 또 “선거과정에서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동지들에게 정치적 이유를 떠나 인간적으로 넓은 이해를 구한다”고도 말했다. 사과치고는 너무 약하다.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런 게 정 의원의 한계요, 약점이다.

    게다가 ‘유감을 표한다’는 말은 일종의 비문(非文)이다. 용례가 틀렸다. 사전을 찾아보면 유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마음에 차지 아니해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다른 하나는 느끼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앞의 유감은 한자로 남길 유(遺), 뒤는 있을 유(有)를 쓴다. 어느 경우든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미안하다는 뜻을 전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특히 남길 유(遺) 자를 쓴 ‘유감을 표한다’는 말은 ‘불만이 있다’는 뜻이다. 이게 사과인가.

    한편 민주당의 대응도 안쓰러울 정도다. 공천하지 않았던 이유에 자신이 있다면, 지금 다시 받아들이는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자당 출신 대선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던 것이나, 공천하지 않았던 그 사람을 9개월 만에 다시 받아들이는 것 모두 자기부정이다. 이 두 번의 자기부정에 대해 민주당은 솔직하게 고백하고 설명해야 한다.

    정동영 복당, 혁신이냐 내홍이냐

    지난해 11월14일 일본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추모행사에 참석한 정동영 의원(왼쪽)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냉랭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오바마를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시킨 책이 ‘담대한 희망(Audacity of Hope)’이다. 이 책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 삶에서 느낀 바를 담담하게 말하는 담대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몰래 방귀를 뀌고 아닌 척하는 것처럼 정 의원의 복당 문제가 처리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국민참여당과 통합에도 영향 끼칠 것

    민주당의 분위기를 보면 정 의원의 복당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누가 뭐래도 민주당의 주주, 그것도 대주주다. 게다가 호남의 맹주다. 물론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악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정 의원에게조차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다.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정세균 의원의 호남 대표성은 미미하다. 2009년 재보선이 있었던 수원에서 자신의 힘을 보여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도 호남 지지도는 약하다. 표로 검증된 바도 없다.

    정 의원의 등장으로 지방선거 공천은 복잡하게 진행될 것이다. 국민배심제를 도입하는 등 아무리 당권파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하더라도, 정치행위에는 정치적 힘이 우선이다. 호남 대표성이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조직력,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등 정치적 측면에서 정 의원의 힘은 거의 압도적이다. 더군다나 대권에 대한 열정이 변함없는 정 의원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바보짓이다. ‘사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굶주린 짐승이 고기를 보고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고 그냥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현재 한국의 정당은 약하다. 공천제도에 상관없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도로서의 정당이기보다 인물로서의 정당인 측면이 더 강하다. 이런 이유로 유력주자, 지지도 높은 인물과 예비후보자 간의 ‘주고받기(give · take)’ 또는 ‘줄서기’는 어쩌면 당연하다. 정 의원의 복당은 그가 민주당 내 공천에 개입할 수 없었던 족쇄가 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당내에서 공천을 둘러싼 갈등과 소란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당장 지지율 면에서 열세에 몰린 주승용 의원(전남도지사 출마)이나 양형일 전 의원(광주시장 출마) 등 정 의원과 가까운 예비후보들이 ‘정동영 요인’ 활용에 적극 나설 것이 분명하다.

    지방선거 후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이 전당대회에서 뽑히는 지도부는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2012년 총선은 그해 대선후보 선출에 중요한 변수다. 따라서 차기 주자들은 여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민주당의 차기 전당대회에서는 대권주자 간 일대 격돌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정 의원의 복당은 국민참여당과의 연대나 통합 문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에 대한 친노 세력의 반감은 깊다. 민주당 입당으로 정 의원의 호남 장악력은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영남지역당이 되지 않기 위해 호남을 공략해야 하는 국민참여당으로선 당연히 마땅치 않은 구도다.

    정 의원의 복당은 민주당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정상화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민주당이 더 높은 통합과 혁신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내홍과 분열로 정체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