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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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욱 입 열면 여럿 더 다쳐!…?

검찰, 한명숙 前 총리 수사에 자신감 … ‘비자금 시한폭탄’ 정치권 잔뜩 긴장

  • 최우열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

    입력2009-12-23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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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영욱 입 열면 여럿 더 다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그의 ‘입’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려 있다.

    “곽영욱 전 사장이 무슨 얘길 꺼낼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11월6일 곽영욱(69·사진) 전 대한통운 사장이 구속되자마자 검찰 내부에 이런 말이 돌면서 이상한 기류가 감돌았다. 검찰 관계자들이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예정했던 ‘대한통운 비자금 의혹’ 수사 결과 발표 일정이 곽 전 사장이 구속된 뒤 계속 연기됐던 것. 수사를 마무리하는 듯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 대한통운 수사팀 검사실도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9월 말 이국동 전 대한통운 사장을 횡령혐의로 구속한 검찰은 11월 초까지 한 달 이상 수사를 진행해오던 터였다. 그 결과 검찰은 이 전 사장 등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외국계 선사 관계자들을 불구속 기소하고, 이 전 사장의 전임 사장이던 곽 전 사장을 회사 돈을 빼돌려 수백억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 기소한 상황이었다.

    검찰수사 결과, 곽 전 사장은 대한통운 사장과 법정관리인으로 재직하던 2000~05년 각 지사에 지시해 기밀비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지사는 비자금 중 상당액을 거래처 리베이트 지급 용도로 사용한 뒤 허위 전표를 발행해 본사에 보고했으며, 곽 전 사장은 관련 자료 폐기를 지시하기도 했다.

    대부분 前 정권 핵심 ‘전주’ 인맥



    곽 전 사장은 또 비자금 가운데 80여 억원을 개인적으로 상납받았으며, 그중 40억원을 차명계좌에 보관하면서 주식투자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구속된 뒤 바로 입을 열었다. 비자금 40억원의 사용처를 일부 진술하기 시작한 것. 이때부터 옛 여권 핵심 인사의 이름이 H, J, K 등 이니셜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는 예정보다 2주 정도 늦게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그러나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그 후 일주일 뒤 곽 전 사장에게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아주경제신문 곽영길 대표를 전격 체포했다. 비자금 사용처 수사의 신호탄이었다. 이즈음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선 H, J, K씨 중 H씨에 대한 곽 전 사장의 진술이 가장 명확하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H씨’는 곧 ‘실명화’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로 보도됐고, 민주당이 이에 격렬히 반발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5년까지 대한통운 사장직에 있던 곽 전 사장은 2년 뒤인 2007년 4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사장으로 재기한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국무총리직에 있었다. 전력사업과는 무관한 물류회사에 몸담았던 곽 전 사장이 갑자기 남동발전이라는 공기업 사장으로 등극한 것은 한 전 총리가 건네받은 금품 때문이라는 의혹이 급부상하게 된 배경이다.

    곽 전 사장이 검찰에서 돈을 건넸다고 언급한 인물은 대부분 전 정권의 핵심에 있던 전주 인맥들이다. 곽 전 사장은 전주고 출신이며, 체포된 아주경제신문 곽 대표도 같은 고교 출신. 곽 전 사장은 동향 또는 동문인 다른 인물들에 대해선 일관된 진술을 하지 않았으나, 평양 출신의 한 전 총리에 대해선 구체적이고도 일관되게 진술을 이어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은 한 전 총리에 대한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에게서 “2006~07년경 한명숙 당시 총리를 만나러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 갔을 때 여러 사람이 동행했으며, 동행자 중 몇 명은 공관에서 일정이 끝난 뒤 먼저 나갔고 내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5만 달러를 두고 나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노무현 정권 때 산업자원부 제2차관과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지낸 이원걸 씨, 대통령인사관리비서관을 지낸 국토해양부 국장급 간부 문모 씨(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 파견), 한국남동발전 감사 이모 씨 등을 소환 조사했다. 곽 전 사장이 남동발전 사장에 오른 경위를 집중적으로 파악한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12월11, 14일 두 차례 소환통보했다.

    한 전 총리와 민주당 측은 “단 1원도 받지 않았다”면서 ‘한명숙 정치공작분쇄 공동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해 검찰수사를 ‘정치공작’으로 규정했다. 한 전 총리가 소환 조사를 거부하자 검찰은 12월16일 한 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해 발부받기에 이른다.

    검찰은 현재 5만 달러 수수혐의뿐 아니라 한 전 총리의 또 다른 금품 수수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야당은 이 사건을 유력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인 한 전 총리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정권 차원의 공작으로 보고 있다. 한 전 총리 측이 끝까지 소환에 불응하고 검찰의 체포영장 집행에 저항할 경우 검찰로선 한 전 총리를 조사하지 않고 정치자금법 위반 또는 알선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수밖에 없다. 한 전 총리가 수수 의혹을 받는 액수 등을 따지면 구속영장을 청구할 정도의 사안은 아닌 것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곽영욱 입 열면 여럿 더 다쳐!…?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12월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노무현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품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 “정황상 돈 받은 사람 더 있을 것”

    검찰 관계자는 “곽 전 사장은 매우 노회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돈을 건넨 사람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로선 확보된 진술이 없다”고 전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 또한 한 전 총리 외에 추가로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수사 여부에 대해 “없다. 더 (수사)하지 않는다. 연말까지 끝낸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노회한’ 곽 전 사장이 검찰수사에 협조해 자신의 무거운 혐의를 완화시킬 수 있는 ‘비상구’와 오랫동안 연을 맺어온 지인들을 배신하지 않는 ‘의리’ 사이에서 고심하다 내놓은 인물이 현재까지는 한 전 총리 한 명인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는 한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로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해왔으며,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유력 정치인. 이니셜 등이 거론된, 힘 있는 현역 국회의원에 비해 부담감도 적은 데다 한 전 총리가 야권 유력 정치인이라 현 정권과 검찰의 구미에도 맞을 것으로 곽 전 사장이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그동안 거론되던 J, K씨뿐 아니라 야권 핵심 관계자의 이름이 새롭게 나오고 있다. 곽 전 사장이 조성한 비자금 40억원 중 상당 부분의 사용처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이 필요에 따라 곽 전 사장이 가진 ‘칼’을 언제든 건네받아 휘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곽 리스트’라는 터지지 않은 시한폭탄이 남아 있는 한 당분간은 긴장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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