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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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기련 (한국기업연합회) ’으로 쇄신? 도로 전경련!

“간판만 바꿨다” 비판, 정경유착 부활 가능성 상존…“싱크탱크로 전환 기회 줘야” 목소리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4-03 15: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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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해체 압박을 받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궁여지책으로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3월 24일 허창수 전경련 회장(GS회장)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FKI빌딩)에서 대국민사과 및 혁신안을 발표했다.

    허 회장은 이날 경제단체 본연의 소임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단체 명칭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바꾸고 조직과 예산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정경유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조직 부문에선 사회본부를, 회계 부문에선 사회협력회계를 각각 폐지하고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통합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태생부터 정경유착, 이제는 끊어야 할 때

    하지만 이 같은 혁신안은 간판만 바꿔 다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환골탈태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전경련의 혁신안 발표 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전경련 즉각 해체를 촉구하는 논평을 쏟아냈다.

    경실련은 “사회협력회계를 폐지한 건 주요 회원사인 대기업의 탈퇴로 재정상황이 열악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 사회협력회계 폐지만으로 정경유착 근절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 또한 “전경련이 내놓은 혁신안은 진정성을 인정받고 신뢰를 회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재벌 로비단체로 기능해온 과거를 인정하고 이를 버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면 한국기업연합회로 간판만 바꿔 단 채 다시 과거 전경련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의 미래와 관련해 혁신이 아닌 해체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비리로 얼룩진 ‘어두운 과거’ 때문이다. 전경련은 1961년 당시 이병철 삼성물산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요청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박 대통령이 부정축재란 이유로 기업인들을 구속하자 이 회장이 국가 산업정책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하며 경제재건촉진회를 열었고, 이것이 전경련의 모태가 됐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기업들에게 세금·금융 혜택, 시장 독점권을 보장해주면서 재벌 성장을 도왔고 그 대가로 전경련은 정치자금 조달 및 수금 창구 구실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태생부터 정경유착의 채널로 출범한 전경련은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 설립 자금 출연, 노태우 정권에 대선 비자금 제공, 국세청 차장이 개입한 세풍 사건,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일명 ‘차떼기 사건’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정경유착과 부패사건의 중심에 늘 서 있었다.

    또한 그럴 때마다 전경련은 “음성적인 정치자금은 내지 않겠다”며 부패 방지를 위한 다짐으로 ‘기업윤리헌장’을 제정하는 등 수차례 대국민사과와 혁신을 약속했지만 그때뿐, ‘어둠의 역사’는 계속 반복됐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경유착을 통해 대규모 범죄를 저지른 단체를 그냥 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국민 대다수가 정경유착을 근절하려면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업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전경련 같은 단체가 없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승철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도덕적 해이 또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전 부회장은 2월 24일 부회장직에서 물러나며 퇴직금으로 20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재계 안팎에서는 “급여를 환수해도 모자랄 판에 노후 보장을 위한 막대한 퇴직금까지 주는 건 잘못”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전경련의 ‘상근임원의 퇴직금 지급 기준’에 따르면 상무보와 상무는 근속연수 1년마다 월평균 임금의 2.5개월분씩 퇴직금이 쌓인다. 전무는 평균 임금의 3개월분, 상근부회장은 3.5개월분씩 누적된다.

    1990년 한경연 연구위원으로 입사해 99년 전경련 기획본부장(상무보)으로 영전하면서 일약 임원급이 된 이 전 부회장은 18년 동안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1년에 1억 원가량씩 퇴직금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경련 측은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기를 꺼리면서 “역대 퇴직 임원들과 형평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 직원이 1년 근무할 때마다 평균 1개월 치 퇴직금을 받는 것과 비교해 임원 퇴직금이 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임원은 정규직이 아닌 만큼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측면에서 퇴직금 지급률이 높긴 하지만, 전경련이 돈을 버는 기업도 아닌데 어떻게 일반 기업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퇴직금 산정 체계를 갖췄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전경련이 ‘신의 직장’으로 꼽힌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승철 전 부회장, 퇴직금만 20억?

    심지어 이 전 부회장은 퇴직금에 만족하지 않고 상근고문직과 퇴직특별가산금도 추가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2013년 물러난 정병철 전 상근부회장에게 2년 동안 상근고문 예우를 해준 전례가 있다.

    당시 정 전 부회장은 전경련회관 내 사무실과 개인비서, 차량, 운전기사 등을 제공받았고 보수도 재직 중 급여의 80%를 받았다.

    퇴직특별가산금은 상근임원 가운데 재임 기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돈으로, 퇴직금의 50%까지 지급된다. 하지만 이 전 부회장에게는 추가 지원이 없을 예정이다.

    전경련 측은 “법정퇴직금 외 추가로 지급되는 돈은 일절 없다. 퇴임 후 진행되는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한 변호사 선임 비용도 따로 지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욱이 혁신안 발표 사흘 뒤인 3월 27일 대규모 조직개편 인사가 단행되면서 자리 보존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아직 희망퇴직 접수 등 인력 구조조정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일정 수준의 감원이 불가피하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경련은 이번 쇄신안을 바탕으로 기존 7본부 체제를 커뮤니케이션본부·사업지원실·국제협력실 등 1본부 2실 체제로 개편하고, 기존 경제·산업본부의 정책연구 기능은 한경연으로 이관해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 사무실 공간도 절반으로 축소키로 했다. 전경련회관 44~47층 총 4개 층을 사용하던 것을 2개 층만 쓰기로 한 것. 그 배경에는 ‘임차료라도 아끼자’는 내부 방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전경련 한 관계자는 “오늘(3월 29일)부터 사무실 전체 공사를 시작해 이번 주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업무공간을 반으로 줄인다는 게 쉽지 않지만 새로 취임한 권태신 상근부회장이 ‘고통분담’을 거론한 이상 앞으로 비용 감축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전경련회관은 2013년 12월 지하 6층, 지상 50층 규모로 지어졌으며 시가 7000억 원에, 한 해 건물 임대 수익만 400억 원이 넘는다. 그렇기에 전경련 쇄신안의 이면에는 재산 유지에 대한 강한 의지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민법상 전경련처럼 회사 정관에 잔여 재산 귀속인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 처분하지 못한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는 만큼, 전경련 처지에서는 어떻게든 단체로서 명분을 이어가야만 재산을 지킬 수 있다.

    이처럼 전경련이 조직 유지를 위해 발버둥 칠수록 강제 해산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 또한 거세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전경련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에 직접 전경련 설립허가 자체를 취소하라고 요구한 것.

    경실련 관계자는 “지난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전경련해산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민법상 산자부는 사회적으로 공익성을 심각하게 훼손했거나 부정부패 사건으로 설립 목적을 위배한 단체에는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 정경유착 고리를 완전히 끊기 위해서라도 산자부는 빨리 전경련 해체를 명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의 권력 행사 막는 게 중요

    또한 전경련이 스스로 해체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권력 행사를 막기 위해 정부 각 위원회에서 전경련 출신 인사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에는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이 여전히 사용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2월 중순까지만 해도 국민연금공단 이사회에 사용자 대표단체의 하나로 전경련이 참여해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나 국회를 대상으로 한 의사소통 기능이 남아 있는 한 정경유착은 어떤 식으로든 변형될 수 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전경련 해체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전경련의 권력 행사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전경련이 민간 경제외교 기능 등을 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월 10일 전경련 혁신안을 놓고 열린 토론회에서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경련의 기능이 현재에도 유효”하며 “자체 혁신을 통해 충분히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싱크탱크로서 소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안재욱 교수는 “정경유착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정경유착은 너무 거대한 정부권력 탓에 생기는 것으로 단순히 전경련이 없어진다고 정경유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전경련은 여러 가지 교육과 홍보활동을 통해 국민의 반(反)기업, 반시장경제 정서를 상당 부분 허물었다. 이런 역할을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추가로 탈퇴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이미 탈퇴한 기업도 최대한 빨리 복귀하면 좋겠다”고 밝힌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말이 현실로 이뤄질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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