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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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 그림으로 살려냈다

  • 베이징=이헌진 동아일보 특파원 mungchii@donga.com

    입력2009-09-23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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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 그림으로 살려냈다
    “안중근 의사의 체포 장면이 마치 살인범이 체포되는 것처럼 그려졌어요. 러시아 군경에게 짓눌려 꿇어앉아 있는…. 일제가 입맛대로 조작한 이미지죠. 반드시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의 대표적 출판사인 민족출판사가 2008년 5월 발간한 ‘안중근이 이또 히로부미를 쏘다’는 한 화가의 신념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에는 하나같이 식민지 청년의 고뇌, 신념, 의기가 빛을 발한다. 저격 장면을 그린 그림에선 죽어가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공포에 허둥대는 수행원들을 압도하며 안 의사가 결연히 총탄을 발사한다.

    이 그림들을 그린 사람은 1940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태어난 중국 동포 남영(南榮·69) 화백. 그는 1936년 전북 익산에서 가난을 피해 북만주로 이주한 한국인의 후예다. 그는 안 의사의 의거를 중학생 때인 1950년대에 처음 접하고 일생의 화두로 삼았다.

    9월1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만난 남 화백은 “교과서에서 안 의사를 처음 알았다. 학생 때 중국이나 러시아 사람들은 안 의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 민족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남 화백은 권위 있는 예술대학인 하얼빈예술학원 미술학부 조각학과를 졸업했다. 20대 초반 베이징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1966년 ‘문화혁명’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예술가는 ‘자본주의의 싹’이라고 핍박받았어요. 나 또한 하방(下放)돼 종이공장의 하층 노동자로 쫓겨났죠. 시골에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1971년 우연찮은 기회에 신문사에 입사, 30년을 기자로 일했다. 헤이룽장 성정부에서 발행하는 조선어신문 ‘헤이룽장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다. 또 자매지인 ‘치부정보신문’ 사장을 지낸 뒤 2001년 퇴직했다. 그는 기자 시절 내내 안 의사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얼빈 역전을 지날 때마다 안 의사가 떠올랐어요. 1985년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짬짬이 도서관과 서점 등을 오가면서 안 의사 관련 자료들을 모았고 초고를 그리기 시작했죠.”

    그림마다 등장인물의 복식과 표정을 세심히 고증했고 유추했다. 틈틈이 그린 그림 144장에 동료의 도움으로 글을 달아 펴낸 게 앞서 소개한 책이다. 무려 20여 년이 걸린 셈이다. 그는 “직장 등 여러 이유로 작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퇴직하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 화백은 뜻을 함께하는 조선족 동료들과 함께 ‘안중근과 하얼빈’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안 의사에 대한 중국 측 자료를 집대성한 일종의 자료집이다. 이 책에는 위안스카이(袁世凱), 쑨원(孫文), 장제스(蔣介石),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정파와 시대를 달리하는 중국 지도자들의 안 의사 찬양 내용이 소개돼 있다.

    그는 퇴임 후 화가로 본격 나섰다. 그의 수묵화는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그는 중국 서화가협회 이사, 중국서화연구원 연구원으로 각종 미술전에서 금상 13개 등 다수의 수상작을 낸 국가 1급 화가다. 또한 ‘중국미술가 100선’ 등의 명단에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인이지만 한민족의 핏줄임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같이 명절을 앞두면 늘 두 곳이 생각나요.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인 전북 익산과 내가 태어난 북만주 헤이룽장입니다. 부모님은 친구들이랑 술이라도 한잔하시면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하며 ‘타향살이’를 부르셨죠. 그 노래가 지금도 귓가에 맴돌아요.”

    그는 한-중 수교 전 1989년 홍콩을 거쳐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김포공항에 내리기 직전 온몸에 전기가 오고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던 것이다.

    “고향에 가보니 부모님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뜰 안의 감나무, 뒷동산 등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그에겐 한국인 친구가 많다. 남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칠십 평생을 살았지만 중국 친구들이 북한을 욕하면 영 듣기 거북하다. 그리고 한국 사람을 보면 고향 사람 같아 자꾸 눈길이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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