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5

2009.09.29

神의 실수에 누가 돌 던지랴

남아공 육상선수 세메냐 ‘양성인간’ 논란 … 조선시대 사방지·고대수, 잔다르크도 의심 눈초리

  •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입력2009-09-23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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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의 실수에 누가 돌 던지랴

    1857년 프랑스 파리의 피라미드 광장에 세워진 잔다르크 동상. 백년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잔다르크도 양성인간 의혹이 제기됐다.

    조선 세조조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으니 바로 자웅(雌雄)의 생식기를 모두 가진 어지자지(양성인간) 사방지(舍方知) 사건이다. 사방지 사건은 조선 명종 때 서얼 학자인 어숙권(魚叔權)이 쓴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이렇게 전한다.

    “사방지는 사천(私賤)으로 용모가 여자 같아 어려서부터 그의 어머니가 계집애의 옷을 입히고 연지와 분을 바르고 바느질을 시켰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사대부 집에 드나들면서 여시(女侍)들과 함께 자는 일이 많았다. 진사 김구석의 아내 이씨는 판원사(判院事) 순지(純之)의 딸인데, 홀어미로 있으면서 사방지를 데려다가 바느질을 시키고 밤낮으로 10여 년이나 함께 거처했다.

    천순(天順) 7년(1463) 봄에 사헌부에서 이 사실을 듣고 그를 국문했는데, 그가 평소에 사통(私通)한 한 여승(女僧)을 심문했더니 여승이 ‘그의 남경(男莖)이 매우 장대(壯大)하더라’ 하므로 여의사 반덕으로 하여금 더듬어 만져보게 했더니 과연 그러했다. 임금이 승정원 및 영순군(永順君) 부(溥)와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 정인지의 아들) 등으로 하여금 알아보게 했더니, 하성위의 누이가 이씨의 며느리이므로 누이에게서 듣고 하성위도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고 하니, 임금이 웃고 순지의 가문을 더럽힐 염려가 있으니 따지지 말라고 특명을 내렸다.

    사방지를 순지에게 넘겨줘 처리하게 했는데, 순지가 다만 곤장 10여 대만을 때리고 기내(畿內)의 노복으로 보냈다. 그러자 얼마 안 돼 이씨가 몰래 사방지를 다시 불러들여 순지가 죽은 후에 또 마음대로 놀아났다. 금년 봄에 재상들이 연회 석상에서 이 사실을 아뢰었더니, 임금이 사방지에게 매를 치고 신창현(新昌縣)으로 귀양보냈다.”

    ‘치마와 비녀 벗기니 문득 탄로 났네’



    이처럼 사방지 사건 재판 과정에서 세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曆法)인 칠정산(七政算) 내·외편을 만든 천문학자 이순지(?∼1465)에 대해 따뜻한 배려를 하면서 매끄럽게 일을 처리했다. 이 사건에 대해 도학자(道學者) 점필재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시 두 수를 지어 경계했는데, 하나는 “아낙방 깊은 곳에 몇 번이나 몸을 숨겼는고. 치마와 비녀 벗기니 문득 탄로 났네.

    진물(眞物)이 본래 변환(變幻)하니, 세상에서 양성(兩性)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이고, 다른 하나는 “남녀를 산파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으랴. 여우굴 있는 곳에는 민가가 망하는 법. 거리에서는 하간전(河間傳, 중국 하간지방의 전래노래)을 시끄러이 외우고 규방에서는 슬프게 양백화(楊白華, 중국 위태후와 간통한 자)를 노래 부른다”이다.

    그리고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도 그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사방지에 대해 언급하기를 “사방지의 불알은 늘 살 속에 감춰져 있었으므로 양성인(兩性人)이라는 말이 생겼다. 내가 일찍이 의주(義州)의 갑사(甲士) 최한수(崔漢壽) 집에서 암말(雌馬)을 보았는데, 그 음부(陰部) 안에 양경(陽俓)이 있어 졸아들면 안으로 감춰지고, 일어서면 밖으로 나오며 양경으로 오줌을 눴다.

    봄이 되면 암말을 따라다니나 양경이 뒤로 향해 있으므로 교미는 할 수 없었다. 만약 수말(雄馬)이 다가오면 발로 차서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물리(物理)의 알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사람으로 말하면 사방지의 부류라고나 할까. 그러니 둘이 다 만물 중의 요물(妖物)이요, 사방지는 게다가 여자를 범했으니 말보다 더 심한 자이다”라고 했다.

    그 후에도 양성인간에 대한 기사는 이수광(李光·1563∼1628)이 쓴 백과전서인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전하는데, 명종조에 대간(臺諫)이 음경과 음문을 함께 갖춘 사람을 목 베어서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날짐승과 길짐승도 가벼이 죽일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인류에 있어서랴. 외딴곳으로 보내는 것이 옳다”라고 했다. 이러한 국왕의 처사에 대해 이언적(李彦迪·1491∼1553)은 “훌륭하도다. 임금의 말씀이여. 참으로 천지 부모의 도량이도다”라고 칭송했다.

    사방지 사건 후 400여 년이 흐른 한국 근대사에서 사방지와는 전혀 다른 남자 같은 여자인 고대수(顧大嫂)를 만날 수 있다. 김옥균(金玉均·1851∼1894)이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 망명 중에 쓴 ‘갑신일록(甲申日錄)’ 12월1일자 기록이다.

    “궁녀 모씨는 연금(年今, 1884년) 42세인데 신체가 남자처럼 건장하고 완력이 남자 5, 6명을 당해낼 만하다. 고대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곤전(왕비)의 총애를 받는데, 10년 전부터 우리 당에 가입해 수시로 궁중의 기밀과 동태를 알려줬다.”

    고대수는 김옥균이 조직한 비밀결사인 충의계(忠義契)의 멤버로 환관 유재현(柳在賢) 등과 궁중 연락책으로 암약했다. 1884년 12월4일(음력 10월17일) 오후 7시경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에서 비롯된 개화당의 갑신정변은 오래전부터 모의돼 고대수도 역할을 분담했다.

    고대수는 유 내시와 함께 정변 며칠 전부터 고종의 오침시간을 다른 소일거리로 대체시켜 정변 당일 고종이 수면시간이 부족해 일찍 침소에 들도록 계획을 세웠고, 궁궐 문을 열어 김옥균, 박영호, 서광범 등의 개화당 요인을 맞아들이고 궁궐 내 통명전(通明殿)에서 폭렬약(화약)을 터뜨려 방화를 함으로써 난이 일어난 것처럼 꾸미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궁녀 고대수 ‘건장한 남자 대여섯 당해낼 만’

    고대수는 거사 당일 김옥균이 취침 중이던 고종을 깨워 창덕궁에서 경우궁으로 이어(移御)할 때 궁궐 내에 폭발소리를 내 국왕과 왕비, 왕세자를 당황케 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케 한 주인공이다. 고대수는 그야말로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쿠데타에 가담한 배포 있는 남성적인 여성이었다.

    고대수는 생몰년이 미상인데 ‘비변사등록’ 고종 22년(1885) 12월22일(양력 1886년 1월26일) 기록을 보면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막을 내린 후 정변 관련자 색출 과정에서 궁궐 내에 숨어 있다가 체포돼 처형된 궁녀 이우석(李禹石)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우석을 고대수로 추정한다.

    최근 유럽에서도 영국·프랑스 간의 백년전쟁(1338∼1453)에서 활약한 프랑스의 구국영웅이자 성녀인 잔다르크(Jeanne d’Arc·1412∼1431)가 양성인간이라는 조심스런 분석이 나왔다. 백년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오를레앙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잔다르크가 남녀 생식기를 모두 가졌다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문제를 제기한 학자는 일찍이 잔의 동료인 장돌롱이 “잔은 젊은 여성이 겪는 일상의 불편함도 없었고 남성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고 증언했다”라고 주장했다. 또 잔은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 생식선이 여성화하는 희귀병을 앓아 자궁이 없는 대신 테스토스테론을 생성하는 작은 고환이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8월20일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 경기에서 우승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18)가 양성인간이라는 보도가 나와 양성인간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세메냐는 남성과 같은 근육질과 목소리로 의혹을 받아왔는데, 경기 전 검사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이 일반 여성보다 3배나 많이 나왔다. 이러한 논란 속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세메냐의 향후 경기 출전을 금지시켰고 금메달 역시 박탈될 수 있다고 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우상인 세메냐의 성별검사를 놓고 자국민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분노하고 있다. 지난 역사의 인물인 사방지와 고대수, 잔다르크가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지는 묻어두더라도 세메냐와 같이 오늘날을 우리와 함께 사는, 신이 창조한 생명체에 대해 같은 피조물이 성별 판정을 한다는 것이 과연 이성적일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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