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1

2009.09.01

씹으면 씹을수록 탄탄해지는 우리 몸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08-26 18: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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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씹으면 씹을수록 탄탄해지는 우리 몸

    <B>1</B> 단순하고 소박한 밥상이 여러모로 좋다.

    건강은 삶의 기본이다. 자급자족 삶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건강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씹는 것 하나만 봐도 그렇다. 잘 씹기,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올 초 우리 집에 뜻밖의 손님이 오셨다. 전남 승주에서 자연농법과 자연의학을 실천하시는 한원식(62) 선생이다. 나로서는 그동안 말로만 듣던 분이라 반갑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선생은 서른 살 무렵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단다. 자연에서 사는 건 1년, 아니 하루를 살아도 자신만이 보고 배우는 게 있다. 한 선생은 30여 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내가 배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날 한 선생이 강조한 건 씹기였다. 한 입에 100번을 넘어 130∼140번 씹으라 했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밥 모심’ 아닌가. 이렇게 하면 적게 먹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단다. 심지어 선생의 부인은 하루에 한 끼 먹고도 12시간 넘게 일을 한단다. 물론 지치지 않고. 이 정도면 거의 마법사에 가깝지 않나. 씹기에는 그만큼 마법에 가까운 신비가 들어 있다는 말씀.

    씹기의 마법 같은 매력

    씹으면 씹을수록 탄탄해지는 우리 몸

    <B>2</B> 한 입에 100번 이상 씹기를 강조하는 한원식 선생.

    한 선생과 헤어진 뒤 나 역시 오래 씹고자 조금씩 노력한다. 처음부터 무작정 오래 씹는 건 턱 관절에 무리가 된다. 지금 나는 한 입에 50∼60번 씹을 정도가 됐고, 한 끼 식사 시간도 제법 길어졌다. 이렇게 바뀌다 보니 나도 이제는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최근 몇 달 동안 달라지는 내 경험을 정리해본다.



    잘 씹자면 우선 제대로 아는 게 급선무. 여기서 안다는 건 실천이 되는 앎을 말한다. 씹는 데 아주 중요한 고리는 침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침이 잘 나오지 않아 입이 마른다. 이럴 때는 음식조차 당기지 않는다. 음식을 대할 때 가장 좋은 침은 군침이다. 배가 고프면 자신도 모르게 침이 괸다.

    음식 먹을 준비가 된 셈이다. 가능하다면 일을 하다가 군침이 돌 때쯤 먹는 게 가장 좋다. 씹기는 소화 과정이면서 요리 과정이기도 하다. 밥을 오래 씹다 보면 단맛이 돈다. 이는 녹말을 당으로 분해하는 아밀라아제라는 소화효소 때문이다.

    내 경험을 보자면 현미잡곡밥일 경우 대략 50∼60번 씹으면 단맛이 느껴진다. 또한 오래 씹으면 모든 음식은 죽이 된다. 그렇다면 요리를 ‘제대로’ 완성하는 건 요리사가 아니라 음식을 씹어 삼키는 각자의 몫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씹기와 관련해서 또 하나 알게 된 건 내장기관의 불수의근이다. 이 근육은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 알아서’ 움직인다.

    마법의 힘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보통 사람은 목구멍에서 똥구멍까지 길이가 8∼9m인데 그 대부분이 불수의근에 의해 움직인다. 이렇게 긴 과정을 ‘저 알아서’ 움직이자면 목구멍으로 음식을 ‘제대로’ 넘겨줘야 하지 않겠나. 대충 삼키고 내장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건 자기기만이요, 병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탄탄해지는 우리 몸

    <B>3</B> 현미잡곡밥. 씹을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 <B>4</B> 애호박나물. 양념이 지나치게 강하면 침 분비가 강요된다. <B>5</B> 비빔밥이나 덮밥을 먹을 때는 재료 하나하나를 되살려 씹어야 한다. <B>6</B> 씹는 감각을 일깨우는 복숭아.

    잘 씹는다는 건 잘게 부수는 것만이 아니다. 온도나 산도(酸度)와도 관계가 있다. 오래 씹으면 음식의 온도가 몸 온도와 자연스럽게 같게 된다. 소화를 돕는 효소는 몸 온도에 가까울 때 가장 활발히 작용한다니 너무 뜨겁거나 차게 먹지 않으려 한다. 또한 산도를 보면 침은 중성에 가깝다. 아밀라아제는 중성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용한다니 잘 씹어 침과 섞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모로 실감한다.

    이 밖에 침은 면역력과도 관계가 깊다. ‘씹을수록 건강해진다’를 지은 니시오카 하지메는 ‘잘 씹지 않으면 쉽게 암에 걸린다’고까지 했다. 특히 요즘처럼 환경이나 먹을거리 오염이 심할수록 잘 씹어, 침으로 독성을 제거하기를 권한다.

    “목구멍으로 넘기기 아까운 맛”

    이렇게 침과 섞어 오래 씹다 보면 양념이 강한 요리에는 혀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나치게 맵거나 짜거나 달면 침이 확 솟는다. 지나친 자극에 몸이 놀라 침으로 재빨리 중화시킨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한 양념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러다 보면 점점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고, 나중에는 침샘이 갖는 고유한 기능마저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스친다.

    이렇게 보면 소박한 요리, 단순한 밥상이 한결 돋보인다. 씹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밥상. 이런 점에서 현미잡곡밥은 백미밥에 견주어 영양도 좋지만 씹을수록 맛이 나니 오래 씹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가도 어느 때는 허겁지겁 먹게 된다. 왜 그런지를 들여다보니 바로 ‘정신적인 허기’ 때문. ‘지금 여기’에 충실하기보다 너무 앞서 머리를 굴리다 보면 배보다 마음이 먼저 고파 빨리 먹게 된다.

    잘 씹는 게 의무가 아닌, 즐거움이 될 수는 없을까? 내가 얻은 답은 여럿이 어울려 식사할 때도 되도록 음식 이야기를 많이 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한번은 우리 작은아이에게 아주 감각적인 영감을 받은 적이 있다. 여름이 끝나가면서 복숭아가 무르익을 무렵. 우리 집 복숭아는 백도라 하얀 속살 안에는 붉은빛이 감돈다.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먹던 아이가 하는 말.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아까워!”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의식이 탁 트였다. 아, 이런 감각도 있구나! 목구멍으로 넘기기 아까워 자꾸 혀로 굴리고, 이로 씹으며 또 침과 뒤섞는 맛! 굳이 오래 씹으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음식의 고유한 맛을 즐기면 저절로 오래 씹겠구나. 이 맛을 위해 되도록 밥 따로, 국이나 찌개 따로 먹으려 한다.

    잘 씹기는 이처럼 알수록 신비한 마법의 세계다. 나는 이제 그 첫 걸음마를 뗀 기분이다. 사실 잘 씹기가 혼자 노력만으로는 결코 쉽지 않다. 남들은 다 먹었는데 혼자 계속 먹고 있을 때의 어색함!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음식문화 자체를 함께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모두 다 마법사가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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