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0

2009.08.25

취업 빙하기 글로벌 채용시장 노려라

각국 ‘일자리 보호주의’로 심각한 구직난 … 장기적으론 ‘국적’보다 ‘능력’ 우선 ‘틈새 고용’ 확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9-08-19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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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 빙하기 글로벌 채용시장 노려라
    “간만에 채용공고가 뜨더라도 ‘US Citizen Only’라는 조건이 꼭 붙어 있습니다. 채용공고를 보러 유학생끼리 모였다가 한숨만 푹 쉰 뒤 뿔뿔이 헤어지곤 합니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MBA 과정에 재학 중인 한 한인 유학생은 요즘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지구촌 곳곳에서 실업자가 대거 쏟아지고 신규 일자리 또한 얼어붙으면서 ‘일자리 보호주의’가 어느덧 세계 각국의 대세가 돼버렸다. 자국민이 해고되는 상황에서 외국인에게 줄 일자리는 없다는 논리다. 이어지는 이 한인 유학생의 얘기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아이비리그 유학생도 현지 취업이 봉쇄된 상황입니다.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들의 외국인 채용을 사실상 금지해버렸거든요. 그러니 월스트리트에서 외국인을 채용할 여력이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올해는 남아도는 미국 취업비자 H-1B

    글로벌 브랜드의 미국 본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는 김모(30) 씨는 “회사 처지에서는 지금이야말로 고급인력을 싼값에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전했다.



    “신입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내면 하루 100장의 이력서가 날아오는데, 대부분이 경력 디자이너라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취업비자 지원까지 해줘가며 굳이 외국인을 채용할 이유가 없는 거죠.”

    구제금융을 받지 않았더라도, 자국민 노동력을 충분히 구할 수 없더라도 ‘눈치가 보여서’ 외국인을 채용하기 어려운 실정이기도 하다.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례적으로 “상당수의 외국인 직원을 해고했다”고 발표했다. MS는 학사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취업비자 H-1B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대표기업으로 꼽혀왔다.

    빌 게이츠 회장도 여러 차례 “미국이 기술산업 노동력을 충분히 확보하길 원한다면 H-1B 연간 할당량(quota)을 폐지해야 한다”며 의회를 설득한 바 있다. 그런 MS가 ‘외국인 직원 해고’를 자랑(?)한 것은 자국민의 일자리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조처로 해석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서 취득 경쟁이 치열하던 취업비자 H-1B가 올해는 남아도는 형국이다. 그동안에는 연방이민서비스국(USCIS)이 매년 4월1일부터 H-1B 접수를 시작하면 열흘도 되지 않아 6만5000개의 연간 할당량이 동이 나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8월 말 현재까지도 H-1B 할당량이 남아 있는 상태다.

    취업 기회 자체가 드물 뿐 아니라, 미국 기업들이 외국인 채용을 꺼리기 때문.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9 연례 이민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외국인 근로자 실업률은 약 10%로 자국민 실업률 9.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위기 이전과 반대되는 추세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도 취업 관문은 더욱 좁아졌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모(44) 씨는 “과거에는 프랑스인과 결혼하고 2년만 지나면 영주권이 나왔는데, 지금은 4년이 지나야 한다”며 “이처럼 결혼이민조차 통제하는데 하물며 외국인의 취업 가능성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영국에 유학 중인 최모(28) 씨는 “세계적인 명문 옥스퍼드대를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취업연수팀에 따르면, 2007년 일본 취업연수생의 취업률은 75%였지만 2008년에는 41%로 떨어졌다. 취업연수팀 일본담당 박성희 과장은 “올해는 상황이 더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300만~350만 엔대의 초임 연봉을 낮춰야 그나마 취업 가능성이 열리는 형편”이라고 일본 채용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귀국 유학생 급증 ‘취업전쟁’ 가세

    5월 뉴욕 컬럼비아대 MBA 과정을 졸업한 송기영(31) 씨는 최근 서울 여의도의 사모펀드 회사에 취직했다. 외국계 전략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유학을 떠난 2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월가의 금융맨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월가 사정은 너무 나빴다.

    “MBA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직장 찾기에 나서요. 저도 2007년 11월부터 인턴 채용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전인데도 조짐이 좋지 않았어요. 인턴으로 채용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취소하는 사례도 많았고, 2008년 여름부터는 아예 채용공고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월가 인턴십을 구하지 못해 2008년 여름방학 때 현재 채용된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정규직을 제의받아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송씨는 “최종면접까지 간 월가의 금융회사 중에는 현재 망한 회사도 있다”며 “원하던 업종의 회사에 취업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털어놨다. 송씨처럼 취업이 확정된 상태에서 귀국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유학생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로 귀국해 ‘취업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취업·인사정보 사이트 인크루트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 대학 출신 구직자들의 신규 이력서 등록건수가 최근 들어 급증했다.

    올 2분기 등록건수는 599건으로, 전년 동기(409건) 대비 46%나 증가한 것. 북미(50%), 유럽 및 오세아니아(41%), 아시아(34%) 순으로 등록건수 증가율이 높아 선진국 유학생일수록 현지 취업이 더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미국 뉴욕의 패션회사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는 박모(36) 씨는 “여덟 군데 이력서를 제출해 한 군데에서 합격한 나는 정말 잘된 경우”라며 다행스러워했다. 물론 그도 학생비자로 일할 수 있는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정규직을 구해 취업비자를 받지 못하면 미국을 떠나야 한다.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제출하고도 인터뷰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유학생들이 부지기수예요. 불법이지만 무급으로 인턴을 채용하려는 회사도 많고요. 그런데 그런 자리를 놓고도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취업에 실패하거나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돼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이 많다 보니,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의 월세도 많이 내렸어요. 룸메이트 구한다는 광고물도 엄청나고요.”

    취업 빙하기 글로벌 채용시장 노려라
    그러잖아도 언어와 비자 문제로 어려운 해외 취업이 글로벌 경기침체가 낳은 ‘일자리 보호주의’ 때문에 더욱 힘들어진 상황이다. 해외 취업은 전 세계 청년들이 더 이상 넘봐서는 안 될 성역(聖域)이 되고 만 것일까. 이런 우문(愚問)에 OECD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주 근로자에 대한 각국의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OECD는 2009 연례 이민보고서에서 최근 세계 각국이 외국 출신 근로자들의 이주를 막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장기적 관점에서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실제 영국의 경우 1997년 이후 늘어난 일자리의 70% 이상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워왔다. 세계 각국 정부도 지금이야 사정이 좋지 않지만, 해외 인재가 자국에 ‘수혈’될 필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호주 이민당국은 8월 언론을 통해 “최근 경기침체로 외국인 근로자 수가 감소했지만, 호주는 여전히 특정 분야에서 해외 인력을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특히 헬스케어 산업과 광산업에 종사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 캐나다 이민성 제이슨 케니 장관도 최근 “정부는 외국인 숙련노동자가 캐나다 노동시장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강한 캐나다’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좀더 빠르게 캐나다 고용주는 인력 공백을 채우고, 외국인 근로자는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로드맵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론 해외 인재 ‘수혈’ 확대

    국내 사정을 고려해도 한국 청년들의 해외 취업은 적극 독려할 일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는 청년 인력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데다 고급인재들에게도 걸맞은 대우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법무법인 한중의 문상일 미국변호사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어 이들 기업, 그리고 한국 시장과 거래하는 현지 회사들의 한국인 채용 욕구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학 대비 현지 취업 비율이 낮다는 점에서도 적극적인 해외 취업은 장려돼야 한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통계국에 따르면, 2008년 현재 한국 출신의 미국 유학생은 12만7185명(전체의 14.8%)으로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H-1B를 발급받은 한국 출신 취업자는 1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취업자(15만4726명)가 유학생(8만5067명)보다 2배가량 많은 인도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실적’이다.

    무역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듯, 노동력 또한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각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점점 더 인재의 국적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추세다. ‘주간동아’는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해외 취업에 성공한 한국 청년들을 만났다(33쪽 참조). 그리고 능력, 열정, 성실함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재는 해외 취업의 좁디좁은 문을 충분히 뚫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주간동아 대학생 인턴기자 신지나(경희대 언론정보학부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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