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0

2009.08.25

무대 위에서 만나는 ‘살인의 추억’

연극 ‘날 보러 와요’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9-08-19 1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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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위에서 만나는 ‘살인의 추억’
    연극 ‘날 보러 와요’는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으로, 미해결 상태로 종결된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다. 이 연극은 영화를 통해 줄거리를 알고 있는 관객들도 흥미롭게 관극할 수 있을 만큼 희곡이 탄탄하다.

    연극은 영화와 달리 경찰서의 원세트에서 진행되고 무대 밖 공간은 대사, 전화, 신문 등을 통해 그려진다. 그러나 극적인 긴박감은 떨어지지 않는다. 치밀하게 짜인 복선과 암시, 캐릭터의 뚜렷한 대비, 양념 같은 서브플롯(주로 인물들의 애정관계)의 희극적인 효과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치밀한 개연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듯 제시된 일들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요소였음이 절묘하게 밝혀진다. 김 형사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반복해서 듣는 행동은 처음엔 단지 그의 별난 취미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음악이 범인을 잡는 데 필요한 단서여서 집착했던 것이다. 서울대 영문과 출신이며 시인이라는 김 형사의 프로필도 미스 김과의 연애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코믹하고 가볍게 제시되지만, 극의 말미에 가면 범인의 심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그의 추론 능력이 그 문학적 감성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극의 전개 방식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듯 사실적이다. 매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타이핑 소리와 함께 날짜가 자막으로 제시되는데, 덕분에 관객들은 극에 참여하며 사건일지를 검토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러한 극적 장치는 관객들의 배경지식을 무대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이 연극에서는 인기 미국 드라마의 범죄수사 장면처럼 심증과 단서가 착착 들어맞는 쾌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범인 검거에서 마주치는 현실적인 장애요소들과 형사들의 무력감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것이 장점이 된다.

    형사, 기자, 용의자, 다방 아가씨 등 인물들의 캐릭터 또한 사실적이고 전형적이지만 진부하지 않다. 특히 앙숙인 김 형사와 조 형사는 상반된 성격에 어울리는 대조적인 수사 방법으로 재미를 더한다. 엘리트 김 형사는 FBI의 수사 관련 책을 읽으며 과학적으로 심리를 분석하는 반면, 주먹이 앞서는 조 형사는 범인이 무모증일 것이라는 둥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낸다(그중엔 쓸모 있는 아이디어도 있다).

    김 형사 역의 송새벽을 비롯한 배우들은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그러나 소통이 잘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면이 있었다. ‘날 보러 와요’는 미스터리, 공포, 코믹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면서 보기 드물게 잘 짜인 구조를 자랑하며 1996년 초연 이후 인기리에 리바이벌돼왔다. The Stage에서 9월20일까지. 문의 02-744-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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