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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돌무더기에도 나무를 심는 아이들

김소영 감독의 ‘나무 없는 산’

돌무더기에도 나무를 심는 아이들

돌무더기에도 나무를 심는 아이들

가난 때문에 엄마와 떨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두 자매의 이야기는 김소영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향수’에서 향수(nostalgia)를 “그곳이 어찌 됐는지 모르는 무지” 상태라고 말했다. 향수, 노스탤지어의 어원은 잃어버린 것의 고통이다.

향수는 떠난 자들의 마음에 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떠난 자들에게 떠나온 곳, 그러니까 고향은 아름다움으로만 남을 뿐 괴로움과 고통의 앙금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 자들은 고향의 아름다움만 회고한다.

회고할수록 추억은 방울방울 맺혀 더욱더 아름다워진다. 김소영 감독의 영화 ‘나무 없는 산’에 그려진 유년기도 그렇다.

여자 아이 두 명이 등장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큰아이와 미취학 아동인 둘째. 언니 진은 학교가 끝난 뒤 아이들과 딱지놀이를 하고 싶지만 옆집에 맡겨둔 동생을 돌보기 위해 집으로 달려간다. 천진난만하게 흙바닥을 뒤집고 노는 아이들이 진은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낮 동안 내내 일하고 돌아온 엄마는 피곤하기에 진이 100점을 받아와도 시큰둥하다. 다른 엄마들처럼 유난을 떨며 안아주지도, 그렇다고 선물을 사주지도 않는다. 대신 언제나 이런 말만 한다.

“진이는 언니니까 빈이를 잘 돌봐야 해, 알았지?”

여덟 살 소녀 진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다. 노는 것보다 언니로서의 의무가 먼저인 진이는 또래들처럼 울고 징징거리고 밥투정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나마도 형편 때문에 엄마와 떨어져 시골 고모 집에 맡겨지면서 아이들의 아동기는 달라진다. 보호받고 교육받고 이해받아야 할 시기가 아동기이건만, 진이는 이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못 먹는다. 아이들은 돼지저금통이 가득 찰 때면 돌아오겠노라는 엄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메뚜기를 잡는다. 조숙한 아이들은 메뚜기 판 돈을 꼬박꼬박 모아 저금통을 채워나간다.

그러면 약속은 지켜졌을까? 안타깝지만, 배부른 돼지저금통을 들고 정류장에서 아무리,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점입가경으로, 그나마 정이 든 고모 집에서 떠나 이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 가야 한단다. 화가 나고 슬픈 아이들은 그만 낙담한다. 자존심을 세우던 진이도 급기야 펑펑 울고 만다.

언뜻 들어보면 김 감독의 ‘나무 없는 산’은 제목의 느낌처럼 암담하고 슬픈 내용인 듯싶다. 그런데 영화의 힘은 이 암담한 세월에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는 감독의 시선에 있다. 절대로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과 달리, 외가에 맡겨진 아이들은 고모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애틋함을 경험한다. 귤 한 조각, 군고구마 등등 별것 아니지만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손길은 아이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따뜻함과 닮아 있으니 말이다. 외할머니가 칼국수를 미는 곁을 병아리처럼 지키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암담한 세월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일궈내는 감독의 시선을 대변한다.

김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 가운데서 아이들은 티없이 맑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은 연기 훈련을 받지 않은 비전문 배우라는 점에서 더 도드라진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은 불행이라는 추상적 인식이 아니라 매일 밤 잠드는 순간의 두려움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 슬픈 것이 아니라 엄마가 없어서 눈물이 난다. 김 감독은 이 하루하루의 순간을 잡아내면서 그래도 아이들이 커나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제목인 ‘나무 없는 산’은 역설적인 제목으로 받아들여진다. 진과 빈은 엄마를 기다리며 돌무더기에 죽은 나무를 심는다. 아이들은 나무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만 돌무더기에 심으면서 논다. 아이들은 그렇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커나간다. 외롭고 슬퍼도, 때론 울고 몸부림쳐도 아이들은 자라난다. 그게 바로 아이들의 힘이다.

고모 집, 할머니 집을 전전하면서 아이들이 입었던 옷은 나달나달해진다. 하지만 감독은 낡은 옷이 고통이나 불행은 아니라고 말한다. 고모가 밥을 주지 않으면 냉장고를 뒤져서 밥을 찾아 먹고 또래들이 죄다 학교에 가면 동생과 손잡고 옆집의 장애아와 놀면 된다.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은 희망이 무엇인지를 안다. 일본 작가 사카구치 안고의 말처럼, 아이들은 눌러도 자라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9.08.25 700호 (p110~110)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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