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0

2009.08.25

와! 도쿄에 18m 건담이 나타났다

TV 방영 30주년 기념 관광명소 도쿄만에 설치 … 가족 단위 건담 마니아 몰려 북새통

  • 도쿄=김동운 여행작가 www.dogguli.net

    입력2009-08-19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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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도쿄에 18m 건담이 나타났다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프라모델이 출시됐을 만큼 건담의 인기는 30년이 지나도록 식을 줄 모른다.

    도쿄의 관광명소 중 한 곳인 오다이바(お台場). 이 도쿄만의 인공섬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생겼다.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TV 방영 30주년을 기념하고자 철골구조에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높이 18m의 건담이 세워진 것이다.

    7월11일 첫 공개를 시작으로 16일 만에 누적 방문자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대형 건담의 인기는 절정이다. 일본 TV와 신문에서도 연일 오다이바 건담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일본 키덜트족 탄생의 시초

    ‘우주전함 야마토’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과 함께 1980, 9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이 ‘기동전사 건담’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로봇액션 만화이자, 주인공의 사회적 성장기를 다룬 이 작품은 로봇 완구 구매층이 학생에서 성인으로 확대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키덜트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여러 번 극장판으로 제작될 만큼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일본인의 건담 사랑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최근 오다이바에 다녀왔다. 건담은 자유의 여신상과 배 과학관 사이의 오다이바 시오카제(潮風) 공원에 마련된 전시장에 세워졌다.



    입구에서부터 18m 크기의 건담을 사진기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입구에서는 건담의 뒷모습만 보이는데도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조금씩 달라지는 건담의 자태를 찍는 사람이 많았다. 18m의 건담 신체 곳곳에서는 빛이 쏟아졌다. 눈, 손목, 어깨 등 50군데에서 발광하는데, 해가 진 저녁이면 주변 조명과 함께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또한 신체 20곳에서 연무가 뿜어져나와 더욱 신비스럽다. 건담을 찾아온 관광객 상당수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였다. 부모들은 자신과 함께 성장한 건담을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은 프라모델이 아닌 실제 크기의 건담을 눈으로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거운 표정을 한 모습들. 일본인의 유별난 건담 사랑을 취재하려고 금발의 백인이 마이크를 든 채 리포트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인의 건담 사랑은 아키하바라 같은 ‘B급 문화’ 발생지에서 더욱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의 프라모델 전문점 슈퍼모델러즈(Super Modelers) 입구에는 다름 아닌 건담 모형이 세워져 있다. 매장 한쪽에는 기계로 찍어낸 것이 아닌, 건담 마니아들이 직접 만든 건담 로봇들이 유리상자에 진열돼 있다.

    개인이 수제작한 건담은 크기나 완성도에 따라 적게는 몇십만원, 많게는 몇백만원을 호가한다. 또한 330㎡가 넘는 매장의 상당수를 건담 프라모델이 차지한다. 30년 동안 다양한 건담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선보였고, 이를 프라모델로 상품화한 제품이 상당수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와! 도쿄에 18m 건담이 나타났다

    도쿄 오다이바에 세워진 높이 18m의 건담이 조명과 연무로 연출된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다.

    후지오카현 후지오카시에는 건담 프라모델을 제작하는 반다이사 공장이 있다. 1980년의 1/144 건담을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생산된 프라모델 개수는 약 3억7000만개. 이 중 상당수가 건담 프라모델이다. 이 공장에서 신상품 기획부터 설계, 금형, 제작에 이르기까지 건담 프라모델 제작의 전 과정이 진행돼 마니아들 사이에서 일종의 성지(聖地)로 통한다.

    실제 매년 특정한 날에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이날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건담 마니아가 몰려든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담 프라모델 제작 모습을 보기 위해 그 먼 걸음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건담의 인기가 30년 동안이나 식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동전사 건담’을 만든 도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감독이 얼마 전 주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가 생각한 건담의 인기는 ‘어린이 대상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마징가류의 슈퍼로봇 홍수 속에서 건담은 좀 독특한 존재였다. 합체로봇이 군단을 이뤄 싸운다는 설정은 건담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

    또한 전쟁에서 선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전쟁에서 파생하는 인간 개개인의 갈등과 혼란이 건담을 여타 애니메이션과 확연히 구분지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건담은 20, 30대의 지지를 받았고, 여러 번의 재방송을 통해 최고 시청률 30%를 기록할 만큼 열풍을 일으켰다.

    고베시는 실물 크기 ‘철인 28호’로 도전장

    이런 건담의 인기를 시샘이라도 한 걸까? 얼마 전 간사이 고베시(神戶市)에서는 ‘철인 28호(鐵人 28號)’ 기공식이 열렸다. 잘 알려졌다시피 철인 28호는 요코야마 미쓰테루(橫山 光輝)의 인기 만화다. 일본의 쇼와 30년대(1955~64)를 배경으로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둘러싼 소년 탐정과 악인들의 공방을 다룬 이 작품도 원작의 인기를 바탕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비디오 게임 등을 선보이며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7월 말에 사전 제작된 철인 28호의 신체 부위 중 머리가 철인 28호가 세워질 고베시 나가타구(長田區)의 한 공원으로 운반됐다. 이곳에서 다른 부속품과의 조립을 마치고 18m 실물 크기로 10월 초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10월, 건담과 철인 28호의 인기 정면승부가 펼쳐질까? 아쉽게도 이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8월 말에 오다이바 건담의 무료 관람이 끝나기 때문이다. 이후 대형 건담이 어찌될 것인지는 아직 발표된 바 없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건담 사랑을 고려할 때 쉽사리 해체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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