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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記·충·천

아물지 않은 상처들

아물지 않은 상처들

벌써 22년 세월이 흘렀네요. 전국이 군부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불길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1987년 6월이 바로 어제 같은데 말입니다. 밤 12시면 술집이 문을 닫아 ‘강제금주’를 당하고, 술자리에서 말 한마디 편하게 못하던 그때에 비하면 요즘 우리 사회는 정말 ‘민주화’됐습니다.

24시간 아무 때나 술 마실 수 있고,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맘 놓고 소리를 질러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엄청난 변화는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 박종철 씨의 죽음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가 철통공안 통치의 상징이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난 거죠.

매년 6월이면 박씨의 이름이 전설처럼 등장합니다. 한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박씨의 선배 박종운 씨입니다. 1987년 경찰이 박씨를 끌고 가서 고문했던 이유가 바로 종운 씨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박씨의 선후배들은 종운 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박씨가 목숨을 잃어서 뿐이 아닙니다.

종운 씨의 이후 행보 때문입니다. 종운 씨는 현재 한나라당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때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과 운영위원을 맡았던 그는 2000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했습니다. 그는 2년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변절자라고 매도하지만,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반시장적, 반민주적 처사들을 극복하는 것과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종철이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믿는다”라고. 과연 그것이 한나라당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지만요.



아물지 않은 상처들
마음이 불편한 또 한 사람은 박씨의 학과 동기이자 절친한 여자친구로 알려진 조모 씨입니다. 박씨 사망 후 조씨는 휴학하고 잠적했습니다. 언론의 집요한 취재와 주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랍니다. 22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서울 강남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는 그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의 답은 상대방의 전후사정 상관없이 간단했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그리고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습니다. 아직도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주간동아 2009.07.14 694호 (p70~70)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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