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2009.07.14

‘쇄신의 칼’인가 장악의 수순인가

청와대 민정도 물먹은 천성관 검찰총장 인선 … 단계별 거센 인사태풍 예고

  • 최우열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

    입력2009-07-08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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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신의 칼’인가 장악의 수순인가
    “설마…. 천성관 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지명된 게) 맞냐?” “그러면 대체 몇 명의 고검장이 나가야 되는 거냐?” “어, 정말 맞는 것 같다!”(6월2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기자실)

    “이건 검찰 쇄신이 아니라 뒤집어엎는 거다.” “고검장들이 MB의 우군인데 이런 식의 선택이 맞냐.” “쇄신론이 주요한 인선 배경이었던 것은 아니냐.”(같은 날 검찰 인사들과의 통화)

    이명박 대통령이 전임 검찰총장보다 사법시험 기수를 세 단계나 건너뛰어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사법시험 22회)을 새 총장으로 지명한 일요일 오후, 검찰 기자실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검찰 내부에서도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검찰은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또 한 번 혼란에 빠졌다. 이틀 뒤 검찰이 인사 청문회 준비단을 구성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모습이지만 이번 ‘깜짝’ 인사의 배경, 그리고 향후 검찰과 청와대의 관계 등을 두고 여느 인사 때보다도 많은 평가와 해석이 나오고 있다.

    MB 가려운 곳 확실히 긁어준 사람



    당초 권재진 서울고검장(20회)이 차기 검찰총장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권 고검장은 TK(대구·경북) 출신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변방’과 ‘중앙’을 오가며 리더십을 폭넓게 다졌다. 그만큼 검찰 내부에서 인품과 조직 장악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언론에서도 그가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동일한 TK에 경북고 출신이라는 점을 유일한 걸림돌로 꼽았을 정도다.

    청와대는 권 고검장과 문성우 대검 차장(21회), 이귀남 법무부 차관(22회), 천 지검장을 후보군에 올렸고, 권 고검장과 문 차장이 대통령에게 올라간 최종 후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6월20일 토요일 오후부터 내정자 발표가 있었던 일요일 오전까지 이 대통령은 극소수 인사들과 논의한 끝에 최종 후보 2인과 관계없이 천 지검장을 낙점했다. 이 ‘역전’ 과정은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민정수석실도 몰랐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청와대가 천 지검장을 선택한 핵심적인 이유는 ‘MBC PD수첩에 대한 수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권이 출범 이래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 촛불시위였고, 촛불시위를 대규모로 확산시킨 촉매제가 바로 MBC PD수첩의 광우병 위험성 관련 보도였다. 과장 왜곡보도 의혹에 대한 수사는 지난해 6월 시작됐지만, 제작진이 소환조사 및 자료제출을 계속 거부한 데다 수사팀 내부 이견까지 불거져 해를 넘겼다.

    ‘쇄신의 칼’인가 장악의 수순인가

    6월18일 서울중앙지검 정병두 1차장 검사가 광우병 관련 MBC PD수첩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천 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한 이후 제작진 체포 및 제작진의 e메일과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이뤄졌다. 결국 검찰은 6월18일 김은희 작가, 조능희 전 CP(책임프로듀서), 김보슬 PD 등 제작진 5명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광우병 위험성을 왜곡, 과장해서 보도한 PD수첩에 형사책임을 물은 것. 천 지검장은 ‘정권의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준 셈이다.

    천 지검장이 2008년 수원지검장에 재직할 때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처리했고, 2009년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하자마자 발생한 용산참사 사건에선 시위대에 화재 책임을 물은 반면, 경찰 측을 무혐의 처리했다. 천 지검장이 지휘한 일련의 공안사건들 또한 현 정부의 ‘코드’와 딱 맞아떨어졌다.

    천 지검장의 총장 지명에 대한 검찰 안과 밖의 해석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야당의 “공안통 검사 중용”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등 검찰 외부에선 “어찌 됐건 파격적인 인사였으며 검찰 쇄신 요구를 무마하거나 또는 부응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카드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검찰 쇄신론이 주요했다”면서도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여기엔 천 지검장의 재산문제를 비롯한 공무원으로서의 처신 관련 의혹, 조직에서의 신망 등을 의심하는 목소리 등이 섞여 있다. 이미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부터 천 지검장의 서울 강남의 고액 부동산 구입, 거액의 차용재산 문제 등이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천 지검장이 22회 ‘막차’로 고검장(서울중앙지검장은 고검장급)에 승진한 뒤 단 6개월 만에 두 개 기수 선배들을 물리치고 검찰총장에 오르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해친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20, 21회는 물론 천 지검장의 동기인 22회 고검장과 검사장들이 퇴임하면 10~12개 검사장급 이상의 자리가 비게 된다. 또 앞으로 있을 인사에서 좋은 보직의 고검장 자리에 승진하지 못하거나 아예 고검장 승진에서 누락된 23, 24회 인사들이 줄사퇴할 경우 검사장급은 최대 20자리까지 빈다.

    검찰 내부뿐 아니라 법조계 전체에서 “검찰의 인사 태풍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연쇄 작용으로 일선 지검 차장이 된 지 6개월밖에 안 된 27, 28회 검사들이 조기에 검사장 승진을 코앞에 두게 된 상황. 이 때문일까. 검찰 중간 간부들도 동요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치적 독립’ 과제 잘 수행할까

    무엇보다도 천 지검장 검찰총장 지명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과연 ‘천성관 호’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숙명적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우려는 청와대가 천 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지명한 것이 검찰 쇄신 의도인지, 아니면 검찰 장악 의도인지 하는 의심에서 나온다. 현 정권의 코드에 맞는 수사를 해온 ‘나이 어리고’ 사법시험 기수가 낮은 천 지검장을 파격적으로 임명해 검찰 수뇌부를 일거에 퇴진시킨 뒤, 청와대 입맛에 맞는 검찰 수뇌부를 새로 구성하는 게 아니냐는 것.

    물리적으로야 고검장과 일부 검사장들의 줄사퇴가 가시화하면서 인적 청산이 이뤄지겠지만, 그 청산이 ‘쇄신의 얼굴을 한 검찰 장악’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청와대의 의중을 벗어나 무리한 수사를 벌이다 회복할 수 없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더해진다. 그동안 통제가 안 되던 검찰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번 인사 배경에 깔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실 지난해 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이 직접 한 검찰인사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MB가 검찰을 싹 물갈이해 자기 검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 섞인 전망들 때문일까. 새 검찰총장이 될 천 지검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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