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2

2009.06.30

죽음, 그것은 쉼이자 축제!

한국 전통 상례문화 전시 ‘쉼박물관’에서 배우는 장례의 의미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9-06-26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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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그것은 쉼이자 축제!

    <B>1</B> 망자를 장지까지 운반하는 상여는 살아서 갖지 못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라는 의미에서 꽃, 용, 인물, 도깨비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약 100년 전 경상도 지방 것으로 추정되는 이 상여는 원래 박기옥 고문의 부부 침실이던 공간에 전시돼 있다. <br> <B>2</B> 요여. 육체가 아니라 영혼과 관련된 신주, 명기 등을 싣고 상여 앞에 가는 작은 가마. 시신을 매장한 후 혼은 요여를 타고 집으로 와 빈소에 머문다(작은사진).

    “나, 영정사진 하나 찍어줄 수 있을까요?”

    사진기자에게 뜻밖의 부탁을 한 사람은 한국 최초의 ‘전통 상례문화 박물관’인 ‘쉼박물관’의 박기옥(74) 고문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삶’임을 보여주는 ‘쉼박물관’의 설립자다운 부탁이었다.

    2007년 10월 서울 종로구 홍지동에 문을 연 ‘쉼박물관’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상례문화 관련 오브제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화여대 사학과 1회 출신인 박 고문은 젊은 시절부터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옛 물건을 수집해왔다.

    그리고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살림집을 고쳐 전통 상례문화에 관련된 물품을 전시하는 ‘쉼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죽음은 꽃상여 타고 기쁘게 쉬러 가는 것이라는 옛사람들의 철학을 그 이름에 담았다.

    죽음, 그것은 쉼이자 축제!

    <B>3</B> 장례를 알리는 부고장.<br><B>4</B> ‘쉼박물관’ 박기옥 설립자 겸 고문. 상여의 색감과 목각 장식의 조형미에 반해 상례물품을 수집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관장은 셋째딸 남은정 씨다.<bR><B>5</B> 상여를 장식하는 목각 인형. 물구나무를 선 자세가 유머러스하다.

    “한국에서 장례라고 하면 통곡을 하는 비극적인 의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상여 장식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재주 부리듯 물구나무를 서고 있지요?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동안 즐겁기를 바라는 뜻과 상여꾼들도 힘을 내라는 의미가 담겼죠. 영화 ‘축제’처럼 우리에게 장례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의 축제였어요.”



    유머러스한 상여, 아름다운 장식과 문양

    상여 장식이 이렇게 유머러스한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또 상여에 쓰인 문양과 색이 이렇게 다채로운지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처음 알았다.

    예전 부부 침실에 상여를 들여놓고, 욕실에 ‘도깨비방망이’ 등 우화와 관련된 조각들을 설치하고, 주방에는 명기를 전시한 박물관을 보면 죽음을 이야기하고 보는 것이 지금 살아 있다는 가장 강렬한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박 고문은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보며 느낀 심정을 ‘국민장 유감’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한 나라 대통령의 장례인데, 어느 나라 식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사람이 많아도 썰렁한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적 국민장 형식에 대해 논의가 필요해요.”

    박 고문에게 우리의 딜레마를 털어놓았다. 한편으로 ‘웰다잉’을 이야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죽음이란 말조차 입에 올리기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남편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것이 삶의 연장이란 확신을 갖게 됐어요. ‘웰다잉’이란 죽은 뒤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요즘 ‘쉼박물관’에서 ‘웰다잉’ 모임이 자주 열려요. ‘웰다잉’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걸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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