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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늙지 않는 욕구 … “나도 즐기고 싶다”

평균수명 79세 억눌린 ‘노년의 性’ … 체면과 편견 때문에 ‘쉬쉬’ 더 큰 문제

늙지 않는 욕구 … “나도 즐기고 싶다”

늙지 않는 욕구 … “나도 즐기고 싶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공원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릴 듯 후텁지근하던 6월2일 오전 기자는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을 찾았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사이에 가끔 외국인 관광객만 보일 뿐, 날씨 탓인지 공원은 한적했다.

“오늘 오후에 비가 온댔어. 우리는 비에 민감하거든. …그래? 그럼 저기 동문(東門)으로 가봐.”(그날 오후 서울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옆에 앉아 있던 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동문으로 가보란다. 연애 ‘고수’가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기자가 이날 이른바 ‘그들만의 공원’을 찾은 이유는 최근 경찰청의 ‘성폭력 범죄자 연령별 현황’ 자료를 보다가 든 궁금증과 의문 때문이다.

성폭력 가해자 가운데 61세 이상 노인이 2005년 486명에서 2008년 774명으로 37.2% 급증했고, 성폭력 피해자도 2005년 225명에서 2008년 329명으로 크게 늘어난 이유가 뭘까 하는. ‘점잖은 체면’ ‘편견’에 가려 금기시돼온 ‘실버’들의 욕망과 성범죄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쪽방촌’ 은밀한 성거래 … 성병 온상

정문(삼일문)을 나와 좌회전한 후 10m 정도 직진하자 공원 돌담길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나왔다. 동문까지 20여m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노인 전용 이발관과 거리 사진사가 눈에 띄었다. 부채, 돋보기, 등산화, 중고 디지털카메라, 손목시계 등을 파는 노점상이 줄을 이었고 품평과 흥정이 한창이었다. 동문 앞에는 할아버지 6명이 둘러앉아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고수’는 자리에 없었고, 기자가 취재 의도를 밝히자 대부분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들은 것처럼.

“젊은 사람이 더위를 먹었나. 점잖지 못하게…”라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왔다.

다행히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가 ‘조건부 반대’ 의견을 냈고, 기자는 곧장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래도 노인들 얘기를 들어주려고 왔으니 고맙지. 그럼 ‘하드’(아이스바)라도 먹으면서 할까.”

할아버지들에게서 본격적인 얘기를 듣기 전, 그들의 젊은 시절 활약상 한 소절씩을 들어야 했다. 일종의 자기소개라지만, 털썩 주저앉아야 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얘기대로라면 그들은 모두 한 시절을 풍미했던 ‘역전의 명수’다. 은행 지점장 출신에서부터 육군 대령, 부동산 중개인, 신문보급소장, 농부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60대부터 80대까지 나이는 달랐지만 ‘뒷방 늙은이’라는 서러움은 그들을 말동무로 만들었다.

“늙는다고 욕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카이. 여기 근처 단칸방에 혼자 사는 ‘할배’들도 그거(성욕) 때문에 콜라텍에 가고 공원에도 나오는 기라. 요즘 어디 칠십이 나이가?”

“아침마다 등산하고 점심 때 (공원에) 나오는 사람도 많아. 자식들 눈치 안 보려고.”

“‘악처가 열 효자보다 낫다’잖아. 그런데도 홀아비가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주책이라고 하니….”
“아, 그 김 ○○ 씨는 부인하고 별거했잖아. 연금을 받으니 돈 걱정도 안 하지. 그러니 복지관에서 (실버)미팅하면 그렇게 인기가 좋대.”

그들의 대화 속에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아쉬움과 내재(內在)된 유교적 도덕관이 뒤섞여 있었다. 평균수명 연장과 경제력 향상으로 ‘건강한 노인’이 늘고 있지만 성욕은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함께였다. ‘가난을 이기려고 일만 하다 보니 어느새 노인이 됐다’는 한 할아버지의 말에는 국가에 대한 원망도 실려 있었다.

‘야동순재’ 이해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늙지 않는 욕구 … “나도 즐기고 싶다”

1새로운 사랑과 30년을 함께 산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년의 욕망을 그린 독일 영화 ‘우리도 사랑한다’ 한 장면. 2.3각자 배우자와 사별한 뒤 운명처럼 만난 두 노인의 사랑을 담은 영화 ‘죽어도 좋아’ .

현재 평균 기대수명 79세(2009년 세계보건기구 통계), 2050년 세계 최고령국(기대수명 86세)이 예상되는 대한민국의 노인문제는 그렇게 사회문제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다시 탑골공원 동문. 지나가던 할아버지 두 명이 주제가 재미있다는 듯 패널(?)로 참석했다.

“그러니까 나라에서 건강한 노인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콜라텍이나 노인복지관 외에 갈 데가 어디 있어. 우리가 룸살롱에 가겠어?”
“○○는 쪽방을 얻어놓고 매일 콜라텍에서 할멈을 꽤서 데려간다지.”
“강간이라는 말도 있더라고. 그러니 ‘박카스 아줌마’가 장사하지.”
“김 영감은 박카스(아줌마)랑 (성관계를) 하고 성병 걸려서 (치료받는다고) 나한테 돈 빌리러 왔더라고.”

주로 혼자 있는 노인을 상대로 박카스(혹은 요구르트)를 사라고 건네면서 ‘데이트’를 제안하는 박카스 아줌마들은 그들에게는 익숙한 존재였다.
“돈의동 쪽방촌에는 아줌마들 방이 있어. 5000원도 받고 1만원도 받지. 매일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하는데, 어디 콘돔이 있나 씻을 데가 있나. 거긴 쥐도 많고….”

성병으로 병원을 찾는 61세 이상 노인들이 2002년 6557명에서 2006년 1만2509명으로 늘었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고는 결국 불법 성매매로 인한 감염이 주요인인 듯했다.
노인 성폭력 가해자가 3년 사이 37.2%가 급증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노인들의 성적 욕망을 터부시하고 음지에 머물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곳에서 잇따르는 ‘건강한 노인’들의 일탈.

“요즘 400만 노인들은 생물학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 능력도 있어서 예전 세대와 달리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성과 교제하는 기회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를 수용할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 노인들을 위해 공창(公娼)을 만들 수도 없고…. 대안은 오히려 그분(탑골공원 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경찰대 박정선 교수(범죄사회학)의 말처럼 할아버지들은 실제 사례자로서 저마다 대안을 내놨다.

“‘청춘 노인’들은 억눌린 욕망을 풀어야지, 그런데 갈 데는 없지. 어디 상담소에 전화하려고 해도 민망해서 말이야. 우리 동네에는 복지관도 없어.”

“노인 인구가 얼마고?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노인 성폭력은 사라질 기라. 말동무도 생기고, 경제도 살고.”

노년 부부는 ‘성 트러블’부터 풀어야

“우리끼리 얘기해봤자 소용없어. 사회 분위기는 바뀐 게 없으니까. 정부가 나서야지.”
“보건소에서도 성교육 같은 거 한다는데,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야지.”

역사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기를 두면서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할아버지들은 이날 토론(?) 내내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옛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생뚱맞은’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졌고 인터뷰를 마칠 때쯤에는 칼국수를 사주겠다며 기자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그들은 평범한 우리네 할아버지였다.

“60~70대 부부들을 상담하다 보면 각방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인은 젊을 때야 남편이 돈을 벌어오니 싫어도 성관계를 가졌지만, 은퇴 이후에는 관계를 피한다고 말한다. 노년기 부부의 불화는 대부분 남편의 성 욕구를 부인이 받아주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남편은 성적 불만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짜증만 낸다. 그런데 부인은 자식들 집에서 아기를 봐주거나 반찬을 해주면서 재미있게 생활한다. 노년의 남편은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이다. ‘박카스 아줌마’를 만날라치면 부인이 걸고넘어진다. 몸은 건강하니 노년의 남편들이 어떻게 하겠나. 황혼 별거와 이혼도 이 때문에 늘고 있다. 배우자가 생존해 있다면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할아버지 스스로도 가족에게 존경받을 행동을 해야 한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의 말이다. 그는 “‘성 트러블’은 당사자가 솔직히 얘기하고 함께 풀어야 하지만, 그동안 사회나 정부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플레이보이’지 창립자인 휴 헤프너(82)가 저택에서 20대 미녀들과 즐기는 모습이 방송되는 케이블TV를 보면서 부러워하고, 국내 시트콤에 등장했던 ‘야동순재’ 캐릭터에 배꼽 잡던 우리지만 유독 우리의 ‘미래 모습’에 대해서는 엄격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노인들의 성을 음지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09.06.16 690호 (p52~54)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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