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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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소의회제, 日 외부감사제 도입하자”

외국 사례에서 배우는 지방의회 개선책 … 의원 개개인 의식 변화도 절실

  •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2009-05-25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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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의 시작은 지방의회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요즘도 집행부의 장(長)을 직선으로 선출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지방의회 구성을 직선으로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지방의회 역시 헌법적으로,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자치단체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이자 자치입법기관, 주민대표기관이다.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주요 정책, 주민 부담과 관련한 사항, 지자체 운영에 관한 의사를 결정한다. 그리고 조례를 제정할 수 있고, 주민의 청원 처리 및 집행부 감시감독의 기능도 수행한다. 또한 지방의회는 주민과 지자체 간 갈등을 해결하는 중재자의 임무도 맡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방의회가 해온 기능에 대한 평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무능한 지방의회’라는 인식이 강하고, 유권자들도 대부분 자신이 어떤 지방의원에게 투표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방의회의 문제점을 모두 지방의원 개개인에게 돌리는 일은 문제의 단면만 보는 것이다. 지방의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미비한 제도, 파행적 운영의 문제들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선진 외국의 사례에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美, 10명 남짓한 의원이 수백만 주민 대표



    첫째, 지방의원 유급제는 소의회제도와 함께 운영돼야 한다. 2006년부터 실시된 유급제의 취지는 의회의 전문성 강화와 소의회제도 도입에 있었다. 미국의 경우 로스앤젤레스 15명, 샌프란시스코 11명, 시애틀 9명, 보스턴 9명, 샌디에이고 8명 등 인구 수백만명의 도시정부들이 소의회제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식 대의회제와 미국식 유급직을 겸비하던 일본도 1990년대 지방분권 개혁을 계기로 지방의회 유급직 및 소의회제로의 전환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현대 국가에서 국회, 그리고 지방의회의 권한이 법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적 의미에서 약화되고 있음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같은 대의회제는 결정 비용을 증가시켜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국회는 국회의원 선거구와 일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방의회를 소의회제로 전환하는 데 반대하는 실정이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와 지방의회의 역할분담이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간의 역할분담 또한 분명히 해야 한다. 지방의원 수를 줄여 인건비를 낮춘 만큼 해당 지자체의 대학 및 대학원 인재를 인턴으로 채용해 지역 인재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美 소의회제, 日 외부감사제 도입하자”
    둘째, 기초지방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해야 한다. 20세기 초 실시된 미국의 지방선거제도 개혁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주요 골자였다. 당시 지역에서 토호세력화한 정당 지도자들에게 과도한 영향력이 집중되고, 지방선거가 중앙 정치무대의 연장으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거 사례는 우리나라의 현재 정치 현실과 상당히 유사하다. 미국처럼 정당이 아닌 주민 중심의 지방선거를 치르려면 최소한 기초의원 선거에서만큼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의 시·읍·면에서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증가해 1998년 현재 80.8%에 이른다(표 참조).

    지방의회 인사권을 지방의회에

    셋째, 지방의회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외부감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영국과 일본은 외부감사제도를 도입해 독립적으로 지방의회를 감사하고 있다. 지방자치법을 일부 개정해 지방감사위원회를 지방의회 소속으로 두자는 일부의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지자체 중에는 집행부 수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모두 동일한 정당에 소속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집행부, 의회와는 독립된 외부감사위원회의 설치가 타당하다고 본다.

    넷째, 의회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한을 의회에 주는 것이 타당하다. 직위분류제의 인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에는 의회 전문직이 별도로 있어 의원들의 활동을 보좌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회 직원의 인사권한을 단체장이 갖고 있어 제대로 된 보좌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의회 인사권 독립을 위한 의회 전문직 신설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훌륭한 제도가 훌륭한 지방의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지방의원이 훌륭한 지방의회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지방의원 개개인의 의식 변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라고 하겠다.

    지방의회 희망 찾기

    의원 연수비 반납, 일자리 창출에 사용


    지방의원들의 비리와 자질 시비가 끊이지 않지만, 모든 지방의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지방의회상(像)을 정립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전남 곡성군의회는 지난 3월 어려운 지역경제 여건 등을 감안해 올해로 3년째 의원의 해외연수비 예산 1400만원을 전액 반납키로 했고, 경기도 김포시의회도 의원 8명(2054만원)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900만원)의 해외출장비 3000만원을 시에 반납해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계층 복지사업 등에 쓰도록 권고했다. 또 다른 일부 지방의회도 해외연수 자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의정비 동결 및 삭감 움직임도 확산되는 추세다. 전국 246개 지방의회 중 올해 의정비를 인상한 곳은 17.1%(42개)이고, 27.6%(68개)는 동결했으며 55.3%(136개)는 인하했다.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12개가 올해 지방의원 의정비를 지난해보다 삭감했으며, 15개 자치단체는 동결했다.

    그렇다면 지방의원들 스스로의 자정 노력과 양심 있는 의정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선출직인 지방의원에 대한 가장 민주적인 통제 방법은 ‘주민 통제’다. 미국에서는 유권자들이 시의원, 시장, 주(州) 상·하원의원, 주지사, 연방 상·하원의원이 하는 발언과 행동을 기억해뒀다가 그에 근거해 다음 선거에서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선출직 공무원이 민의에 반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자신들이 뽑은 지방의원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원 후보의 인품과 도덕성을 기준으로 지지 여부를 결정하기보다 정당을 보고 찍는 것이다.
    지방의원은 임기 중에 해외여행으로 돈을 낭비하든, 의정비 인상에 앞장서든, 의원으로서의 본분에 어긋나는 발언과 행동을 하든 정당의 줄만 잘 잡으면 또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권자를 무시하고 비윤리적 언행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방의회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유권자가 깨어나야 한다. 유권자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투표로 보여주는 주민 자치적 선거풍토를 국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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