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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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임명제, 중앙 입김에 휘둘렸다

지방선거는 ‘중앙 대리전’ … 인재 영입 차단, 정치 타락 부른 원인

  • 입력2009-05-25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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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임명제, 중앙 입김에 휘둘렸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

    정당공천제는 뜨거운 감자다. 지방자치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새로운 인재의 진출을 어렵게 하는 만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럼에도 후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제공, 비용 우위 및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들어봤다.

    [지방의원 정당공천 폐지 贊]

    4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06년 지방선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2005년 6월, 임시국회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이전까지 정당공천이 금지된 기초지방의회 의원 선거까지도 정당공천을 전면으로 허용하는 것이었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반대와 비판에도 개정된 법안에 따라 이듬해 5·31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그리고 그 폐해는 예상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드러났다. 지방정치는 실종되고 중앙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중앙정치의 의제인 부패정권 대(對) 무능정부 심판이라는 이분법이 선거판을 지배했다.

    주민의 일상적 삶을 챙기는 의제는 관심을 끌지 못했고 투표의 기준도 되지 않았다. 또한 공천 헌금을 비롯해 공천을 앞둔 지방정치인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문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지방의원, 그리고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은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방정치인의 임기 내내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에 의해 지방정치가 좌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회의원이 시장이나 군수에게 압력을 넣어 다음 총선에 유리하도록 예산 집행이나 업무 추진에 간섭한다. 주민이 아니라, 공천권을 쥔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에 드는 것이 정치적 운명을 좌우한다.

    그러다 보니 지난 3년간, 예정된 지방의회 회의가 국회의원 일정에 맞추기 위해 내팽개쳐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당공천은 사실상의 임명제로, 선거를 무의미한 것으로 추락시킨다.

    지역구 출신 의원이 예산집행 업무에 간섭

    사실상 임명제, 중앙 입김에 휘둘렸다

    여성 공천 비율 확대를 주장하는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소속 의원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국가에 따라 사정이 다르다.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미국처럼 억제하는 곳도 있다. 일본처럼 제도적으로는 허용했으되 실제로는 정당공천 여부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

    주민들이 정당공천 후보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논쟁 이후 일본 국민은 중앙정당에서 지명하는 지방정치인을 주민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방정치는 주민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정당공천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름 타당해 보인다. 정당이 책임을 지고 후보자를 내세우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돕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며, 정당정치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이 현실에서 타당성을 지니려면 정당이 유능한 인재를 공천하고, 공천을 받아 당선된 지방정치인이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며 주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선거 때마다 지역 당원이 급조되고, 정당의 의사결정이 지역구 국회의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당연히 책임정치는 실종되고 지방자치는 중앙정치인인 국회의원에게 종속된다.

    정당공천 후보가 되려는 사람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 공천권을 거머쥔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방선거뿐 아니라 당선된 지방정치인의 업무수행에도 압력을 미친다.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아야 하는 지방정치인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실현해야 하는 지방자치의 취지는 실종되고 오히려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것이다.

    정당공천제는 유능한 인재의 영입을 차단하기도 한다. 사실상의 정당공천권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이 잠재적 경쟁자인 유능한 인재보다는 ‘무능한 충복’을 공천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무능한 인사로 채워진 지역정당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독무대가 되며 무능하고 부패하게 된다. 지방정부로서도 유능한 지방정치인을 영입하지 못해 리더십에 치명적 손상을 입는다. 이러한 폐단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과점하는 지역주의 정치구도가 고착된 곳일수록 심하다.

    국민들 지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 시급

    정당공천은 지방자치만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치도 타락시킨다. 중앙정치인은 전국적인 현안에 매달리기보다는 지방의원과 시장, 군수를 수하에 두고 지역 경영에 골몰한다.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이나 시장, 군수 노릇을 하는 것이다. 중앙정치는 뒷전이다. 이래서는 중앙정치도 건강을 위협받는다.

    정당정치를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고 지방자치의 본질에도 부합하지 않는 정당공천제는 폐지돼야 한다. 적어도 한국의 정당이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평당원 중심으로 상향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정당공천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정당공천의 폐단이 단기간에 개선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과 맞지 않은 이론을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이 정당공천의 폐단을 우려해 이를 배제하자는 데 찬성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기반을 지역에 고착시키고, 잠재적인 정치적 경쟁자를 배제해 권력기반을 강화하려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을 버려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대부분의 국민이 지지하는 선거제도를 새로 도입할 것을 권한다. 어느 당에서 후보자를 공천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지방정치인의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중앙정치인에 빌붙어 눈치나 살피는 중앙정치인의 하수인을 선출할 것인지, 주민의 복리와 그들의 의사에 귀 기울이는 지방정치인을 선택할지는 유권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방의원 정당공천 폐지 反]

    책임정치 구현 위한 안전판
    정치적 성향과 정책 선호도 정보 제공 … 선거비용 절감 위해서도 필요

    사실상 임명제, 중앙 입김에 휘둘렸다

    4·29 재보궐 선거 공천후보자에 대한 면접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

    지방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또다시 정당공천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정당공천이 단체장 및 지방의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종속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각 지역의 시민활동가와 정치 지망생들도 지방의회 진출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한다.

    하지만 정당공천의 일부 문제점을 인정한다 해도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논의는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예측 가능한 문제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유권자들은 선거 때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최소한의 정보도 모른 채 투표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지방선거 때 상당수 유권자는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 이외의 후보자에 대해 그다지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언론의 관심도 광역단체장에 쏠리기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는 기초의회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광역의회 의원 후보들, 심지어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들도 확실히 구별해낼 수 있을 만큼 잘 알지 못한다.

    후보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투표장 갈 수도

    사실상 임명제, 중앙 입김에 휘둘렸다

    ‘밀실공천’‘내정공천’ 의혹을 둘러싸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반발, 시위를 벌이는 근우회.

    1991년 실시된 시군구의회, 시도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민주화 이후 첫 지방선거에서는 정당공천이 도입되지 않았다.

    당시 영남권에서는 1번 후보가, 호남권에서는 2번 후보, 충청권에서는 3번 후보가 더 많이 당선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유권자들이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이전 대선과 총선에서의 경험대로 그 지역 지배 정당의 번호를 투표한 결과다. 정당공천 폐지는 이처럼 유권자의 눈을 가리고 투표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크다.

    정당은 공천한 후보의 정치적 성향과 정책 선호도에 대한 정보를 유권자에게 제공해주는 기능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 정치에서 정당 간 이념적, 정책적 차별성이 커지면서 정당의 이런 특성은 좀더 분명해졌다.

    즉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정당들 간의 성격 차이를 유권자들이 쉽게 인식하게 된 만큼 정당공천은 후보자 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도 후보자 간 정책 성향의 차이를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1995년 전국 지방자치 동시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협상할 당시 민자당은 지방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를 주장했고 야당은 이에 극력 반대했다. 야당이 반대한 이유는 정당공천 없이 선거를 치르면 현역 단체장이 유리한 상황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현역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 가운데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정당공천 폐지는 바로 이들에게 선거에서 명백히 유리한 상황을 마련해줄 수 있다.

    정당공천 폐지로 생겨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선거비용과 관련된다. 정당공천이 배제되면 선거운동은 후보자 중심의 선거운동으로 진행될 것이다. 정당공천은 정당이라는 ‘간판’이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지만,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알리려면 필연적으로 비용이 든다.

    더욱이 정책적 차별성보다 후보자 개인을 부각하는 것이 선거운동에서 중요하다면 후보자의 개인 조직, 학연, 지연 등 1차적 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 수없이 봤듯이 1차적 연고가 중시되는 선거판은 혼탁해진다.

    정당공천의 문제는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당장 당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현이 불가능하더라도 인기 영합적인 공약을 내세우게 된다. 막상 당선되고 나면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혹은 당선된 뒤에 무능하거나 부패하다고 판명나는 경우도 있다. 지방정부의 살림이 망가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거나 중도에 사임하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당공천이라면 소속 정당에 ‘망가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선거라는 정치적 평가와 책임을 위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정당공천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정당공천 폐지는 유권자에게도 후보자에게도, 그리고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원칙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으로 인한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현재 제기되는 문제는 지역적으로 사실상 일당 지배의 형태를 갖는 폐쇄적인 정당경쟁 구조와 관련이 있다. 즉 지역주의 정당체계 아래서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다.

    정당 없는 민주주의 생각하기 어려워

    지방선거에서 실질적 경쟁이 이뤄지고, 협소한 대표성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지역 수준에서 정당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당법 조항 개정이 시급하다. 정당법 제3조는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 광역시, 도에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고 돼 있고, 제17조에는 ‘정당은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역주의 정당의 출현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항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규정은 시민사회 내의 자발적 결사조직이라는 정당의 결성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규제적인 조항이다. 지역 단위에서도 정당 결성을 손쉽게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민활동가나 정치 지망생들이 지역 지배 정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지방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지역 지배 정당의 국회의원과 지역 정치인들 간의 폐쇄적·위계적인 관계도 깰 수 있고, 나아가서는 민주화 이후 계속되는 지역주의 정당체계의 기반도 아래로부터 약화시킬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는 “현대사회에서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지방정치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kangwt@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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