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7

2009.05.26

황홀한 맛, 옛날 탕수육

  • 입력2009-05-20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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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홀한 맛, 옛날 탕수육
    예전의 중국집은 지금 같은 싸구려 음식점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방문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계 모임은 중국집에서 자녀 동반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 덕에 한 달에 한 번 중국집에서 포식하는 것이 내 유년기의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자장면은 기본으로 깔리는 것이고 탕수육 양장피 깐풍기 등 별미를 양껏 먹어볼 수 있었는데, 내게는 언제나 탕수육이 전략적 최우선 목표물이었다.

    소스에 버무려져 겉은 쫄깃달콤하며 속은 바삭고소한 튀김덩어리를 간장식초장에 푹 찍었다 먹는 맛은 황홀함 자체여서, 어른이 돼 돈을 벌면 하루 세 끼를 탕수육만으로 이어가리라 결심할 만큼 어린 내게 탕수육의 맛은 유혹적이었다.

    그러나 전에 언급한 것처럼 1980년대에 저급한 솜씨의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탕수육만 파는 저가 프랜차이즈까지 난립하는 바람에 가격경쟁에만 불이 붙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참담한 맛의 탕수육이다.

    케첩을 붓고 과일칵테일 통조림을 까 넣은 시큼들큼 텁텁한 소스에 밀가루와 소다를 넣어 부풀린 튀김덩어리들의 퍽퍽한 맛은 꿈에도 삼삼하게 떠오르는 옛날 탕수육과는 전혀 다른 저질음식의 표본이 됐다. 옛날 탕수육은 소스가 달콤하기만 해서 꼭 간장과 식초를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 났고, 전분과 달걀흰자만으로 옷을 입혀 튀긴 고기는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하며 소스를 흡수하면 쫄깃쫄깃해지는 화려한 변신이 가능한 고급요리였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나 탕수육을 처음 접해본 세대들에게는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할 것 같다. 옛날 탕수육은 이제 좀처럼 맛보기 힘든 귀한 음식이 되었기에 예전 맛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삼각지의 명화원(02-792-2696)이 옛날과 가까운 맛을 냈지만 조리사가 바뀌어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는 수준이 된 게 무척 아쉽다. 옛 맛에 가까운 탕수육을 내는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서울 신사동의 작은 화교 중국집인 대가방(02-544-6336)을 추천한다.

    작아서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힘든 불편함이 있지만 예전의 맛과 모양을 간직한 탕수육을 한 점 맛보고 나면 옛 추억이 왈칵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kr.blog.yahoo.com/igundown

    Gundown은 높은 조회 수와 신뢰도로 유명한 ‘건다운의 식유기’를 운영하는 ‘깐깐한’ 음식 전문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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