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7

2009.05.26

친박(親朴), 박 깨지는 소리?

‘김무성 카드’ 파문 뒤 친박 小계파 갈등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09-05-20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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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박(親朴),  박 깨지는 소리?

    4월6일 임시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왼쪽)와 친박계의 핵심인 김무성 의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당헌, 당규를 어겨가면서까지 그런 식으로 원내대표를 정하는 것에 나는 반대다.”

    “소위 친박(親朴)이라는 사람들이 당에서 발목을 잡은 게 뭐가 있느냐.”

    박근혜 전 대표의 ‘샌프란시스코 발언’으로 한나라당이 휘청거리고 있다. 여권 수뇌부가 화합책이라며 기껏 마련한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는 박 전 대표의 한마디에 그대로 폐기됐다. 그래도 성에 안 찼는지 박 전 대표는 귀국을 앞둔 기자간담회에서 주류세력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신기한 것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친이(親李) 핵심 인사들조차 일부를 제외하곤 강력한 반박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전 대표의 기세가 워낙 등등하기 때문인 듯하다. 정가에선 “과연 ‘파워풀 박근혜’다” “이명박-박근혜 연립정부를 방불케 한다” “박 전 대표에게 ‘정국 운영 거부권’이 있는 것 같다” 등의 말이 나왔다.

    ‘김무성 책임론’까지 등장



    박 전 대표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수행한 한 소장파 의원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받을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우리 측에 권한은 그다지 주지 않으면서 잘못될 경우 책임은 함께 지자는 것 아니냐. 원내대표 한 자리 던져놓고 그마저도 홍준표, 안상수 의원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사사건건 흔들 게 뻔하다.”

    그런데 이 같은 배경설명 뒤에 덧붙인 말이 의미심장하다.

    “김무성 의원도 잘못 처신했다. 박 전 대표의 말이 있기 전에 본인이 알아서 고사했어야 한다. 박 전 대표의 생각을 잘 알면서 자리 욕심을 못 버리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박 전 대표에게 부담을 주는 결과를 낳았다.”

    샌프란시스코 발언의 여파로 쇄신특위가 구성되고 지도부 교체를 위한 조기 전당대회론이 나오는 와중에 친박계 내부에선 이번 사태에 대해 ‘김무성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친박계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 듯한 이런 모습은 ‘김무성 카드’ 무산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원내대표 경선 구도가 짜이는 과정에서도 얼핏 비쳤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친이계의 안상수, 정의화 의원과 중립 성향의 황우여 의원은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로 친박 계열을 영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후보들에게 러브콜을 받은 친박 인사는 김성조, 이인기, 최경환, 진영 의원 등이다. 샌프란시스코 발언 직전까지만 해도 일부 조합은 거의 완성단계로 발표만 남겨둔 상태였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 거절을 ‘이번엔 참여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한 의원들이 줄줄이 포기해버렸다. 김성조 의원만 안상수 의원과 짝을 맺었다. 친박 진영에겐 ‘돌출 행동’ 같은 일이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선 “소나기는 피해 갈 것이지…”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시각도 있다. 한 친박 의원은 “김 의원의 경우, 사실 친박이라기보다 ‘친강재섭계’ 아니냐”며 거리를 뒀다. 선거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여서 크게 나눌 때 친박으로 치는 것이지, 실상은 강재섭 전 대표 계보라는 얘기다. 이는 친박 안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한 세력과 아웃사이드에서 겉돌다시피 한 그룹이 따로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18대 총선 공천문제를 둘러싼 내부 의견 조정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언론에서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언급되던 모 의원조차 “나는 비주류인 친박 진영에서도 비주류”라고 한탄했다.

    최근 들어 정국에 미치는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여전히 ‘차기 대권후보 0순위’로 위상을 높여나가자 친박 내부에서도 세력이 분화되는 구도가 확연히 느껴진다.

    초·재선 중심으로 새 이너서클 형성

    특히 대선후보 경선 당시 핵심 구실을 했던 중진 의원들은 요즘엔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를 적극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반면 18대 총선을 통해 새로 국회에 입문한 초선이나 재선 친박 의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너서클이 형성됐다. 이들 소장파는 “지금은 박 전 대표가 나서지 않는 게 이명박 정부를 돕는 길”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4·29 재·보궐 선거 때 경북 경주에서는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와 친박 무소속을 표방하는 정수성 후보가 맞붙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경북 출신 의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지만 굳이 친박 의원들에게는 경주에 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친박 의원이 슬며시 경주에 ‘잠입’했다. 당시 일부 의원은 정수성 후보를 찾아가거나 두 후보 모두에게 들렀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정종복 후보를 격려하고 돌아갔다. 정종복 후보가 당의 공천자이기도 하지만, 정수성 후보를 친박으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 친박 의원은 “진정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몸을 던질 사람과 단순히 개인의 정치 목표를 위해 친박을 표방하는 사람은 구별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박 전 대표는 계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친박 계열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친박에 대해 말할 때는 늘 “‘소위’ 친박이라는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에 계파는 분명히 존재한다. 또 친이와 함께 양대 계파를 형성하고 있는 친박 안에서도 친이와 마찬가지로 소(小)계파가 있다. 이번 김무성 의원의 일은 친박 내 소계파 사이에도 언제든 갈등이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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