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돌연변이 일회용품’의 섬뜩한 공포

조각가 타라 도노반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09-05-08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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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연변이 일회용품’의 섬뜩한 공포

    타라 도노반, 무제(2009), 부분

    미국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창의적인 사람에게 주는 ‘천재상’인‘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은 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상금을 줍니다. 그에 따르는 명예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익명의 추천을 받아 익명의 심사위원이 극비리에 선정하는 상이라, 매년 ‘뉴욕타임스’에 발표되는 수상자들에 대한 미국인의 관심이 지대하지요. 대학원 수업으로 정신없던 2008년, 조각가인 타라 도노반(Tara Donovan, 1969~)이 생물학자, 의사, 도시농부, 소설가, 인류학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뉴스에 강의실은 한동안 술렁거렸답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작가 척 클로스마저 “혼성모방 일색인 현대미술에서 누구의 작품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작품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대담하게도 그런 일을 저지른 이가 있으니, 바로 타라 도노반이다”라고 했는데요, 대체 어떤 작품을 한 작가이기에 미술계 안팎에서 이런 갈채를 받는 것일까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1년 가까이 전시된 그의 설치조각 ‘무제’(Untitled, 2007)는 관객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어요. 보통 조각이 바닥에 설치되는 것과 달리 그의 작품은 250x300m가 넘는 전시장 벽에 마치 증식하는 미생물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확대해놓은 듯한 모습으로 붙어 있었죠. 전시장 인공조명을 받아 아른아른 빛나는 것이 얇디얇은 은색 마일라(Mylar) 테이프를 일일이 말아 옆으로 붙여놓은 것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관객의 입은 떡 벌어지고 맙니다. 뿐만 아닙니다. 천장 가득 설치된 엷은 구름 혹은 안개 낀 둑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200만개의 흰색 빨대를 붙여놓은 것이라는 사실, 거대한 설경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이 실은 300만개의 스티로폼 컵을 쌓아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관객들은 그의 작품이 단순히 재료의 의외성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스티로폼 컵, 종이접시, 단추, 빨대, 이쑤시개, 스카치테이프 등 대량생산된 일회용품을 엄청난 양으로 쌓거나 이어붙인 작품은 원재료의 고유한 모양과 특징을 지니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어떤 풍경이나 생물체, 혹은 증식하는 세포를 닮아 있습니다. 작가는 “내 작품은 자연의 형태를 닮았다기보다 자연의 생태를 닮았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생물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개체를 번식시키듯,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일회용품이 무한대로 증식하는 풍경이다”라고 말합니다.

    생물의 성장과 번식이라는 자연법칙에 도전장을 내놓는 것이 고작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종이컵이라고 생각하면, 거대한 ‘소비주의’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돌연변이 풍경―절대로 쉽게 썩지 않을―에서 섬뜩한 공포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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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연변이 일회용품’의 섬뜩한 공포

    줄리안 오피 개인전(좌). 권부문 사진전 ‘북풍경’ (우).

    줄리안 오피 개인전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줄리안 오피의 첫 공식 한국 개인전. 줄리안 오피는 앤디 워홀 이후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주변 인물을 모델 삼아 픽토그램을 연상케 하는 뚜렷하고 단순한 선으로 묘사한다/ 5월31일까지/ 국제갤러리 신관/ 02-735-8449
    권부문 사진전 ‘북풍경’ ‘북풍경’은 권부문이 2008년 발표한 북극지방 풍경사진 시리즈에 붙인 제목이자, 그의 작품세계의 기저를 형성하는 태도다. ‘북’이 암시하는 추위, 고립, 침묵은 자연의 광활함 앞에서 체험하게 되는 자기 성찰의 내적 풍경이다/ 6월15일까지/ 부산 조현화랑/ 051-747-8853
    김형관 개인전 ‘Afterglow’ ‘Afterglow’는 해질 무렵 비치는 약한 햇빛 혹은 외부의 에너지 공급이 중단된 뒤에도 방출되는 빛을 말한다. ‘검은 그림’을 계속 그리는 김형관은 이번에도 여전히 대상이 잘 보이지 않는 그림을 통해 관람자에게 충실히 ‘볼 것’을 요구한다/ 5월31일까지/ 헤이리 갤러리소소/ 031-949-8154

    호경윤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www.sayh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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