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내가 퓨전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

  • 입력2009-05-08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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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퓨전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
    요즘 ‘한국음식의 국제화’ 얘기로 떠들썩하다. 영부인까지 나서는 마당이라 관련 방송 프로그램이며 한식 국제화 연구소도 우후죽순 쏟아지는데, 그 줄기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도 고유한 문화이기에 근본을 해치는 수준의 변화를 줘서는 안 된다. 우리 음식이 자랑스럽고 널리 알리고 싶다면 세련되고 상세한 알림 방식을 추구해야지, 이국적인 재료와 조리법을 첨가해서 외국인 입맛에 맞게 가공한 것을 우리 것입네 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일 같지 않다.

    국악을 세계화한다며 전자악기를 넣고, 서양음악의 음조에 랩까지 섞어 사이키 조명 아래서 연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 베트남, 태국을 보더라도 퓨전화에 치우치지 않고 본래 형식을 지켰기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정체성을 가진 음식의 국제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퓨전 음식이라면 질색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하는 퓨전 음식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퓨전이란 양쪽의 좋은 점을 모아 승화시킨 것이어야 하건만 도리어 단점만을 교묘히 섞어놓은 음식이 태반이다. 그리고 이렇게 단세포적인 상상력의 조합일 뿐임에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붙여놓고 대단한 것인 듯 찬사를 보내는 속물스런 추종자들의 행태 때문이기도 하다.



    국악과 양악의 퓨전을 시도하려면 섞는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각 음악을 습득해야 하듯, 퓨전 음식도 근본부터 제대로 배운 뒤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퓨전이 아닌 정통 한국음식으로 세계에 널리 알리고픈 훌륭한 음식이 적잖다. 광화문의 평안도만두집(02-723-6592)이 그중 하나. 작지만 깨끗하고, 질 좋은 식재료에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깔끔한 맛과 솜씨가 ‘이게 우리 음식의 깊은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감동을 선사한다. 만두에 보쌈, 전골까지 빠지는 게 없지만 특히나 여느 집들의 화학조미료와 설탕 범벅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김치말이 국수(사진)를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퓨전 음식 조리사와 업주들은 이 집을 꼭 방문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돈이 없어 못 가면 내가 꿔주고.

    kr.blog.yahoo.com/igundown

    Gundown은 높은 조회 수와 신뢰도로 유명한 ‘건다운의 식유기’를 운영하는 ‘깐깐한’ 음식 전문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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