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배고파 익힌 요리 솜씨로 밥상 차려내는 아이들

‘자식 덕 보기’ ①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05-08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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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파 익힌 요리 솜씨로 밥상 차려내는 아이들

    <B>1</B> 마을 아이들이 서로 고기를 굽겠다고 야단이다. 어른은 “잘한다”고 칭찬하며 받아먹으면 된다. <BR> <B>2</B> 온갖 쌈거리와 쌈장. 자식 덕 보기는 부모는 물론 아이 생명까지 북돋우는 교육이다.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우리 식구는 교육도 자급자족한다고 했다. 이는 아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배움이라면 아이 스스로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이 주인인 배움이다. 그럼 부모로서 할 일은? 한마디로 ‘자식 덕 보기’다. 작은애는 변성기가 오고 이마에 여드름이 나는 열다섯 사춘기, 큰애는 스물둘 청춘이다. 보통 부모라면 한창 자식 뒷바라지해야 할 때가 아닌가.

    부모로서 자식 덕 보는 이야기를 크게 몇 갈래로 나누자면 이렇다. 우선 자식 덕에 잘 먹는다. 아이들이 왕성하게 배우니 덩달아 부모도 자극을 받는다. 부부 사이가 점점 좋아진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부모 일에 힘이 돼준다. 아이들 덕에 부모 내면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고, 또 성장하는 기쁨을 누린다.

    사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적지 않은 부모도 공감하는 바다. 다만 우리 부부는 이를 좀더 적극적으로 느끼고, 일상에서 잘 살려가고자 할 뿐이다. 자식 덕 보기는 부모한테도 좋지만 자식한테는 더 좋다. 그 이유는 아이가 아주 쓸모 있는 존재라는 자각을 갖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쓸모 있는 존재라면, 점차 사회에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

    아이가 있어 먹는 덕 보는 부모들

    배고파 익힌 요리 솜씨로 밥상 차려내는 아이들

    <B>3</B> 온몸으로 무를 써는 작은아이. 집중과 몰입은 ‘지금 여기’에 충실할 때 가능하다. <BR> <B>4</B> 요리 교실을 마치고 아이들과 ‘열두 달 토끼밥상’ 출간 기념으로 찍은 사진. <BR> <B>5</B> 어린이 요리책 ‘열두 달 토끼밥상’의 한 장면.

    이야기가 지나치게 근본적인가. 좀더 풀어보자. 자식 덕 보기의 구체화를 위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자 하는 생명교육이다. 우리 부부가 지은 책 ‘아이들은 자연이다’는 생명교육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입시를 마음에 두지 않고 아이 자신이 잘 자라고자 하는 생명 본성을 살려가는 ‘살림의 교육’이기도 하다.



    무한경쟁 교육으로 숨 막히다 보면 ‘죽고 싶다’ 생각하는 아이가 적지 않다. 가족에게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면 갈 곳이 있을까. 이렇게 먼 앞날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공부 방식은 우리 세대의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피임법이 발달해서 자식을 선택하는 시대. 부모 자신이 좀더 솔직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식을 낳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가. 부모 자신이 좋으려고 낳는다.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부모가 더 행복하고, 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 이렇게 근본에 충실하다 보면 자식만 한 보물이 없다.

    이번 호는 여러 가지 자식 덕 중 먹는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반찬 하나라도 더 하게 되고, 영양도 신경 쓰게 된다. 아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그 덕을 보는 셈이다. 누구나 이를 느끼지만 아이에게 표현하는 부모는 적다. 아이 덕에 잘 먹는 걸 자급자족 관점에서 보면 그 영역이 엄청 넓다. 자라는 아이들은 먹성이 좋다. 내 고등학교 경험을 돌아봐도 그렇다.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 3교시만 끝나면 도시락을 까먹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 있다. 한동안 아내가 아이들 간식을 챙겨두고 밖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미처 챙기지 못하면 아이들이 냉장고를 뒤지며 먹을거리를 스스로 찾아 먹는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훨씬 잘 먹는다. 스스로 찾아 먹으니 더 맛나고, 배가 고플 때 먹으니 음식이 입에 달라붙는다. 그러다 큰애가 간식 대신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밖에서 일하는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배가 고팠단다. 처음에는 상추쌈 하나 준비할 때도 있었지만, 차츰 요리에도 눈을 뜨게 됐다.

    상추쌈이 맛있는 4가지 이유

    요리 실력이란 하루하루를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다 느껴진다. 그러나 슬슬 배가 고파질 때마다 슬렁슬렁 요리를 하다 보니 점점 실력이 늘고, 배우는 것도 많으며,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기도 한다. 밥상머리에서 음식에 대해 시끌벅적 대화를 나누다 눈에 번쩍 띄는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부부는 그런다.

    “야, 그거 재미있구나. 한번 글로 써보면 어떠니?”

    학교 다니면서 글쓰기를 싫어했던 아이 얼굴이 밝아진다. 자신에게 소중하고 기쁜 체험이라면 글도 잘 써지게 마련. 요리 실력이 좋아지는 만큼 글쓰기도 늘었다. 그렇게 쓴 글이 우리 식구만 보기가 아까워, 어린이 잡지에 요리 이야기를 연재하게 됐다. 그때가 만으로 열여섯 살 때. 사춘기 나이답게 잘 먹고, 글도 열심히 쓰고, 원고료로 자기 용돈도 버는 삶을 살며 성장했다.

    그렇게 3년을 연재하던 큰아이는 지난해 ‘맹물’이라는 필명으로 어린이 요리책 ‘열두 달 토끼밥상’을 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도록 만화가의 만화를 곁들여서. 이 책은, 인터넷 서점인 YES24에 올라온 서평을 읽어보면 자녀를 두고도 맞벌이를 해야 하는 부모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힘을 준다 한다. 부모가 자식 덕을 볼수록 자식은 사회에도 쓸모가 커질밖에.

    작은애는 제 누나와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봄이 무르익는 이맘때 쌈거리가 풍성하다. 상추, 솎음배추, 쑥갓, 취, 깻잎, 민들레잎…. 이 가운데 아이는 상추를 아주 좋아한다. 하도 맛나게 먹기에 이유를 물었다. 기다린 것처럼 대답이 줄줄 나온다.

    “우선 상추는요, 밥을 쌀 만한 크기라 좋아요.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요. 둘째로 상추는 향이나 맛이 강하지 않아 쌈맛을 즐길 수 있어요. 다른 맛을 살려주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배추는 가시가 있어 껄끄럽잖아요? 그런데 상추는 부드러워요.”

    그런데 아이들이 밥상을 차리면 제때 먹어줘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일하다 보면 어른이 아이보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잊을 때가 많다. 그럼 아이들이 여기저기 부모를 찾으러 다닌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어떨 때는 아이들 구박을 단단히 받는다. 제발 밥때가 되면 찾게 하지 말고 알아서 나타나라고. 정말 우리 부부는 눈치 없는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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