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4

2009.05.05

중국 엘리트 ‘新화교’가 몰려온다

고학력,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인력 상당수 … 양국서 영향력 키우는 ‘멀티플 베이스’ 전략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9-04-29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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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엘리트 ‘新화교’가 몰려온다
    LG하우시스 구매팀 동리(37) 과장은 한국 생활 12년째인 중국인이다. 중국 톈진(天津)의 명문 난카이(南開)대학을 졸업한 뒤 1997년 경북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LG에 입사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한국의 앞선 경제모델을 배우고 싶어 유학 왔다”는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한국 국적의 자녀 두 명을 뒀다.

    서울시청 마케팅담당관실의 리레이(29) 씨는 2003년 9월부터 서울에 살고 있다. 중국에서 명문대 순위 10위 안에 드는 화중(華中)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으로 유학 온 그는 언론정보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2006년 공무원이 됐다. 지금은 한국에 온 중국인들을 상대로 ‘코리아’를 홍보한다.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는 젊은 중국인이 늘고 있다. 이들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에 들어와 뿌리내리기 시작한 ‘중화인민공화국’ 출신이다. 학계에서는 이들을 기존의 화교와 구별하기 위해 ‘신(新)화교’라고 부른다.

    한남대 중국통상·경제학부 정상은 교수는 “구(舊)화교들이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고국을 떠나온 것과 달리, 신화교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다. 구화교들은 대만 국적을 갖고 있고 대부분 학력 수준이 낮아 중국집 같은 요식업이나 소규모 무역업에 종사한다. 반면, 신화교 중에는 고학력을 바탕으로 교수,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고 소개했다.

    광운대 교양학부 곡효운 교수도 1998년부터 한국에 사는 신화교다. 중국 한족인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조선족(재중 동포)을 제외한 중국인을 만나기 어려웠는데, 요새는 활동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올 5월 현재 57만3000여 명 거주

    신화교의 약진은 통계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의 수는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 한중수교 이전 195명에 불과하던 중국인(재중 동포를 포함한 중국 국적 등록 외국인)은 2004년 20만명, 2006년 30만명을 넘어서더니 2009년 3월 말 현재 57만3815명으로 60만명 고지를 넘본다. 이들 가운데 한족은 17만9794명으로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1970년대 3만명을 웃돌던 대만 국적자는 꾸준히 줄어 2만6693명에 머물고 있다. 신화교의 수가 구화교의 8배에 이르는 셈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단순 노동을 하는 비전문직 종사자지만, 직업의 전문성이나 연봉 면에서 내국인에 뒤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2월 말 기준으로 학원 강사, 연구원, 사무원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국내 체류 중국인 노동자 수는 4469명. 2000년 831명이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증가다. 재한 중국인 석·박사 유학생 출신 취업자들이 만든 ‘전한국재직중국학인연합회’ 측도 “대학 강사, 금융 및 마케팅 전문가 등 다양한 직종의 회원 200여 명이 가입해 활동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스스로를 ‘화교’가 아닌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구화교가 결혼 및 귀화 등을 통해 한국에 영구적인 생활기반을 마련한 데 반해, 신화교는 본국과의 네트워크를 놓지 않는다. 건국대 사학과 양필승 교수는 신화교가 구화교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이처럼 “한국과 중국 양국에 모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과거의 중국 이민자 중에는 문화혁명 같은 정치적 격변이 다시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에 피난처, 은신처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세계화와 초고속 성장으로 완전히 새로운 나라가 됐다. 중국 안에서의 기회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굳이 그런 기회까지 날릴 이유가 없다. 신화교들은 본토 국적을 유지한 채 우리나라에 장기 체류(Long Term Sojourn)함으로써 양쪽 모두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멀티플 베이스(Multiple Base) 전략’을 구사한다.”

    한양대 중문과 양세욱 연구교수는 “신화교들은 최근 영화배우 전지현이 화교인지 여부를 놓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륙에서 중화교육을 받고 자란 이들에게 중국 국적은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의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멀티플 베이스’ 전략은 한국 기업에도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전문성을 갖춘 신화교는 국내 기업의 영입 1순위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SK그룹. SK는 2002년 최초로 중국 현지에서 공채를 실시했고, 2005년부터는 중국 주요 대학을 대상으로 캠퍼스 리크루팅을 진행하는 등 규모를 확대했다. LG, 삼성 등 다른 대기업들도 해외 마케팅과 연구개발 등에 중국인 직원을 충원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인력 활용에 적극적

    중국 엘리트 ‘新화교’가 몰려온다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업계도 중국 인재 채용에 관심이 많다. 2006년부터 중국 증시의 영향력이 커지고 중국 펀드 투자자가 증가하자, 각 증권사의 리서치센터나 IB 부서는 앞다퉈 중국 전문 인력을 늘렸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IB(투자은행) 전문 인력 특별공채를 실시, 중국인 3명을 신규 채용했다.

    취업문이 넓어지면서 중국어와 영어는 물론, 한국어도 일정 수준 이상 구사하는 재한 중국인 유학생들은 ‘잠재적 신화교’로 평가받고 있다. 한중수교 첫해에 17명(재중 동포 포함)에 그치던 유학생 수는 1999년 1000명을 넘어선 뒤 가파르게 상승해 2005년 1만명을 돌파했고, 2009년 3월 말 현재 5만9695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전체 유학생 7만6522명 가운데 80%에 이르는 수치다.

    과거 구화교들은 갖은 차별에 시달리고 취업시장에서 소외되면서 생계를 위해 주로 ‘중국집’을 운영했다. 1972년 우리나라 화교의 77%가 ‘중국집’을 운영했을 정도. 화교들은 “우리 인생은 자장면 면발에 달려 있다”고 절규했다(‘차이나타운 없는 나라’/ 양필승·이정희 지음). 그러나 신화교가 부상하면서 이 같은 ‘화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 세계 각지의 차이나타운에도 새로운 활기가 돈다.

    인천대 무역학과 박정동 교수는 “신화교의 약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라면서 “화교가 일찌감치 동남아 경제의 주도 세력으로 자리잡은 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의 정치·문화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월가와 IT(정보기술) 산업에서 신화교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신화교 인력을 활용하려면 그들에게 ‘한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메리트를 선사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신화교는 지식, 경제력, 현지 언어 구사력 등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신화교 인력 활용에 적극적이다. 중국의 톱클래스 인재가 우리나라를 선택하게 하려면 장학금 및 인턴십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중국 국적을 가진 신화교들이 안정적으로 장기 체류할 수 있도록 비자 정책 또한 투자와 취업의 편의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해외 동포를 화인(華人·ethnic Chinese)과 화교(華僑·Chinese sojourners)로 분류한다. 화인은 부계(父系)주의 관점에서 부계의 조상이 중국 민족이지만 현지 국적을 취득해 중국 국적을 지니지 않은 집단, 화교는 중국 국적을 그대로 유지한 집단을 가리킨다. 구화교 가운데는 화인이 적지 않지만, 흔히 화교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 기사에서도 화인과 화교를 구별하지 않고 ‘화교’로 통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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