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0

2009.04.07

텃밭, 나만의 왕국 건설 절대 권력을 누리는 재미

  • 입력2009-04-03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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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 나만의 왕국 건설 절대 권력을 누리는 재미

    <b>1</b> 화분과 스티로폼 상자를 이용한 베란다 농사. 상추와 고추를 가꿔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b>2</b> 부추에 꽃이 핀 모습. 먹는 맛에서 가꾸고, 보고, 나누는 재미까지 누리게 된다. <b>3</b> “아저씨, 여기 좀 보세요. 수박이에요. 우리가 심었어요. 내 머리만 하지요?”

    ●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참살이 바람과 불황이 겹쳐 이제 텃밭은 하나의 시대흐름이 된 것 같다. 미국 백악관에서조차 얼마 전부터 대통령 가족이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단다. 그만큼 텃밭이 주는 매력이 많기 때문일 터다. 좀더 살펴보자.

    아무래도 그 매력의 첫째 이유는 먹을거리다. 갈수록 먹을거리가 불안해지는 세상이다. 내가 손수 하는 것만큼 믿을 수 있는 게 어디 있을까. 이렇게 직접 길러 먹으면 돈으로 셈할 수 없는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 둘째는 경작 본능.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키우고 가꾸고 싶은 본성이 있다. 도시 아파트에 살아도, 나이가 어려도 그 본성은 살아 있다.

    우리 큰아이가 열다섯이었을 때 있었던 이야기 하나. 그때 아이는 중학교를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서인지 자기만의 텃밭을 가꾸고 싶어했다. 텃밭이라고 해봐야 아이가 덮고 자는 이불 크기 정도. 여기에다가 상추, 쑥갓, 고추, 방울토마토… 골고루 심었다. 심심하면 자기 밭에 갔다가 상추 몇 장, 방울토마토 몇 알씩 따왔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아이가 밭 한 귀퉁이에 솟아난 풀조차 키우는 게 아닌가.

    돈으로 셈할 수 없는 풍성함 느끼는 곳

    그 풀은 다름 아니라 명아주였다. 그해 가을 명아주는 어른 키보다도 높이 자랐고, 줄기는 아기 손목만큼 굵었다. 늦가을에 아이는 이를 정성스럽게 거두고 갈무리한 다음 겨울에 틈틈이 다듬어 지팡이로 만들었다. 알고 보니 명아주 지팡이는 청려장(靑藜杖)이라 하며,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가벼워서 아주 고급이란다. 명아주 농사를 시작한 지 꼬박 1년이 되던 이듬해 5월, 외할아버지 생신날 선물로 가져갔다. 가꿔서 꼭 먹어야만 맛이 아니다. 텃밭은 이렇게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경작 본능을 실현해준다.



    셋째는 왕이 돼보는 대리 만족이다. 텃밭지기는 자기 밭에서만은 왕이다. 어떤 씨앗을 얼마만큼 뿌릴 것인지부터,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하면 죽이고 살리는 걸 마음대로 한다. 배게 심은 건 솎아내고, 모종은 원하는 자리에 배치한다. 빛깔 좋고 기운이 왕성한 놈들은 늦게까지 살려 꽃도 보고 씨앗도 거둔다.

    이렇게 작은 생명들 앞에서 텃밭지기는 절대 권력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사람한테 치이기 쉬운 팍팍한 세상에 텃밭은 위로와 휴식,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는 도시의 한 지인은 주 5일 경작 본능을 살린단다. 텃밭이 회사 옥상에 있어, 주말 농사가 아니라 아침에 출근하면서 잠깐 돌보고, 점심때 다시 돌본다.

    하지만 왕국이 너무 넓으면 감당이 안 된다. 풀이나 벌레와 같은 ‘외적’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곡식이나 흙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왕이 왕답자면 곡식은 물론 풀에 대해서도 품위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슬렁슬렁 하다 보면 힘이 커져 갈수록 왕국은 넓어지고, 그 안에서 숨 쉬는 생명은 슬근슬근 신비롭게 살아난다.

    1석4조의 텃밭 가꾸기로 ‘도시농업’ 실현

    마지막으로 텃밭 가꾸기의 장점으로 들고 싶은 건 일자리 창출이다. 사회적 수요가 많으면 그곳에는 일자리도 생기게 마련. 텃밭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거기에 따른 일꾼도 꾸준히 증가한다. 그런 일꾼 가운데 하나가 텃밭 가꾸기를 지도하는 교사다. 지금 자라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흙을 밟고 곡식을 돌볼 기회가 드물다. 그 아이들의 부모 역시 젊은 세대라 자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다 보니 아주 초보적인 교육조차 절실한 형편이다.

    텃밭 교사를 앞장서서 길러내기 시작한 단체가 전국귀농운동본부. 여기 정용수(61) 상임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2005년부터 도시농부학교를 꾸려오는데, 교육 장소가 좁을 만큼 많은 사람이 와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텃밭 보급을 특화하자고 처음으로 텃밭 교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곳에서 텃밭 교사를 요청하는 수요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민간단체만이 아니다. 서울시에서도 한다. 이름 하여 ‘도시농업지도사 양성과정’이다. 이를 알게 된 건 취재가 아니라 내 아내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강의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텃밭, 나만의 왕국 건설 절대 권력을 누리는 재미

    <b>4</b> 모종 기르기 실습 시간에 씨앗을 포트에 넣고 있다. <b>5</b> 경작 본능을 일깨우는 책들.

    ‘도시농업’이라는 말은 그 자체부터 큰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도시와 농업을 아우르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관련 일자리란 텃밭 교사만이 아니다. 채소를 직접 씨앗으로 길러 먹으니 씨앗 매출도 늘어난다. 또한 상추 한 포기라도 길러보면 환경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져, 자신이 가꿀 수 없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비싸더라도 돈을 아끼지 않으니 관련 매장도 늘어난다. 호미를 비롯한 소소한 농자재도 꾸준히 팔린다. 관련된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역시 늘어난다. 덩달아 출판도 활발하다. 여기에 경작 본능을 일깨우는 책 몇 권을 소개한다.

    도시농부들 이야기 안철환 지음 : ‘도시농업 전도사’인 저자가 여러 사람과 함께 텃밭을 일구며 겪는 경험담을 떠들썩하게 들려준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요시다 다로 지음 : 도시농업에 대한 시야를 넓고도 깊게 해주는 책. 자급자족으로 지속가능한 도시의 모델을 제시한다.

    텃밭백과 박원만 지음 : 직장 생활하면서도 10년 동안 도시 텃밭을 일구며 꼼꼼히 기록한 책.

    자연달력 제철밥상 장영란 지음 : 텃밭을 일구는 첫째 목적은 먹을거리. 자연 흐름에 맞춰 농사와 제철 먹을거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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