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9

2009.03.31

한 올의 절망… “아, 돌아버리겠다”

탈모로 불안·우울증 등 정신질환 양산 … 말 못하는 여성 탈모가 더 심각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03-27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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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올의 절망… “아, 돌아버리겠다”
    “중1 때 탈모가 시작돼 스물한 살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1 때부터 어머니가 권하는 약과 샴푸를 사용했는데 좋아지기는커녕 이젠 거의 머리가 훤하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차츰 멀어지면서 왕따가 돼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자는 척하고, 여름에도 모자를 눌러쓴 채 숨어다니고, 그것도 불안해 집에만 있는 생활을 하다 결국 학교를 자퇴했죠. 눈물을 삼켜가며 놀림을 참았지만 학교에는 정말 숨을 곳이 없었어요. 선생님들은 겉으로는 걱정해주는 척했지만 히죽히죽 웃으며 저를 놀렸습니다.

    자퇴한 뒤 머리에 주사 같은 걸 맞았는데 차도가 없어 치료를 그만뒀습니다. 집에도 있기가 미안해 가출했죠. 혼자 이 여관 저 여관, 그리고 친구 집을 전전하다 자살을 시도했는데 하필 경찰의 눈에 띄어 집으로 돌이왔습니다. 두문불출하며 지내다 최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또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11월에 군대 가게 된 거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150만원으로 모발이식술을 받아보고, 그것도 안 되면 정말로 죽을 생각입니다. 여러분, 모발이식 싸게 잘하는 곳 좀 알려주세요. 급해요.”

    인터넷 포털 네이버 ‘지식iN’에 한 청년이 올린 글이다. 꽃 피는 춘삼월. 하지만 자고 나면 우수수 머리카락이 빠지는 탈모인에겐 영원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이다. 이 청년의 글은 포털 사이트에 올라 있는 수십만 건의 탈모 고민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탈모로 인한 자살을 예고하는 글은 비일비재하다. 그런 글이 올라오면 누리꾼에게서 ‘그렇게 나약하게 살 거면 차라리 죽어라’는 욕을 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11월 입대 전까지 모발 라인을 회복하는 게 불가능하다. 150만원으로 모발이식을 모두 하기도 어렵지만 11월 전까지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탈모, 자살로 이어질 수도

    일반인은 ‘탈모가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탈모가 죽을 병도 아니고, 죽고 싶을 만큼 실연을 당한 것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왜 자살?’이냐는 반응이다. 정신병리학자들은 자살을 정신질환의 결과물로 본다.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평상심으론 견뎌내기 힘든 사건이나 경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 여러 원인에 의한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생기고 그것을 방치하면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



    탈모의 원인은 크게 유전적 요소와 호르몬 이상분비, 스트레스, 노화로 나뉜다. 남성 탈모는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크고, 여성 탈모는 유전 요인이 있는 여성 체내의 남성 호르몬이 탈모를 촉진하는 호르몬으로 변이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스트레스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탈모를 가속화하는 촉매제로만 여겨졌으나, 최근 직접적으로 탈모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독일 뤼벡대학 랄프 파우스 박사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신경전달물질인 P물질(Substance P)이 분비돼 털이 자라는 것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그는 또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머리카락의 상피세포가 증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어가는 현상도 발견했다.

    한 올의 절망… “아, 돌아버리겠다”

    탈모인에 대한 편견과 타박은 그들을 정신질환자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탈모 원인들을 탈모인이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재 의학기술은 탈모를 그 단계에서 정지시키고 어느 정도 호전되게 하는 약물만 나와 있을 뿐, 예전의 모습으로 단시간에 되돌릴 수 있는 명약과 의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탈모 부위가 작은 탈모인에겐 모발이식술이 대안이 되겠지만, 대머리들에겐 ‘타는 목마름’을 약간 해소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약이든 이식술이든 빠진 머리를 다시 나게 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고, 환자는 그 과정에서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탈모인에게 탈모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벽이자 덫이다. 인간은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 좌절하며 절망에 빠진다. 탈모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멸시는 내면적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이는 다시 탈모를 심화하고 가속화하는 악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많은 탈모인은 정신질환의 경계선에 선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들의 가슴은 썩어간다.

    2006년 대한피부과학회가 실시한 조사는 탈모인들이 탈모 때문에 얼마나 자존감이 훼손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탈모 남성 284명 중 85%가 ‘탈모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신경 쓰인다’고 응답했으며, 82%가 ‘탈모 때문에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이로 인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탈모에 대해 지적이나 놀림을 받아 신경 쓰인다’는 응답도 37%나 돼 탈모가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탈모관리 전문업체 ‘지토’가 20, 30대 탈모인 132명을 대상으로 ‘탈모와 정신적 장애’를 조사한 결과는 더욱 놀랍다. 대상자의 90% 이상이 “탈모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고, 그중 40% 이상이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 충동을 느낀다. 죽고 싶다”고 답한 사람도 10%나 됐다. 한 온라인 탈모 커뮤니티의 조사에 따르면 20대 탈모인 210명 중 77%가 “탈모 때문에 은둔, 출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탈모로 사회생활이나 연애에 지장을 받는다”는 답변은 92%에 이르렀다.

    혼자 고민하는 여성들 스트레스 더해

    실제 자살 사례도 있다. 2006년 3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이 목을 매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 그는 탈모 증세로 고민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왔는데도 취업이 되지 않자 탈모 때문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 2005년 3월에는 인천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이 투신자살했다. 친구들은 경찰 진술에서 그가 탈모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했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한 영화배우 이은주 씨의 경우, 경찰 조사결과 죽기 직전까지 심한 탈모 증세로 대인관계를 꺼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탈모로 인한 정신적 장애는 이처럼 남성보다 여성, 그리고 젊을수록 심각하다. 여성 탈모 환자는 남성 환자보다 턱없이 적을 듯하지만 그건 오래전 얘기다. 현재 국내 탈모인은 1000만명으로 매년 20~30%씩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통계는 없다. 증가하는 탈모 인구의 70%는 20, 30대이며 전체 탈모인의 30~40%가 여성 환자다(CNP차앤박 모발클리닉 자료). 탈모 치료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피부과 심우영 교수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내원한 남성 탈모 환자 중 80%가 20, 30대였고 여성 환자 수는 2000년 390명에서 2005년에는 1200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전체 환자 중 여성의 비율은 약 30%.

    외국 학회지에 발표된 논문들에 따르면 여성 탈모인은 남성보다 우울증 빈도가 훨씬 높은(55:3) 데 비해 남성 탈모인은 불안(78:41)과 공격성(22:3)이 높게 나타났다. 즉 여성들이 탈모에 대해 혼자 고민하다 정신질환을 만들어낸다면, 남성들은 조상 탓을 하거나 탈모인을 희화화하고 차별하는 사회에 화풀이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의 한 고시원에서 “세상이 날 무시한다”며 흉기를 휘둘러 6명을 살해한 정모(32) 씨도 극심한 탈모로 늘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다고 한다.

    중앙대 의대 용산병원 피부과가 국내 학회지에 발표한 ‘여성 탈모증의 정신의학적 특성 분석’ 논문은 여성 탈모인의 정신장애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여성 환자가 우울증이나 전환장애가 많고, 불안 증상을 흔히 호소하며 불안 수준이 높다. 이런 결과는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더 심각한 정신 병리를 보이고, 여성 탈모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정신과적 개입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현실에선 탈모인에 대한 ‘정신과적 개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많은 탈모인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실제 자살하는 탈모인이 생겨나지만 탈모 후유증에 의한 정신적 장애를 탈모와 함께 치료하려는 의지는 병원이나 탈모 환자 모두 박약하다. ‘주간동아’ 취재팀은 국내 빅4 대학병원(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아산병원)을 대상으로 탈모 치료의 정신과 협진 사례를 수집했으나 단 1건도 찾지 못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탈모 자체 치료에 급급한 상황에서 정신과 협진은 인력 사정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설사 환자에게 정신과 협진을 권한다 해도 시간과 금전적 부담으로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병원, 탈모로 인한 정신적 장애 방치

    이에 대해 개원가의 정신과 전문의는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탈모로 인한 정신적 장애가 치료해야 할 수준이 넘었다는 것에는 의료계가 쉽게 동의하지만, 그것에 대해 아는 탈모인은 거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탈모 때문에 자존감 훼손을 경험한 환자가 방문만으로도 범죄인 취급을 받는 정신과의 문턱을 넘는다는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인터넷 포털에 자살을 예고한 청년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모발이식술 잘하는 병원을 소개해달라’는 청년의 질의에 상세하게 대답한 한 피부과 전문의의 댓글에는 전체 탈모인이 정신 장애를 겪지 않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해답이 담겨 있다.

    “우선 탈모보다 님의 대인기피증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처지가 같은 탈모인 모임이나 탈모인에 대한 인식이 있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세요. 종교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모발이식보다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이 사회에 자신 있게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은데요.”

    ※ 이 기사의 취재에는 주간동아 인턴기자 최원주(연세대 의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원형탈모증

    학업 스트레스 소아 탈모 급증 부모도 함께 정신과 치료


    한 올의 절망… “아, 돌아버리겠다”
    머리카락의 일부가 원형으로 빠져 원형탈모증이라 불리는 탈모증이 있다. 유전과 호르몬 이상에 따른 일반 탈모와 달리 원형탈모증은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데, 탈모가 부차적으로 정신적 장애를 가져오는 데 반해 원형탈모증은 정신적 질환이 탈모의 원인이 된다.

    원형탈모증과 우울증 등 정신과적 증상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문들에 따르면 탈모인 환자군 대부분에서 불안, 우울증, 공격 성향, 공포증 등의 정신장애가 관찰됐다. 현재 각 병원에는 대인기피 증상이나 자신감 부족을 호소하는 원형탈모증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CNP차앤박 모발클리닉에 따르면 경기불황이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 원형탈모증 환자가 3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더욱이 국제중이다 특목고다 해서 사교육 열풍이 부는 최근 들어선 소아 원형탈모증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게 모발클리닉 종사자들의 얘기다. 이들의 원형탈모증을 분석해보면 원인이 대부분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 봄, 여름이 됐는데도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대부분 원형탈모증 환자라는 게 전문의들의 전언이다. 이런 경우엔 반드시 정신과의 협진이 이뤄져야 한다. 정밀검사를 해보면 부모에게서도 아이의 공부와 관련한 강박성 스트레스 증후군 같은 정식적 문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실제 개원가든 대학병원이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경우는 흔하다.

    현재 9세의 원형탈모증 환자를 정신과와 협진 치료 중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피부과 심우영 교수는 “소아 원형탈모증 환자 중 앞머리가 빠지거나 전부 빠진 경우 대인기피 증상, 자신감 부족 등으로 학교생활이 어려울 수 있다. 가발이나 모자를 쓰는 데 대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이럴 땐 정신과 치료를 해야 하는데, 외모에 민감하고 2차 성징이 오는 사춘기의 아이들은 우울증 치료가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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