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7

2009.03.17

조재현의 몰입 연기가 구해낸 인생극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9-03-12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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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현의 몰입 연기가 구해낸 인생극

    일찍 상처한 남편이 노인이 될 때까지 아내의 무덤에 찾아와 하소연을 늘어놓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

    유난히 배우들의 연기에 많이 의존하는 연극이 있다. 구조적인 탄탄함보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감동이나 재미를 주는 작품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다. ‘민들레 바람 되어’(박춘근 작, 김낙형 연출)는 소박한 유머와 잔잔한 슬픔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지만, 전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주제가 명확하지 않고, 대사와 플롯의 짜임새가 느슨해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조재현 안내상 정웅인 같은 연기파 배우들의 몰입 연기와 유머를 담당하고 있는 노부부의 위트 있는 대사가 극의 정서와 리듬감을 살려준다.

    내용을 보면, 마치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아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 드문드문 찾아와 나무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받듯, 일찍 상처한 남편이 조금씩 나이 든 모습으로 죽은 아내의 무덤에 와서 여러 가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극의 말미에 남편은 늙고 지친 모습으로 아내의 무덤에 찾아오는데, 그는 재혼한 아내가 떠나고 딸마저 결혼해버리자 외로움을 호소한다. 그러고는 어머니 품에 안긴 듯 아내의 무덤에 몸을 누이고 위안을 얻는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이 긴장감의 묘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대화가 설득력 없이 엇갈린다. 그리고 주인공 부부의 가장 큰 갈등이라는 것이 아내가 남기고 간 딸이 자신의 아이가 아님이 밝혀지는 것인데, 여기서는 진부한 ‘막장 드라마’의 포스를 느끼게 한다.

    조재현의 몰입 연기가 구해낸 인생극

    연기파 배우인 조재현 안내상 정웅인(왼쪽부터)이 주인공 역을 번갈아 맡으며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민들레는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지닌다. 이 작품에서는 가수 조용필이 노래했듯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 민들레’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나무와 풀이 있는 무덤가의 모습, 그리고 보이지는 않으나 끊임없이 언급되는 민들레의 이미지는 마치 유채화를 보는 듯한 서정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짧은 시간에 감쪽같이 나이가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조재현의 진정성 있는 연기는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다.



    그러나 전 인생을 아우르는 이야기임에도 깊이가 부족하고 피상적이어서 큰 감동으로 이어지기는 힘겨워 보인다. 사운드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는데, ‘꽃밭에서’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올 때는 노래방 반주를 듣는 듯했다. 조재현과 더불어 할머니 역으로 출연한 이지하의 감초 연기가 돋보인 반면 아내 역의 이승민은 꽃처럼 예쁜 외모에 비해 연기, 대사, 발성이 무르익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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