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7

2009.03.17

‘무지한’ 스승이 겪은 5학년 제자의 가짜 졸업식

  • 이기호 antigiho@hanmail.net

    입력2009-03-12 11:4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지난 주는 졸업 시즌이었다. 학교에 몸담고 있는 처지라 졸업 시즌이 되면 마음 한구석이 자동적으로 짠해지는데, 올해는 시절이 시절인지라 그 진폭이 더 가파르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춰 매고 웃는 낯으로 함께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영 그럴 자신이 없었다. 졸업생 대부분이 반백수(그래도 아르바이트는 어찌어찌하는 처지들이니까)로 쫓겨나다시피 학교를 떠나니, 그들을 가르치면서 월급까지 받아먹은 처지로선 자괴감을 애써 억누르려 해도 옆으로 삐죽빼죽 나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시절 탓만 하기엔 당장 닥쳐올 젊은 친구들의 등록금 대출 상환금이 가혹했고, 그들이 입을 정신적 내상의 흔적이 깊고도 짙어 보였다. ‘겁먹지 말고 너희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너희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그것이 새삼 말장난 같고 허황된 감상처럼 되어버렸으니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냥 현실적으로 학생 한 명 한 명의 ‘스펙’에 더 신경 써주고, 직업소개서 직원처럼 기업들에 인사나 다니는 게 맞지 않을까. 인문학적 교양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텝스나 자격증 특강 같은 것을 더 많이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한데 그것은 ‘가르침’일까 ‘안내’일까, 대학은 과연 ‘지식’을 주는 곳일까, ‘지성’을 키워주는 곳일까. 그런 생각이 졸업식 일주일 전부터 계속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찾아온 졸업식 당일. 행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여자 제자 한 명이 헐레벌떡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는 1학년 2학기 때 학사경고를 맞아 이번에 동기들과 함께 졸업하지 못하는, 속칭 ‘5학년’에 진급하는 학생이었다. 한데 그녀는 동기들과 똑같이 졸업 가운을 입고, 하얀 스카프까지 목에 두르고 있었다.

    “선생님,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꼭 좀 들어주셔야 해요, 네?”



    그 친구의 말인즉슨,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당연 당신의 딸이 이번에 졸업할 것이라 알고, 지금 막 올라오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딸을 4년 동안 가르쳐준 선생님을 만나뵙고 인사드리겠다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더러 가짜 졸업식을 도와달라는 거지?”

    “네. 아버지는 제가 이번에 졸업하지 못하는 걸 알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지도 몰라요.”

    나는 좀 난감했다. 그래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기에 미리 좀 잘하지!”

    “에이, 선생님도…. 지난번에 잘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고 보니 나는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시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1학년 2학기 무렵, 강의에는 들어오지 않고 도서관 열람석에 앉아 ‘쓸모없는 지식’만 읽어댔던 그 친구는, 그 시절이 지난 뒤 이전보다 감수성이 한 뼘 정도 더 자랐다. 나는 그것 또한 소중한 것이라고 종종 그 친구와, 그 친구 동기들에게 말해주었다.

    말을 그렇게 해버렸으니 어쩌나. 난 할 수 없이 그 친구의 공범이 되어, 꽃무늬 넥타이를 매고 올라온 부모님 앞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말을 건넸다.

    “훌륭한 따님을 두셨습니다. 영특하고 성실해서 앞으로 사회생활도 잘할 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자의 아버지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아이고, 다 선상님 덕분이죠. 얘가 매번 장학금을 탄 것도 선상님이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나는 잠깐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기론 그 친구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제자는 황급히 내 시선을 피했고 나는 “하하하, 제가 뭘…” 하며 말끝을 흐렸다.

    ‘배움 짧은’ 제자 아버지의 교훈

    함께 사진 찍고 인사말이나 해주면 끝날 줄 알았던 제자의 가짜 졸업식은, 그러나 부모님의 반강제적인 떠밀림으로 점심식사 자리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선상님께 따슨 밥 한 끼’ 대접하지 않고는 못 가겠다는, 늙은이 두 번 걸음 하게 하려면 마음대로 하시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넘어간 것이었다.

    그렇게 학교 앞 낙지볶음집에 자리를 잡은 나와 제자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숟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면구스러움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으니, ‘와구와구’ 삼켜댔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제자의 어머니는 ‘에구, 우리 선상님 시장하셨나 보네. 여기 밥 한 공기 더 줘요’라고 말해, 나를 다시 한 번 절망에 빠뜨렸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난 후, 제자의 아버지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에구, 이놈이 턱, 취직돼야지 선상님 마음도 편하실 터인데…. 아비로서 선상님 뵐 낯이 없네요.”

    가뜩이나 소화되지 않던 음식이 명치끝에 턱, 한꺼번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면목이 없지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이놈이 지금은 취직을 못해서 이러고 있지만, 곧 지 밥벌이는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선상님께서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지가 배고프면 공사장 식당에라도 취직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제자의 아버지는 남의 집 자식 이야기하듯, 무심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제가 선상님보다 배움은 짧지만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말입니다, 그게 다 한순간이더라, 이 말씀이지요. 사람 나이가 예순이 되면 가방끈이 기나 짧으나 똑같아지고, 칠순이 되면 돈이 많거나 적거나 다 똑같아지는 법이지요. 그러니 그것들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 이 말씀입니다.”

    제자의 아버지는 반주로 나온 소주를 반 병 가까이 혼자 마시면서 얘기했다.

    “한데 그게 최고라고 어른들이 얘기하니까 이놈들이 불안해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 우리 잘못이지요.”

    제자의 어머니는 자꾸 제자 아버지의 무릎을 탁탁 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제자의 아버지는 꿋꿋하게 할 말을 다 했다.

    “얘를 대학에 보낸 건 공부하라고 보낸 거지, 취직하라고 보낸 게 아닙니다. 근데 이놈이 공부를 잘했으니 그러면 된 거 아닙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할 말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자의 부모님과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죄송했어요….”

    제자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네가 장학금을 받아? 그건 또 어떻게 한 거야?”

    “그냥 뭐… 알바를 열심히 했죠.”

    나는 제자의 마음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아 조금 울적해졌다.

    “그래, 이제 어쩔 거야?”

    “어쩌긴요? 다음 학기 다니고 졸업해야죠.”

    “아니, 내 말은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쩔 거냐고?”

    “계속 시를 써봐야죠. 선생님도 새삼스럽게….”

    “시 쓰면 뭘 먹고 살래? 그게 돈이 안 되잖아?”

    나는 일부러 화난 척,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제자는 계속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이, 선생님도. 우리에겐 미니스톱도 있고, 롯데리아도 있고, 김밥천국도 있잖아요. 돈은 거기서 벌면 되죠, 뭐.”

    제자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생각했다. 대학은 과연 ‘지식’을 가르치는 곳인가, ‘지성’을 가르치는 곳인가. 선생은 가르치는 존재인가, 배우는 존재인가. 나는 정말이지 점점 ‘무지한 스승’이 돼가는 것 같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