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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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안 마시고 살기 어려운 대한민국 88만원 세대

노영석 감독의 ‘낮술’

  •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입력2009-02-11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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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안 마시고 살기 어려운 대한민국 88만원 세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낮술’은 이미 1년 동안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지난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영화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낮술 봤어?” 그리고 모두들 낮술 한잔씩을 ‘땡기러’ 갔다.

    전주영화제 이후 ‘낮술’은 ‘나름’ 세계를 돌았다.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서는 특별언급상과 넷팩상을 받았으며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그리스 테살로니키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오히려 이번 국내 개봉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 ‘낮술’은 낮술에 대한 얘기지만 주인공이 꼭 낮술만 먹는 것은 아니다. 낮술도 먹고 밤술도 먹으며 오전 오후 가리지 않고 엄청 마셔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술을 먹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일이 꼬이는 데다 생각해보면 딱히 술 마시는 거 외엔 할 일도 없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인공은 이 시대 청년실업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공기가 왠지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술자리다. 주인공 혁진(송삼동 분)은 얼마 전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실의에 빠져 있다. 술자리는 그를 위해 기상(탁성준 분)을 포함해 친구들이 마련해준 것이다. 혁진의 실연을 농담 삼아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혁진에게 기분도 풀 겸 다음 날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정선에 도착한 사람은 혁진 혼자뿐이다. 친구들 모두 술에 곯아떨어져 운신조차 어려웠기 때문. 그렇게 혁진의 홀로 여행은 시작된다.

    술 안 마시고 살기 어려운 대한민국 88만원 세대

    서글프면서도 코믹한 영화 ‘낮술’ 의 한장면

    시작부터 술자리 … 강원도 여행서 좌충우돌



    정선과 경포대를 오가는 여행에서 혁진이 ‘당하는’ 일은 기구하다 못해 코믹하다. 세상엔 별의별 일이 다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자신한테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그 해괴한 일들이 한꺼번에 터질 때가 있다. 이번이 딱 그런 경우다.

    펜션에서 우연히 만난 묘령의 아가씨는 혁진에게 최대의 굴욕을 선사한다. 떠난 여자를 잊으려고 애쓰는 척하지만, 사실은 여자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혁진은 여지없이 낭패를 당한다.

    버스에서 만난, 약간 ‘맛이 간 듯한’ 누나뻘 되는 여자에게서도 혁진은 비슷한 일을 당한다. 그녀는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혁진에게 두 가지 욕만 한다. ‘개XX’와 ‘씨X놈’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왜 이 여자에게 욕을 먹어야 하는지 혁진은 도통 알다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렵게 빼다가 결국 먹게 된 낮술로 또다시 취한 뒤 오줌을 싸는 혁진에게 여자가 다가와 말한다. “개XX. 씨X놈. 물건도 작은 게.” 그리고 그녀는 오줌을 누는 혁진의 등을 걷어찬다.

    혁진의 여행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우여곡절 끝에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트럭 운전사 때문에 빚어진다. 그와 술을 먹게 된 혁진은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이 남자, 아무래도 성정체성이 수상한 사람이다. 샤워하는 혁진에게 다가와 비누칠을 해주지 않나, 급기야 한 이부자리에서 자고 있는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소스라치게 놀라 방 밖으로 빠져나와 친구 기상에게 SOS 전화를 하는 혁진의 모습이 안쓰럽다. 하지만 재미있다. 결과는? 다시 난국이다. 그런 혁진을 뒤에서 훔쳐본 트럭 운전사는 아침에 그를 버리고 떠난다. 이런 말을 하면서. “XX야, 너 세상 그렇게 살지 마!”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교감을 나눌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어디까지가 호의이고 어디부터가 적의인지를 구별하는 일이다. 세상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그 균형을 맞추는 일에 실수를 범하기 쉽다. 주인공 혁진이 뜻하지 않게 강원도 여행을 다니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곤경을 겪는 건 그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자기 안에 자기를 가둔 상태에서,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과의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은 세상대로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갈 뿐이며 나는 그 일환의 조그만 구성체일 따름이다. 혁진이 눈치채지 못하는 건 바로 그 점이다. 세상의 운행 궤도를 알지 못하면 늘 당하고 산다.

    영화 ‘낮술’은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꽤나 서글픈 구석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혁진으로 대표되는 이 사회 젊은이들의 ‘할 일 없음’이 한눈으로 목격되기 때문이다. 그건 펜션에서 만난 여자에게 혁진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아, 뭐… 대학생은 아니고요. 졸업은 했는데요, 직업이요? 직업이라기보다는 아버지 사업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여자가 대답한다. “아이, 오빠 엄청 부잔가봐.” 그렇다면 그는 여자의 생각대로 부잣집 아들일까. 과연 그럴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혁진은 취업을 하지 못한 이 시대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일 뿐이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일할 곳을 찾지 못하는 세대. 사랑했던 여자든 일탈의 욕망으로 만나게 되는 여자에게서든, 정선에서든 경포대에서든,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든 그 어느 곳에도 쉽게 정착할 수 없는 세대. 그래서 낮에도 언제든지 술을 마실 수 있는 세대. 혁진은 안타깝게도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무기력증과 무능함에 빠져 살아가는 세대일 뿐이다. 영화는 한 젊은이의 좌충우돌 여행담으로 얘기를 채워가는 척, 에둘러서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학을 논한다.

    제작비 단돈 1000만원, 독립영화 새 이정표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낮술을 ‘땡기는’ 것은 영화 속 낮술이 맛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우리 역시 비슷한 처지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기에 웃음이 있다 해도 그건 냉소와 조소에 가까운 것이다. 이 영화에 관객들의 ‘조용한 열광’이 이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혼자서 연출, 촬영, 편집, 음악 등 완벽하게 ‘원 맨 밴드’ 형식으로 이 영화를 만든 노영석 감독의 결기가 돋보인다. 제작비는 단돈 1000만원. 저예산 독립영화인들에게는 큰돈이지만 상업영화 관점에서 보면 ‘가능하지 않은’ 제작비다. 1000만원의 돈으로 그 수십 배, 수백 배의 미학적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영화는 2009년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 이어 국내 영화계는 영화 ‘낮술’로 또 한 번 새로운 징조, 신호를 얻게 될 것이다. 그건 바로 관객들이 새로운 영화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다. 한때 한국 영화계는 이창동과 홍상수, 김기덕과 박찬욱, 김지운과 최동훈 등의 출현에 열광했다. 그 감독들을 가리켜 ‘뉴 코리안 시네마’의 기수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영화계를 흔든 것도 지난 10년의 일이다.

    이제 새로운 10년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새로운 작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노영석은 그 새로운 작가의 선두주자로 기록될 것이다. 모두들 ‘낮술’을 위해 건배. 한 잔씩 쭉 들이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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