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2

2009.02.10

강한 남자를 닮은 ‘보르도의 보석’

  • 조정용 ㈜비노킴즈 대표·고려대 강사

    입력2009-02-02 18: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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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남자를 닮은 ‘보르도의 보석’

    페트뤼스는 단번에 미각을 사로잡는 와인이다.

    페트뤼스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결혼할 때 등장해 갈채를 받았고, 미국 케네디 가문의 행사에도 자주 쓰이는 등 대서양을 넘나들며 사랑받는 보르도 와인이다. 1945년 이전까지는 무명의 양조장이던 페트뤼스가 이제 보르도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됐다.

    페트뤼스는 보르도 와인이지만 보르도 같지가 않다. 여러 품종을 혼합해 만드는 전통적 양조방법을 쓰지 않고 부르고뉴처럼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페트뤼스는 이렇듯 보르도 양조의 특성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보르도를 대표하는 역설적인 와인이다.

    사람들은 페트뤼스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비싸다는 건 안다. 어느 날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페트뤼스가 준비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열 일을 마다한다.

    메를로로만 양조했는데도 와인이 어찌 그리 힘찬지 마시는 사람마다 놀란다. 특히 빈티지가 좋은 페트뤼스는 수십 년 이상 숙성하면서 올곧은 질감에 감춰진 단단한 속을 드러내며 애호가들의 가슴을 흔들어댄다. 영화 ‘한니발’의 렉터 교수는 플루트 연주자에게서 떼어낸 췌장을 페트뤼스와 함께 서빙해 화제를 모았다.

    페트뤼스는 라틴어의 ‘페트루스(Petrus)’에 해당하는데, 이는 베드로와 통한다. 그래서인지 페트뤼스 레이블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수제자로 꼽히는 베드로가 오른손으로 열쇠를 쥐고 있다. 그 열쇠는 천국의 열쇠를 상징한다. 노란 바탕 붉은 글씨의 베드로 한 잔에 최고 와인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페트뤼스의 비밀은 기실 포도밭에 있다. 마을 대부분이 자갈이나 모래 토양인 데 반해 페트뤼스는 진흙으로 된 단춧구멍 같은 표토층이 특징이며, 그 아래에 자갈 토양이 있다. 또 그 아래엔 철분이 풍부한 토양층이 형성돼 있다. 총체적으로 배수에 능한 구조이며, 철분 함유량이 높고 토양 빛깔이 검은 편이라 자갈과 모래가 표면을 이룬 인근 포도밭과 구별된다.

    포도가 골고루 잘 익지 못한 해에 나온 와인을 가리켜 ‘빈티지가 좋지 않다’고 한다. 빈티지가 별로일 때 생산량은 줄어든다. 잘 익은 걸로만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이 그랬다. 일조량이 충분하지 못해 품질이 좀 떨어졌다. 빈티지가 좋으면 5만 병 정도 생산하는데 그해에는 2만 병밖에 병에 담지 못했다. 포도의 품질이 매우 나빴던 1991년에는 아예 페트뤼스를 생산하지 않았다. 포도 품질에 대한 완벽주의의 한 예다.

    페트뤼스는 단번에 확 사로잡는 입맛이 일품이다. 타닌의 구조가 너무도 단단하다. 아주 힘차고 남성적인 기상이 느껴진다. 향기 속에 감춰진 묘한 나무 냄새는 페트뤼스만의 개성이라 하겠다. 이런 방향(芳香)은 로마네 콩티에서도 풍긴다. 빽빽하게 들어찬 삼림의 향기 같기도 한 식물성 내음은 청초하고 우아한 동양란을 떠올리게 한다. 순결하고 단아한 자연향은 100% 순종만이 잉태할 수 있는 성질이다.

    피노 누아르의 참맛과 메를로의 참맛이 그대로 드러나는 로마네 콩티와 페트뤼스는 태생적으로 다르지만 감각적으로 닮았다. 귀하고 고가라서 이성적으로도 끌리는 두 와인의 심미적 세계는 보기보다 훨씬 많이 닮은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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