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2

2009.02.10

개만도 못한…

  •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9-02-02 1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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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나이 들면 꼭 필요한 것은?

    첫째 건강, 둘째 돈, 셋째 딸, 넷째 강아지, 다섯째 남자친구.

    남자가 나이 들면 꼭 필요한 것은?

    첫째 마누라, 둘째 집사람, 셋째 애들 엄마, 넷째 와이프, 다섯째 배우자.

    어쩌다 남자 신세가 강아지만도 못하게 된 모양입니다. 하긴, 강아지만큼이나 예쁜 짓 하며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처가에 ‘뭉치’라는 강아지가 생겼습니다. 장인 장모께서 워낙 깔끔한 분들이라 개털 날리고 냄새 나는 걸 못 참으실 줄 알았는데 웬걸, 뭉치는 장성한 손자 손녀들 대신 두 분의 품을 떠날 줄 모릅니다. 엘리베이터 소리만 들리면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맞으러 뛰어나가고, 밤엔 정말 어린아이처럼 장모님 팔을 베고 잡니다. ‘누워’ ‘기다려’는 물론 ‘악수’ ‘만세’ 같은 차원 높은 말귀도 알아듣고 재롱을 떱니다. 언젠가 장인은 혼잣말처럼 “이 늙은이를 좋다고 하는 놈은 너뿐이다”라며 뭉치를 안아주시더군요. 감동적인 교감입니다.

    강원도 양양 법수치계곡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펜션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여름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그곳 지킴이 ‘진주’를 만났습니다. 진주는 펜션 울타리 밖에 낯선 사람이 서성대면 목청껏 짖어대지만, 안채로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나면 공손한 가이드로 변신합니다. 낚시터로 손님을 안내하고, 손님이 캄캄한 밤에 돌아와 허둥대면 어디선가 살랑살랑 다가와서 흰 털을 초롱 삼아 현관까지 인도합니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구워먹을 때도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두어 발짝 떨어져 얌전히 엎드려 있다가 손님이 던져주는 고기만 받아먹습니다. 아이가 무서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머리가 안채로 향하게 살그머니 돌아앉습니다.

    개만도 못한…
    저희 아파트와 마주보는 단독주택엔 ‘백구’라고 부르던 진돗개가 살았습니다. 이사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가끔 아파트를 드나들 땐 눈만 마주쳐도 사납게 짖었습니다. 그러나 이사를 온 다음 날부터 거짓말처럼 눈빛이 변했습니다. 제가 골목 초입에만 들어서면 철대문에 기어올라 낑낑거리며 반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밥 한 끼 챙겨준 적도 없는데 그리 정다운 이웃이 또 있을까요.

    다 키워놓은 남의 집 귀한 딸을 무참하게 살해한 범인이 잡혔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시신의 손가락까지 훼손했습니다. 그러고는 겨우 70만원을 손에 쥐었습니다. 작년에는 주부를 살해했고, 전처들이 화재로 죽거나 실종된 것도 의혹투성이입니다. ‘개만도 못한…’이란 말이 그다지 험한 욕이 아니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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