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1

2009.01.27

히틀러 암살 ‘위대한 반역’ 작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작전명 발키리’

  •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입력2009-01-29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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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 암살 ‘위대한 반역’ 작전

    톰 크루즈는 ‘작전명 발키리’에서 주인공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 역을 맡아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역사는 예상과 달리 정교한 자들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사람들과 뜻하지 않은 사건들이 역사를 바꾼다. 혁명적 변화는 우연히 만들어질 때가 많다. 1944년 독일이 연합군에 패하기 7개월 전, 히틀러의 암살을 꿈꾸다 오히려 역(逆)쿠데타에 희생된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의 작전이 그랬다. 그의 작전은 너무 정교한 탓에 오히려 실패했다.

    슈타펜버그의 사람들, 곧 전직 장군인 벡을 비롯해 트레스코프 장군과 올브리히, 펠기벨, 괴들러 교수 등은 너무 많이 고민하고 너무 많이 생각했으며 너무 많이 계산했다.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슈타펜버그가 히틀러의 작전실을 암시하는 ‘늑대굴’을 폭파해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을 때 후방 예비군을 동원해 주요 기관을 즉각 점거해야 했을 올브리히 장군 같은 이는 지나치게 망설였다.

    한순간의 판단 착오가 ‘거사’를 실패로 이끈다. 비근한 예로 1979년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安家)에서의 총격 후 국방부로 가지 않고 자신의 거점인 중앙정보부로 갔다면 이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 슈타펜버그의 히틀러 암살이 성공했다면 전후 독일의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는 확 바뀌었을 것이다.

    거사 전후 치밀한 심리묘사 숨막히는 서스펜스

    설 연휴에 개봉될 브라이언 싱어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작전명 발키리’는 러닝타임 2시간 동안 숨막히는 액션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의 액션은 포격과 총탄, 육탄이 난무하는 신(scene)들로 채워지지 않는다. ‘작전명 발키리’는 일종의 전쟁영화지만 전투신은 단 한 번만 나온다. 그것도 슈타펜버그 대령이 한쪽 눈과 오른쪽 손목, 왼쪽 손가락 3개를 잃게 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액션은 오직 심리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 서스펜스가 감정선을 차고 넘치게 해 온몸을 굳게 만들 정도다. 이 2시간의 긴장은 슈타펜버그의 영웅적 역사행위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의 역사에서는 ‘슈타펜버그의 위대한 반역’과 같은 숭고한 희생은 사라지거나 잊혔기 때문에.



    영화는 슈타펜버그가 히틀러 암살조직에 가담해 일명 ‘발키리 작전’을 감행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시간순으로 기록한다. 트레스코프 장군(케네스 브래너 분)은 자신이 직접 지휘하고 시도한 히틀러 암살 작전이 번번이 실패하자 독일의 군인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그간 반(反)히틀러적 발언을 서슴지 않던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 분)을 포섭한다. 전직 장군 벡(테렌스 스탬프 분)과 올브리히 장군(빌 나이히 분) 등은 점차 그의 과감한 작전을 지지하게 된다. 이들은 수차례 비밀 회동을 하고 슈타펜버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암살 작전과 쿠데타 거사를 꾸민다.

    전쟁영웅으로 히틀러의 작전실에 참여할 수 있었던 슈타펜버그는 조직에서 만든 수제 폭탄 가방으로 암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첫 번째 작전은 무위로 끝나고 두 번째에 간신히 계획대로 폭탄을 터뜨리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슈타펜버그가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히틀러가 폭사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엑스맨’과 ‘슈퍼맨 리턴즈’ 등 SF 블록버스터로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영화가 의외로 느껴질 것이다. 화려한 카메라 워킹을 위한 감독의 분주한 몸놀림 같은 것은 이번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다. 유별난 시각효과 따위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교차편집 혹은 화면분할도 그리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꽉 조인 독일의 군복처럼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캐릭터만이 영화의 전편을 차지한다.

    인물 간의 심리전만으로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러기까지 영화 속 인물들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큰 몫을 했지만, 이들의 캐릭터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조종해나간 감독의 연출력이 큰 구실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싱어는 이번 작품에서 명백히 자신의 데뷔작인 ‘유주얼 서스펙트’의 연출 감각으로 돌아갔다.

    뛰어난 연기 톰 크루즈 이름값

    그럼에도 ‘작전명 발키리’가 인상적인 것은 영화 내내 유난을 떨지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가 양산하는 수많은 영웅담과는 달리 이 영화는 지나치게 슈타펜버그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 노력한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개인보다는 다수의 고뇌와 행동이 만들어낸다는 듯, 비교적 등장인물 모두에게 시선을 분산하며 당시 거사를 두고 과장된 해석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나친 수사(修辭)가 이 영화에는 없다. 슈타펜버그가 히틀러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영화 도입부에 그가 아프리카 전방에서 쓰는 일기를 통해 잠깐 드러날 뿐이다. 좀더 복잡한 이유, 혹은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이나 계산 등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슈타펜버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역사적 대의에 몸을 맡기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 역시 영화는 말의 성찬보다 묵음과 효과음으로 이를 대신한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오히려 극적이다.

    비밀조직과의 회동 이후 실로 오랜만에 베를린에서 가족과 만난 슈타펜버그는 갑작스런 연합군의 포격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저택 지하로 몸을 피한다. 쿵쿵거리는 포격 소리, 흔들리는 조명과 불안에 떠는 아내의 눈빛, 공포에 질린 아이들의 모습, 그럼에도 의연하게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슈타펜버그의 얼굴 표정 등을 통해 영화는 그가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됐음을, 그리고 그 결과는 종래에 비극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내비친다. 영화의 비장함이 최고로 묻어나는 장면은 거사가 실패한 뒤 가담자들이 맞게 되는 최후의 순간이다. 슈타펜버그와 그의 아내는 자신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톰 크루즈는 뛰어난 배우다. 할리우드의 특A급 스타이기에 종종 연기력보다 이름값만으로 부풀려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톰 크루즈야말로 자신이 사실은 성격파 배우임을 입증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와 함께 연기한 케네스 브래너와 빌 나이히, 톰 윌킨슨, 테렌스 스탬프 등은 모두 영국 출신의 연기파 배우들이다. 톰 크루즈는 이들과의 연기력 대결에서 어깨를 견주며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슈타펜버그와 그의 동지들이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까닭은 전후 독일이 히틀러의 독일로 기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거사는 진정코 실패했는가. 영화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적어도 지금의 독일은 히틀러와 나치의 유산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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